2월 14일. 외출 후 돌아온 집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귀여운 군인 캐릭터가 그려진 군대 상자. 아들 물품이 담긴 상자였다. 무거운 나의 마음과 다르게 상자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상자를 뜯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뜯어보니 아들이 신병교육대 입고 간 바지, 기모 티셔츠, 롱패딩, 신발, 모자, 양말, 속옷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위에 올려진 편지들. 정말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한참을 울다 눈물을 닦고, 아들의 편지를 먼저 읽었다. 격리한 주에 쓴 편지에는 아무것도 안 해서 그런지 아직 군대 온 것이 실감이 안 난다는 아들의 일상이 장난스럽게 적혀 있었다. 핸드폰은 신병교육대 입소하는 날 바로 수거해 가서 가져간 책을 보거나 TV를 본다고. 그리고 소대원들과 친해졌다는 말도 있었다. 아들의 편지를 눈물로 읽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군 생활 열심히 해보고 싶은 인원 있습니까?”
조교가 물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었단다.
“그래, 넌 그런 것 같더라.”
하며 조교가 웃었단다.
신병교육대 입소할 때 기본만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던 아들은 사회에서 그랬듯이 또 열심히 생활했나 보다. 장난스러운 아들의 편지 말투에 나의 눈물은 어느덧 쏙 들어갔다.
격리한 주가 끝나고 보낸 아들의 편지는 앞선 편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내가 보낸 인터넷 편지를 잘 받았다는 말, 인편을 다른 동기들과 돌려 보고 동기 4명이 울었다는 말, 자기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들로 가득했다. 주책맞은 엄마가 나잇값도 못하고 아들에게 걱정을 줬나 보다.
총기 제식, 부대 제식, 개인 제식, 응급처치, 운반법, 화생방 훈련 등등 여태껏 받은 훈련도 적혀 있었다. 아들은 분대장 전투원이 되어 열심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 조교들이 아들에게 후임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고 한다. 아들은 신병교육대 들어갈 때부터 동반 입대한 친구와 GOP로 자대배치받기를 원해서 그런지 조교들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거나 화답하지 않았단다. 그때까지 조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교의 장・단점을 몰랐다. 다만 수색대대가 얼마나 힘든 곳이라는 사실은 알아 아들이 수색대대에 가는 것이 무서워 아들의 의견대로 지원해서 가는 GOP로 자대배치받기를 원했다.
아들 물품을 정리하고 조교를 검색했다.
기초군사훈련을 담당하는 훈련소 또는 신병교육대 조교의 임무는 교관을 보조하여 교보재 및 장구류 관리, 교관화 및 행동화 시범, 훈련병 인솔, 통제 등을 맡는다. 일과 후에도 생활 통제까지 하며 24시간 훈련병들과 함께 한다. 조교의 임무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고, 업무 강도가 강한 편이다. 대신 휴가를 자주 나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통 한 기수의 훈련병들이 수료하고 다음 기수가 입소하기 전까지의 공반기에 휴가를 나가기 때문에 휴가는 상당히 자주 나가는 편이다.
조교가 휴가를 자주 나온다는 말에 갑자기 나의 마음이 설렜다. 개인 시간이 없어서, 24시간 훈련병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한 기수의 훈련병이 수료하고, 다음 기수가 입소하기 전까지의 공반기에 휴가를 나올 수 있다니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는가? 더군다나 신병교육대 조교들이 아들에게 조교 신청을 많이 권유한다니 나의 마음은 급해졌다. 당장 아들에게 인터넷 편지를 썼다. 제발 제발 조교를 신청하라고. 그날 이후부터 나는 매일매일 간절하게 기도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아들이 조교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앞으로 더 열심히, 착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