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나잇 Jan 13. 2024

거울의 곁

1

지금 이 말이, 너에게 닿는다면     


2

상처 난 지붕 위로 해가 자주 드나드는 날이면 어설프게 자라나는 화분 아래로 암막 이불을 덮어주었다 너무 자주 만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다가오면 숨어버리라는 세상의 조언대로 낮과 저녁 사이에서 저물어가는 일들은 우리를 갈라놓을 것만 같아서 바닥에 조금 떨어진 머리카락을 훔치는 것으로 의식을 대신한다 나는 언제든 네가 부르면 달려갈 거야   

   

3

네가 사는 집에는 너비가 넓고 위아래로 길쭉한 일자형 거울이 있다 그 거울은 너보다 크고 나보다 작다 너는 나보다 작고 거울보다 크다 때로 나는 그것을 잊었다 죽은 습관은 악몽처럼 되살아나 우리를 어루만졌고 네가 나를 피할 때마다 거울에 실금을 냈다 부수지는 않을 것이라 되뇌면서 다만 곁을 달라고 속삭이면서  

   

4

거울에 그어진 금에 얼굴을 스쳐보면 

자국 따라 표정이 갈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너는 수척한 이빨을 드러내며 낮은 곳으로 기어간다      


메마른 땅 같아

아무도 찾지 않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5

거울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다 아직 그는 나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기보다 처음 겪는 환희가 솟구친다 검주황빛 태양이 거울에 난 오솔길을 가로지르며 불을 지르는 사이로 먼 곳에서는 울음소리가 운다 동시다발적이고 규칙적이고 침착하며 교묘하다 익숙한 소리를 타고 흐르는 흙냄새 너를 마중 나갈 때마다 코끝을 스치며 차가운 심장을 찔렀던 

    

6

오늘의 확언 : 당신은 높은 터널을 지날 것이고 그곳의 속은 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중앙에서 만나는 사람의 얼굴을 절대 바라보지 마십시오     


7

오랜만에 들른 너의 집에는 네가 없다 내가 알던 거울도 없다 네가 없다는 사실보다 거울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를 울게 만든다 찾을 수 있을까? 네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그려내는 유일한 막, 네가 있는 곳에는 너만 비친다 잃어버린 거울일까? 너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너와 내가 동시에 웃으며 기적이 일어나는 광경을 꿈꾼다


8

우는 모습이 참 예뻤지, 바싹 마른 뿌리를 닮은 나의 곁아    

 

9

거울이 돌아왔다 가녀린 실금마다 너의 표정을 가득 안은 채로,      

그것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다 너는 더 이상 네가 아니다 오랜만에 마주 본 네 몸 곳곳에는 거울이 아닌 거울에 떠다니는 똑같은 그것이 있다 너의 우는 웃음을 자주 바라볼 것이다     

 

10

나는 오래 기다렸으니까,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너는 다만 곁을 내어주겠다고 답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