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몇 개의 받침으로 되살려내는 모든 것들.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잘 나가는 모습을 골똘히 상상한다. 방향은 아무래도 괜찮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심적 만족감을 채워줄 이야기들이 구름처럼 모락모락 하늘에 띄워질 때, 비로소 작은 희망을 부풀릴 용기가 피어날 수도 있기에. 또 어떤 이들은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그건 바로, ‘잘 죽는 내 모습’이다.
그러나, 어둠이라는 긴 터널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겐 잘 죽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죽는 모습’ 자체만이 숨통을 틔워줄 도피처일지도 모른다. 우리와 그리 반갑지 않은 긴밀한 관계성을 결코 깨트리지 못하는, 구석진 영롱의 그림자. ‘사의 찬미’ 같은 것이다.
죽음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일. 어쩔 수 없는 슬픔으로 치부하기에는 담긴 아픔을 낮춰 이르는가 싶고,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겸손치 못한 연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과거엔 이를 소망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머나먼 옛날, 우리가 고유의 의복을 갖추고 다니던 때. 서로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딱딱한 돌바닥에서 새싹을 틔우고자 각고의 노력을 펼치던 날에. 그들은 문득, 내면을 찾아온 감색 옷을 입은 남자들과 슬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음을 택하겠다는.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도, 그때와 지금을 두고 보면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여생을 마친 후 잘 죽고 싶어 할 때, 의지를 잃은 다른 누군가는 지금 당장 죽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에 등수를 매길 수는 없는 법이니, 그들의 울음을 두고 합당함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매우 잔인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쉽지 않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은 사유에 젖게 만들었던 일이 내게도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교의 제안으로 박람회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새싹, 청소년 시기에는 모름지기 돈 걱정 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숭고한 이념 아래에서 비교적 화초처럼 자라온 나는, 다가올 아르바이트를 두고 걱정이 태산만큼 쌓여갔다. 그러다 막상 그날의 업무 앞에 내팽개쳐지자, 두드린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대학교와 연합을 맺어, 단체 학생들을 영입했으니 몸을 혹사할 만큼 힘든 일은 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허나, 불안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지 않던가. 행사장을 그럭저럭 무난하게 뛰어다니던 중, 나는 당혹스러운 일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진행했던 박람회의 테마는, ‘웰 다잉’이었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찬란한 죽음을 미리부터 준비하는 태도에 대해 논하려는 것 같았다. 모든 계절이 그저 푸릇하기만 하던 내 한때에, 피폐한 죽음 따위가 끼어들리 만무했다.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는지, 박람회장은 점점 껍질이 벗겨지며 한산한 풍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작스런 위기감이 본색을 내뿜자, 한 스텝이 아연실색을 피우며 학생들을 모아놓고 지령을 내렸다. 밖으로 나가 방문객을 모을 홍보 전단을 돌리라는 내용이었다.
예상도 못한 업무가 내려진 상황에서, 발언권이 없던 우리는 그들의 요청처럼 보이는 순한 협박에 따라야만 했다. 무수한 이름들이 겉도는 낯선 한복판에 떨궈져 모르는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 일이, 내 홑겹 같은 성향을 뚫을 수 있을까 큰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짝이 맺어진 친구와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가까스로 움직여 야외 광장으로 나섰다. 밝은 대낮임에도, 도시의 중심에 서있었기 때문인지 우리를 지나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서 말하는 데에 큰 긴장을 하지 않던 나였기에, 용기 내어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낯을 심하게 가리는 파트너 덕에, 내가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유일한 처사였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지만, 어린 우리들과 싱그러운 여름의 향기가 제법 잘 어울렸는지 다수의 어른들은 친절한 관심을 보내주었다. 나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홍보에 가열차게 집중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과함이 문제였다. 누군가의 호의 가득한 눈동자에 정신이 팔린 나는, 어느새 내가 피력해야 하는 주제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얼굴에 선량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오로지 자신의 입담에 심취해 있던 내가, ‘저희 박람회에서는요, 죽음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만나보실 수 있고요.’라며 한참을 떠드는 중이었다. 내 말을 똑같이 웃으며 경청하던 중년 남성 한 분이, 표정 하나 갈아 끼우지 않으며 이렇게 답했다.
“근데 왜 웃으면서 말해?”
나는 그 순간의 당혹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에는 억울한 마음이 내 몸을 휩싸며 적지 않은 분노를 일구었더랬다. 자신보다 어려 보인다고 해서, 초면인 어엿한 성인에게 반말을 일삼는 무지성함과, 업무의 일종이므로 미소로써 화답하는 게 응당 맞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처지를 존중받지 못해, 서운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러나, 원망도 잠시. 그날 이후로 파도 같은 인생의 굴곡을 넘나들며 얕은 무상스러움을 감내하고 나니 어쩐지 그때 일침을 주셨던 분에게, 작고 어리숙한 내 연극을 웃으며 경청해 주시던 그때의 많은 어른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살다 보면 지금의 시간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때가, 내가 비워 온 밥그릇보다도 많았던 것 같다. 잘 살기도 어려운 때에 잘 죽는 법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장 먹을 쌀도 없는데 미래에 나를 먹여 살릴 주식 투자에 골몰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취지를 비난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좋은 의도를 어떤 방법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정들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과거의 나 또한 그랬다. 한 치 앞의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죽는 날의 내 모습을 구상하기란 배부른 욕심 같이 느껴지기만 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조차도 이런데,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죽기 위한 준비로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오죽할까 싶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지하는 첫걸음부터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주저앉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곧 죽는구나, 괜찮다. 죽어도 괜찮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살아보자! 하는 작고도 큰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 작은 그릇으로는 감당이 잘 되지 않았다.
죽음은 진지한 것임을 내게 단 한 마디로 알려주셨던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고뇌하며 홀로 침묵했던 적이 있었다. 죽음과 가깝고 죽음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일수록, 그때 내 가벼운 언행에 관대할 수 없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작은 말에도 나의 아픔을 대입시키게 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툭 건드리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발끝까지 흐른다거나, 가슴팍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있어 바람 새는 구멍이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나의 오지랖투성이인 단상이, 한낱 주제넘은 착각이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빛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알량한 모순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가올 내 마무리를 짙게 생각하노라면 눈가에 이슬방울들이 주르륵 맺히곤 한다. 아직도 가끔씩은 다가올 내일을 회피하고, 극단적인 절단과 헤어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좋은 마지막’이란, '사의 찬미'보다도 낯선 정의였으므로. 당장 머리 싸매며 고심해야 할 일이 수두룩한데, 죽음이라는 대목을 미리 끌어와 내가 살고 있는 나날들을 재정비하고 현실에 직면할 것이 두렵기만 했다. 지금보다도 더 골치 아플 마음의 여유가, 용기가, 태도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에도, 사랑이 담긴 행복의 추억과 따뜻했던 한차례의 소풍을, 순백의 상자 속에 담아두고 갈 수 있도록 일찍이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단단하고 대담한 사람들일까 생각하면, 작은 원 안에 투명한 존경심이 일었다. 내 안일하고도 염세적인 마음 때문에 길을 잃었을 뿐이지. 다음을 내다보는 그들의 혜안이야말로, 꿈결 같았던 자신의 삶을 다독이고, 마음에서부터 아려오는 사람들을 단단한 품으로 지켜낼 수 있는, 떠나기 전 최선의 방법이자 끝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무사안일 '삶의 찬미'에 대한 안도감으로 가슴께를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