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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피아도

사치와 낭비의 감옥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었다

by 유동용

귀를 찢는 음악 소리와 화려한 네온 싸인이 뒤범벅된 씨엠립의 팝 스트리트 거리는 한낮의 날씨만큼 뜨거웠다.


사방으로 갈라진 골목을 따라 재래시장에 발을 멈추니 오색 찬란한 <오흐냐>라고 불리는 그들의 전통의상에 시선이 꽂혔다.

미니멈 라이프를 추구하며 끌고 온 헐렁한 캐리어가 현지 의상에 홀려 지갑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쇼핑에 들뜬 텐션을 누르고 내가 이곳을 찾은 진짜 목적지를 향해 map을 설정했다.

영화 <톰 레이더> 촬영을 위해 그녀가 수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며 자주 찾았다는 <레드 피아노>

1층은 캄보디아 전통 악기와 이국적인 장식품으로 벽면을 도배했고, 2층은 펍 스트리트의 야경을 감상하며 로맨틱한 조명 아래 여유로운 칵테일이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1층과 다른 매력을 풍겼다.

테이블에 앉으니 안젤리나 졸리 덕후들에게 최적화된 장소인 양 그의 이름을 딴 메뉴가 먼저 보였고 시원한 하누만 흑맥주가 한낮의 더위를 밟고 다녔던 여행의 피로를 거품처럼 싹 가라앉혔다.


2005년 8월 그녀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전 재산을 6명의 자녀들 중 캄보디아에서 입양한 아들에게만 상속하기로 했으며, 매덕스가 우리나라 연세대학교에서 유학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테이블에 안주로 올리며 치어스를 연발했다. (코로나 이후로 돌아갔다고 함)



1960년 1월 프랑스 앙리 모어에 의해 발견된 앙코르와트 사원은 해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ㅁ자 형으로 사원을 둘러싼 해자 위에 동편에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 그리고 나머지엔 힌두교 양식의 탑들로 3개를 만들어 모두 5개의 입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12세기 신들이 만든 슬프고 찬란한 크메르 제국의 비시누 신을 모신 힌두교 양식의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앞에서 천년의 역사를 들려주는 가이드의 설명이 마치 대하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신비한 미소로 유명한 바이온 사원은 크메르 문명이 살아 숨 쉬듯 돌을 다듬어 만든 40미터 크기의 인면상 모습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본 떠 만들었으며, 어머니의 극랑 왕생을 위해서 꾸몄다는 보석방은 효심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햇볕을 받으면 금빛으로 변하는 스펑 나무가 신전 마당에 넓은 발등을 드러내고 어디서 끝날지 모를 삶의 여정 앞에 길게 뻗은 나무 뿌리가 인연의 끈처럼 어어졌다.


앙코르와트를 나오며 탔던 툭툭이 기사님의 옷을 보고 모두가 빵~ 터졌다.

<위 사진은 정치적 이념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캄보디아인들의 젖줄로 불리는 톤레샵 호수는 그들의 경제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남아 최대의 담수호다.

석양마저 순수한 그들의 미소를 닮은 호수에서 쪽배를 타고 유람하는 우리를 보고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내가 가져온 라면과 과자를 보더니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한 봉지차례로 나누어 주는데 받은 과자를 다리 밑에 숨기며 거친 손을 내미는 모습에 빈 내 손이 민망했다.

물질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았던 나의 시선이 이곳 톤레샵 호수에 떠 있는 수상가옥들을 보면서 아니 출생의 흔적조차도 없이 살아가는 미취학 어린이들 앞에서 나는 사치와 낭비의 감옥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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