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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수 Jun 18. 2023

들꽃편지 5 - 민들레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어디 마디가 지겠습니까.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데 해를 넘기면서 상념에 젖는 게 참 부질없다 하면서도 봄을 맞아 언덕 비탈에 꽃이 피면 새롭다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산천초목이 푸르러지면 앙상한 가지로 북풍에 시린 한겨울과는 완연히 별세계입니다. 물처럼 마디가 없는 게 자연(自然)이라지만 나(自)와 남(他)이 따로인 것도 생명의 본성(本性)이리라 주억거릴 만합니다.


봄을 여는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입니다. 온 산을 뒤덮을 듯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온 동네에 꽃비를 내려 찬란한 봄을 터트립니다. 한때 왕창 피는 것들은 쉬 사그라들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유별나게 돋보이면 금새 그늘지고 말지 않습니까. 저 꽃들이 절규하듯 합니다. 우리도 꽃비를 맞으며 겨우내 시린 땅을 덮어주던 낙엽을 잊고 말겠지요.


어느 봄날 분분한 벚꽃 놀이 행차가 벙그러진 한길에 나섰다가 길섶에 외로이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고개를 내민 민들레가 제 시선을 사로잡은 적이 있습니다. 축제 불꽃처럼 하늘을 수놓은 벚꽃을 우러르느라 누구 하나 발치를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사립문 아래 빼꼼히 얼굴 들이밀어 봄소식을 전한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 ‘문둘레’처럼 늘 낮은 데로 와 새 소식을 전합니다.


이름처럼 발 아래 흔한 꽃이 왜 이리 우리 마음 속에서 도드라졌을까요. ‘민들레’ 노랫말들이 입 언저리에 늘 붙어다닙니다.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야” <일편단심 민들레>,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민들레 홀씨 되어>, “이제는 알아요 떠나는 마음 민들레 민들레처럼” <하얀 민들레>


자꾸 들여다보면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잖습니까. 요즘 들판에 흔한 민들레들은 다 외래종이랍니다. 큰 차이야 없겠지만 자꾸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하니까 그 차이가 뚜렷이 구분되더군요. 꽃받침이 꽃잎을 감싸고 있으면 토종입니다. 토종이 외래종보다 약효가 훨씬 좋으니 눈여겨 봐두어야겠지요. 너무 흔하다고 귀한 줄 몰랐던 지난 날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로 노래 한마디 지어 올립니다.


민들레의 지혜


한 때 피었다 지는

꽃을 우러러

나선  

발 아래

민들레 노란 꽃잎

낮게 피었습니다.


홀씨를 날려 보내는 한 포기 곁에

이제 막 꽃망울 고개 드는

또 한 송이

내려다보다가


발 아래,

저마다 꽃 피우는 때 달라

늘 피어있는

민들레의 지혜


가슴에 얹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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