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이 ‘학생의 날’인 줄은 어렴풋이 알고들 있는데 왜 그 날로 정했는지 다들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53년에 일찌감치 정부기념일로 제정되긴 했지만 1973년 유신독재 때 폐지되었다가 1985년에 되살아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저항 의지가 탐탁지 않은지 널리 그 뜻을 새기려는 움직임도 없으니 잊히는 게 당연합니다. 일제에 항거해 일어난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은 다 젊은 학생들이 주도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독재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4.19의거, 5.18광주항쟁도 다 10대, 20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새겨진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젊은이는 다 어디로 간 건가요. 일흔 되신 할아버지가 시위 도중 다쳐서 돌아가시는 참담한 지경인데 젊은이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건지요.
학생의 날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가 처음 벌어진 11월 3일을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10월 30일 나주 역전에서 조선인 여학생이 일본인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해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고 일본 경찰이 조선인 학생들만 구타하고 체포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하자 조선 학생들의 분노가 광주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11월 3일 일본의 명치절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울분을 삼킬 때 조선 학생들을 분노케 하는 사건이 또 일어납니다. 귀가 중 일본 학생이 칼로 조선 학생의 얼굴을 찔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조선 학생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어 광주 시내 전역이 조선 학생 시위대에 휩쓸리게 됩니다.
얼핏 보면 우발적 사건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1월 3일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장장 5개월 동안 전국 200여 개 학교 5,6만 명의 학생들(총독부 기록)이 시위에 참여한, 3.1만세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 그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도 이 위대한 항쟁이 후대에 와서 왜 이렇게 초라하게 기억되게 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학생 시위대들이 불법 체포 학생 석방뿐만 아니라 식민지 노예 교육 철폐를 주장하는 등 실증된 사실만 보더라도 이 항쟁이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항쟁을 이끈 독서회의 활동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영화 [이름 없는 별들]은 이 항쟁의 본질을 잘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이름 없는 별들]
[이름 없는 별들]은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 동아리 모임 학생들이 광주학생항일항쟁을 이끌면서 겪는 고통스러운 성장통을 이야기합니다. 친일 집안의 ‘최영혜’가 항일 의식으로 무장된 독서회에 가입하고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자 독서회의 리더인 ‘한상훈’을 흠모하면서 겪게 되는 가족 갈등을 그려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영혜의 오빠는 고등계 형사로 독립투사를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악독한 놈이니 독서회에 들어간 동생 영혜는 일제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는 집안 분위기와 항일 의식으로 무장된 독서회 분위기 사이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훈의 생일잔치 때에 상훈이가 ‘나도야 간다’ 시낭송을 할 때 영혜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순수한 사랑과 민족애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젊은이의 순정만큼 아름다운 게 없지요.
젊은이들이 독서회를 만들어 공부를 하고 이 민족의 비참한 처지를 자각하면서 일제의 수탈에 대한 저항 의식은 날로 커지고 학감을 비롯한 일인 교사들의 탄압은 점점 심해집니다. 수업 중에 이순신을 가르치신 송 선생님이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가자 학생들은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하교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농성을 하는가 하면, 일본인 학생들이 다니는 광주중학교와의 야구 시합에서 심판이 일본 학교를 편들어 오심을 하자 학생들이 분노하여 경기장에서 집단 시위를 벌이는 등 갈등이 날로 깊어집니다. 일본 경찰은 송 선생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학교에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긴장 속에서 나주역 조선 여학생 희롱 사건이 터집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학생들의 항일 시위가 광주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영화 [이름 없는 별들] 나주역전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박기옥을 희롱하는 장면
실제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성진회’라는 독서회가 있었습니다. 1926년에 광주고보 학생들이 만든 비밀 결사 조직인데 회원 중 한 명이 형사와 인척 관계임이 드러나 해산되었다가 1929년에 부활되었습니다. 그 단체를 만든 ‘장재성’은 ‘성진회’가 해산되고 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 당시 재일 유학생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던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조국으로 돌아와 후배들에게 신사상을 전수합니다. 장재성의 지도를 받고 있던 독서회에 의해 광주학생항일운동은 광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일파만파로 번져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게 됩니다. 이런 저간의 경과를 보면 광주학생항일운동이 1929년 나주역 추행 사건만으로 발발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1927년부터 광주고보 학생들의 동맹휴학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며 통학 열차 안에서 조선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싸움도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이런 아픔과 노력들이 하나하나 쌓여 조선 학생들의 분노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고 결국 나주역 추행 사건을 기화로 들불처럼 번지게 된 것입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나주역 사건은 광주여자보통학교 3학년 ‘박기옥‘이라는 실존 인물이 실제로 겪은 일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실존 인물 박기옥의 집안은 1920년대 항일 운동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1909년 남한대토벌 초토화 작전과 1910년 한일합병으로 의병항쟁의 활동 무대가 간도, 연해주로 이동해 가면서 국내 항일 투쟁은 수그러든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닙니다. 평화적 독립운동은 1919년 3.1만세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 11.3학생항일운동으로 이어졌고 1923년 암태도 소작쟁의, 1929년 원산총파업으로 민중항쟁의 맥도 끈끈히 이어져 왔습니다. 암태도 소작쟁의의 지도자 ‘서태석’이 바로 나주역 사건 ‘박기옥’의 시아버지입니다. 역사의 강은 멈춤 없이 이어져 흘렀던 것입니다.
[이름 없는 별들] 나주역전 패싸움 장면
나주역 ‘박기옥’ 학생 추행 사건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한국인 학생들과 광주중학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송 선생은 싸움을 말리려고 뛰어들었다가 영혜의 오빠 ‘최영식’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영혜는 ‘성진회’ 연락책으로 나서서 일하다가 오빠의 의심을 받게 되고, 일본 놈 앞잡이 노릇을 하는 오빠를 비난하면서 갈등은 깊어집니다. ‘성진회’ 일원이 ‘최영식’에게 체포되자 동지들은 영혜를 의심하게 되고 동지들로부터 버림받은 영혜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앓아눕고 맙니다. 영혜가 정신이 혼미하여 오빠를 상훈인 줄 알고 횡성수설 하는 통에 조직의 기밀이 누설되고 자신의 실수로 동지들이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자 영혜는 상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집니다. 그렇게 11월 3일 대규모 시위는 조직됩니다.
문순태 작가는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나주 의병장 ‘나상집’의 일대기를 그렸는데 그 후속편 [알 수 없는 내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그렸습니다. 문순태 작가는 전국 운동으로 번져 나가고 3.1만세운동 이상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나주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항쟁을 계승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지요. [알 수 없는 내일]은 11.3항쟁을 단순 우발 사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파급된 러시아혁명 사조(思潮)에 잇닿아 있는 세기적 사건으로 그려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양만석’이라는 인물이 광주 ‘흥학관’ 등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신사상을 전파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씨앗을 뿌리는 이야기는 ‘성진회’라는 독서회를 조직하면서 항일 의지를 다져나가는 영화 [이름 없는 별들] 얘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름 없는 별들] 11월 3일 1차 시위 장면
광주학생항일운동은 규모도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파급효과도 엄청 컸던 모양입니다. 3.1만세운동이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사적 의미가 크다는 것은 배웠는데 그에 못지않게 광주학생항일운동도 전 세계로 널리 알려졌다는 건 통 모르고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기관지 [프라우다]지에 사건 기사가 실리기도 했고 쿠바에 이민 가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 후원금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11월 12일에는 2차 시위가 광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신간회’가 전국적으로 집회를 조직하여 다음 해 3월에는 한반도 전체에서 시위가 일어납니다. ‘신간회’ 산하 여성단체 ‘근우회’가 서울 지역 학생 시위 조직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그 핵심 인물이 바로 영화 [암살]로 주목받게 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입니다.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만민평등 세상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한 몸의 지체처럼 다 이어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3.1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을 무력으로 통치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문화정치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 유화정책으로 상당수의 조선 지식인들이 민족개조론, 일선동조동근론(일본과 조선은 한 뿌리)을 받아들이고 결국 민족을 배신하는 길로 빠져드는데 이들을 제외하고, 무력 투쟁에 나선 민족주의자들과 민중 봉기를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하나로 결집된 단체가 바로 ‘신간회’입니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이 ‘신간회’ 건설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젊은 청춘들이 온몸을 던져 이 민족이 대동단결하고 민중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서게 만들었으니 이런 위대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위대한 일에 헌신한 분들이 해방이 되고 나서도 제대로 그 공을 평가받지 못하고 잊혀져 갔으며 그들이 몸 바쳐 이 민족을 일으켜 세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한 날이 친일로 민족을 배반했던 독재자에 의해 뭉개지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 날을 맞이하는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너무 바빠서 이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젊은 청춘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일구어낸 민족 통일과 만민 평등의 기운은 민족을 배신한 모리배들에 의해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소설가 문순태는 이 위대한 거사를 그려낸 작품으로 [이름 없는 별들]이 유일하다는 걸 애석해 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전 영화 작품도 이제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학생의 날이 다가오자 모두 삭제되고 말았네요. 오래된 고전 작품이라 요즘 젊은이들 정서에 잘 안 맞을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젠 그마저도 볼 수 없게 되는 모양입니다. 학생의 날은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