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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치유 Feb 01. 2024

저, 교환학생 갑니다

2022, 홍콩 견문록 1화

시작의 날


 1월의 한 저녁, 군(軍)에서 전역을 이제 막 1개월 정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사지방의 한 컴퓨터 앞에 앉아 긴장하고 있었다.


 분명 학교를 다니면서 수없이 접속한 웹사이트였지만, 왠지 모르는 긴장감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느낌을 느낀 때가 대학 면접 때였던가? 잊고 있었던 불안과 기대가 섞인 감정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결과 발표창까지 조금씩 다가갈 때마다 그 긴장감은 배가 되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끝까지 도달한 순간, 내게 보이는 내용.


- 축하합니다. 본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었습니다.


 ".......!"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승리의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교환학생을 가는 데 성공한 것에 대한 기쁨을 담아서.


극 I형 인간, 홍콩으로 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즐길 수 있었고, 나름의 운도 더해져 고등학교 때까지 상위권에 계속 있을 수 있었다. 즉,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를 붙고 나서도 주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에 어색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실수를 하면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고민하거나, 너무 잘생기거나 예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 불편한 마음이 생기곤 했다. 그나마 군대에 있을 때는 같은 옷에 빡빡머리인 선후임 동기들만 보다 보니 불편한 마음보단 그저 웃겨서 지내기 편했다.


역시 군대에서 빡빡이로 있는 서로를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렇지만 다시 그대로 복학한다면 결국 내향적인 극 I형으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무언가 큰 변화를 줄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교환학생이었다. 해외에 가서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떠드는 모습. 거기에 한국과 다른 문화를 오랫동안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중에 해외연수를 가면 돈이 더 든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서류를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 물론 코로나라 사람들의 지원이 적어서 붙을 수 있었다는 점은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때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교환학생을 붙었다고 신나서 이야기할 때에도, 그리고 갔다 온 지금에도 내가 홍콩에 갔다 왔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왜 홍콩이야?"


 사실 흔히 교환학생이라고 생각하면 갔다 오는 미국과 유럽에서의 화려한 이미지에 비하면 홍콩은 그렇게 큰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하는 교환학생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우리나라와 생활 패턴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홍콩을 결정한 데에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돈이다. 해외를 나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출을 두 가지만 꼽으라면 항공, 그리고 숙박일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그 항공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돈이 지출되는데, 거기에다가 물가도 많이 비싸다.


 비록 영어 말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언어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멀리 갈 바에는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많이 사 먹고 관광지에서 더 많이 쓸 수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이전에 해외여행은 가본 적이 있지만, 해외에서 여행 중 생기는 가장 빈번한 문제는 입맛이었다. 정확히는 다른 나라의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경우였다.


 만약 일주일 여행을 간다면 나름의 건강 체질(25세, 가리는 음식 없음)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3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을 순수하게 버티기에는 무리였다.


 해외에서 이렇게 마음 편히 오랫동안 갔다 올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 이번 한 번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대 안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등록금, 보험, 수강 신청, 비자...


 그렇지만 홍콩에 가기 위한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국가, 그 안에서도 다른 학교 간의 행정적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등록금은 다를 바가 없었다. 본교의 등록금을 내면 교환학생을 가는 학교의 등록금을 낸 것으로 쳤기 때문에 홍콩의 비싼 물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보험을 제공하지는 않아서 따로 해외여행 보험을 가입해야 했다. 덕분에 영문으로 된 신청서를 어떻게 제출해 보험에 가입하는지 새롭게 공부하기도 했다.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당연하게도 수강신청 방법이었다. 영어로 되어있는 웹사이트에서 신청하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거기에 수강 신청 방법도 장바구니에 선착순으로 담아서 신청하지 않고, 강의를 선택한 후 학과 사무실에서 판단해 승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수강신청을 위해서 홍콩 현지 웹사이트 시간까지 찾아보면서 급하게 진행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다.


 비자를 신청하는 것도 하나의 난관이었다. 사실 홍콩은 일본처럼 우리나라와 협약을 맺어서 서로의 여권이 있다면 비자가 없어도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여행 비자가 아닌 학생 비자를 신청해야 했고, 특히 교환학생을 하던 시기는 코로나로 이제 막 입국을 풀기 시작한 때였던지라 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신청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만 2일 넘는 시간을 끙끙댔다. 특히 우편번호를 적는 공란이 있는데, 홍콩의 우편 번호를 찾았지만 검색에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홍콩은 중국 내에 속해있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채택하는 만큼 우편번호가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적을 필요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교환학생을 가고자 하는 학교의 허가를 오프라인 서류로 받아야 했다. 그래서 국제우편을 학교로 따로 보내서 학교가 대신 처리하도록 해야 했고, 1개월 가까이 아무 연락 없이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비자까지 발급된 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제야 출발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아직 한 가지 위기가 나를 덮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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