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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치유 Feb 14. 2024

코로나는 방심을 싣고

2022, 홍콩 견문록 2화

 격리호텔


 이제 행정 처리는 다 끝났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바로 격리 호텔 예약이었다. 격리 호텔은 입국 심사까지 마친 이후에 가는 곳이니 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격리 호텔 예약은 정부에서 지정한 일부 호텔만 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피터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 예약할 때 가볍게 생각하고 한 달 전에 예약을 하려고 했다가 이미 격리 호텔 리스트에 있는 방들이 대부분 나가고 1박에 36만 원이 넘는 5성급 호텔만 남아서 당황한 적이 있다. 하루만 머문다면 눈물을 머금고 낼 법도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한 2022년 8월 중순 기준으로는 7일의 격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런 곳을 예약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라. 일주일 동안 내는 호텔값이 홍콩을 5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라면 그런 곳에서 편히 잘 수 있겠는가? 아무리 시간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나한테 호텔에서 머무는 1분 1초를 강제로 소중하게 만드는 인생 교육법은 너무 버거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홍콩 정부가 7월에 격리 호텔을 하나 늘려주었고, 수강신청으로 단련된 대학생의 힘으로 간신히 적당한 호텔을 잡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내 위기는 지금까지의 난관으로 끝나지 않았다.



8/19. 가장 큰 위기, '양성'


 격리 호텔 다음으로 필요한 코로나 음성 증명서는 간단한 키트로 진행하는 신속항원검사(Rapid antigen test)를 통해 발급받을 수 없다. 이런 방법은 만약 바이러스가 검사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많이 있지 않은 경우 - 특히 잠복기 때의 바이러스를 감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엄격한 코로나 음성 증명서는 PCR만을 증거로 받는다.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은 코로나의 DNA를 수십만 배로 증폭시켜 바이러스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만약 아무 바이러스도 없다면  0*수십만 = 0이지만, 3개만 있어도 100만 개 이상의 DNA가 만들어지니 감염 여부를 가장 확실하게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2022년 8월, 내가 입국하려던 그 당시 홍콩에서 인정하는 것도 이러한 PCR 검사였다. 당시 나는 일부러 출국 일주일 전부터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으면서 집에서만 있었다.


 그렇기에 음성이 나올 것을 의심하지 않고 48시간 전(이틀 전)에 대학 병원에서 당당히 검사를 맡고 왔다. 검사비도 아파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10만 원이나 내야 했다. 미국에서 개인 의료비가 비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그래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당연히 믿고 두근거리며 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 온 문자는 다음과  같았다.


- "미결정"입니다.


미결정? 무슨 뜻이지? 양성도 아니고, 음성도 아닌 이 글자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다. 처음엔 검체가 제대로 채취되지 않아서 재검사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오히려 검사 결과가 양성인 것 같은데 애매해서 다시 검사하라는 말이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딘가 내 몸 안에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었다.


 문득 2주 전에 굉장히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났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안 먹던 술을 먹어서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황이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붉은 비상등이 울리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8/20. 응급 진료소에서의 재검사


 미리  말했지만, PCR은 바이러스의 DNA를 검사하는 방법이다. 체내에서 치료되는 과정 속에서 바이러스는 면역 세포에 의해  제거되지만, 그 면역 세포가 완전히 분해하기 이전에 죽은 바이러스의 DNA는 체내에 남아있을 수 있다. 화석에서 몇십만 년 전의  DNA도 검출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몸에서 증상을 느끼지 않아도 죽은 바이러스의 DNA가 잠시 남아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출국이 다다음날이 아닌가.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응급 진료소에 가서 더 비싼 금액(15만 원 남짓으로 기억한다)을 내고 PCR을 다시  진행했다. 부디 내 걱정이 기우이길 빌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현실은 열심히 내 가정에 부합하려고 노력했다.


- "양성"입니다.


 결과가 나오고 처음엔  분노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머니께서 농담 삼아 외할아버지께서 내 사주가 철과 멀어져야 한다더라 했던 이야기도 비행기와 멀어지라는 뜻인가 싶었다. 또 친구들한테 이미 교환학생을 간다고 다 말해놓았는데 만약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다고 하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싶기도 했다. 잠복기가 2주나 된다는 것이 정말로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도 이렇게 되고 나서야 깨달으니 생명과학부로서 공부를 헛 했구나 싶기도 했다.


 어찌할 줄 모르던 내 상황은 출국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민한 후, 결국 나는 결론을 내렸다.


8/21. 재도전, 그리고 출국


"모두 미뤄보자. 안 되면 진상처럼 굴더라도 되게 만들자!"


 곧바로 바꾸기 가장 편한 비행기표부터 바꿔놓았다. 다행히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 어머니께서 '혹시 모르니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일정을 바꿀 수 있는 표로 예매하자'라고 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이후에는 격리호텔이었다. 홍콩의 격리호텔은 인터넷 예약이 잘 되어있는 한국과 다르게 갑작스러운 격리 지정 때문인 건지 웹사이트에서 예약 변경이나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잡은 호텔은 '변경 불가' 옵션이었기 때문에 더 바꿀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게는 뒤가 없었다. 지금 이걸 바꿀 수 없다면 수십만 원의 예약금이 날아갈 것이다. 나는 과감함 말고 남은 것이 없었다. 곧바로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해외전화 비용이 얼마가 나오든 호텔비보다는 싸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몇 번의 착신음을 뒤로하고 곧바로 귓가에 새로운 언어가 들렸다.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영어로 인사를 하고 간단히 용건을 말했다.


 간결하게 용건만 말했지만 영어로 대화한 경험이 많이 없는지라 꽤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아서 놀랐다. 사람들이 영어 울렁증이 생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용건을 모두 전하고 난 뒤 잠시 동안의 침묵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


 이후에 나온 언어는 다행히 내가 아는 영어였다. 발음은 조금 달랐지만, 간단한 설명으로 코로나 증명 서류를 메일로 제출하면 1회에 한해서 바꿔주겠다는 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복했다. 변경 불가로 되어있어서 생 돈을 날리고 다른 곳을 잡을 각오까지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은  학교였다. 참여하는 수업의 교수님 메일을 모두 찾아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홍콩은 우리나라보다 대학교 내에서 대면  전환이 한 학기 늦어졌기에 22년 2학기에도 hybrid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나처럼 코로나에 걸려서 집 안에서 듣는 것에  교수들은 익숙해있었다. 그래서 허가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했고, 내게는 너무나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2주의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한국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공사별로 터미널이 다른 것을 모르고 2 터미널로 잘못 가기도 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비행기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비행기를 출발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난리였는데 홍콩은 어떤 느낌일까. 과연 내가 무엇을 겪을까?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 교환학생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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