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홍콩 견문록 3화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창 유행했던 <탑건:매버릭> 영화를 즐기니 금세 도착했다. 그만큼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리니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곧바로 건물 안 검사소로 직행하도록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모두 막아놓았다.
주변 사람들이 쓰는 외국어를 들으며 -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언어가 광둥어였다 - 길을 따라가다 보니 하얀 간이 천막 왼쪽 5개, 오른쪽 5개로 총 10개가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마스크를 쓴 중년인 두 분이 빈 천막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고 내게 오른쪽 2번째 천막으로 가라고 짧은 영어로 말해주었다. 그 말을 따라 천막 안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다. 사실 코에 찌르는 것이 조금 무서웠는데, 여기 간호사 분은 혀 안쪽을 긁어서 검사해 편안하게 검사받을 수 있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도 줄은 끊기지 않았다. 공항 전체가 하나의 줄로 이동하도록 되어있어서 쭉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뭇가지처럼 줄이 갈라지는 곳이 나왔다. 각 가지에 있는 팻말을 보니 격리 호텔의 주소에 따라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정해져 있었다. 내가 갈 곳은 판다 호텔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호텔이었고, 12번의 줄로 가니 운 좋게 바로 버스가 와서 오래 서있지 않고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니 처음 보인 것은 어두운 바다였다. 인천공항을 갈 때처럼 길고 커다란 다리가 바다 위에 놓여 있었고, 쭉 달리다 보니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건물을 보았을 때 그곳이 아파트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물론 한국에도 높은 건물들이 많지만, 그런 높은 건물들이 10개 넘게 붙어있는 광경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망권이라는 법칙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밀도가 1970년대부터 쭉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히 성공의 상징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도착한 격리 호텔의 내부는 생각보다 낡았다. 그러나 이후에 홍콩의 다른 건물들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홍콩의 건물 내부는 대부분 한국보다 낡았다. 더 정확히는 전 세계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빠르게 발전한 만큼 건물들이 더 새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첫날에는 호텔 건물이 너무 낡았다는 것에 조금 실망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익숙해지니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서 괜찮았다.
격리는 총 3일간 진행되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가는 시기인 8월 중순부터 7일 격리가 완화되어 3일 격리 + 4일 모니터링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식사는 매일 도시락과 유사하게 제공되었는데, 전부 호텔 내부에서 요리해서 제공하는 듯한 음식들이었다. 고급 조식 느낌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제공했다. 첫날 밤에는 미트볼 스파게티로 시작해 수프와 빵, 베이컨 뿐만 아니라 꽃빵에 고추잡채까지 다채롭게 나와서 좋았다. 식중독에 걸리기 쉬운 성질의 나에게는 소화도 잘 되고 맛도 무난한 일석이조의 환경이었다.
그렇게 짧은 격리가 끝나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 오전 11시. 한국보다 따뜻한 날씨에 바람도 산들산들 불어오는 것이 기분 좋은 날이었다. 호텔의 출구와 연결된 육교부터 스쳐 지나간 빵집, 그리고 가족들이 모인 놀이터까지. 걸으면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분명 한국과 비슷할 텐데도 새롭고 재밌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문득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궁금해지는 의문. 나는 결국 입으로 의문을 꺼내 뱉었다.
"여긴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