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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치유 Apr 10. 2024

칵테일과 함께 즐기는 월드컵

11/26(토).


 이 날 마지막 수업이 끝났는데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강의 시간이 곧 시험이었는데, 홍콩에서는 마지막 수업 이후 2주 정도의 공부하는 시간을 주고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온다. 그래서 12월 중순에 있는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그만큼 범위를 다루고 난이도도 어렵다.


 특히 신기한 것은 시험 장소. 홍콩 이공대에서 중간고사는 한국처럼 평소 강의하던 강의실에서 봤는데, 기말고사는 달랐다. 더욱 공정성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수업을 듣는 학생과 섞어서 강당, 탁구장, 대형 강의동 등 각 장소별로 2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험을 보았다. 이런 방식은 옛날 수학 경시대회 할 때나 입시할 때에만 겪어봤는데, 다시 넓은 곳에서 혼자 고립되어 시험을 보니 초심을 되찾게 되는 점이 좋았다.

기말 당시 내가 시험 본 장소. 정말 경시대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11/28(월) : 월드컵 가나전


 올해 한정으로 취미가 생겼다. 바로 월드컵 관람. 대한민국 vs 가나전이라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만큼 같은 한국인인 호 형에게 함께 월드컵을 관람하자고 권했다. 그러자 호 형이 월드컵을 보기에 좋은 술집이 침사추이에 많다고 해서 직접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침사추이로 내려가니 월드컵 열풍이 굉장했다. 거리의 모든 술집들이 세계 나라별로 국기들을 벽면에 붙여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한국의 외국인 비율이 2022년 기준 3.4%(외국인 1,752,346명 / 51,672,569명)인 것에 비해 홍콩은 8.4%나 되니 확실히 전체적으로 월드컵을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홍콩이라 한국처럼 소주를 먹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맥주를 먹을 수 있는 펍(Pub)이나 칵테일집이 많아서 월드컵 관람할 만한 곳은 넘쳐났다. 그중 2개를 사면 1개를 무료로 준다는 곳이 있어서 저렴하게 분위기 내기에 좋아 보여 들어갔다.



 칵테일 종류가 참 많았지만 정작 메뉴판에 적힌 재료들은 술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은 우리 둘이 보고 알기는 힘들었다. 다행히 알코올 도수 순으로 메뉴판을 만들어서 도수가 낮은 앞쪽에서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쪽으로 2가지를 골랐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한국 경기가 곧바로 시작한 뒤 호 형과 대화를 하다가, 축구를 보다가 양 쪽을 교대로 하는 게 꽤 힘들었다. 그러다가 바깥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에 빠르게 티비를 향하니 한국 골대에 들어가는 첫 골이 보였다. 가나의 선취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골까지...


 호 형은 전반전이 끝나니 이건 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씁쓸해하며 칵테일을 마시는 호 형을 보며 나는 질 것 같지만 한국이 한 골 넣는 건 보고 가자고 말했다. 지는 것 자체는 그렇게 화나지 않았다. 교환학생을 와서 요새 번아웃을 겪어서 그런가 한국 국가대표들이 완전히 타지에서 훈련하고 경기를 뛰는 모습이 더 존경스러울 뿐이라 한 골만 넣어주면 아쉬움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후반 13분, 가나의 골대 앞에서 낮은 슬라이딩 헤딩이 성공했다. 골을 넣은 순간 오! 놀랐지만 후반전에 역전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한 선수가 몸을 투포환처럼 던져 헤딩을 했다. 다이렉트로 골망에 꽂히는 골! 들어가자마자 저절로 박수를 치고 주먹이 불끈 쥐게 하는 골이었다. 다시보기로 보아도 정말 모든 걸 던진듯한 높은 헤딩. "대한민국의 조! 규! 성!" 그 순간이 조규성이라는 세 글자가 내 머릿속에 강렬히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호 형과 내가 손뼉 치며 엄청나게 신나 하니까 옆에 있던 홍콩인 30대 초반 3분이 우리에게 한국인이냐고 영어로 물어봤다. 맞다고 하니 한국식으로 "파이팅!"이라고 응원해 주셔서(원래 cheers! 가 더 정식 표현)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글로벌한 친화성에 감사했지만 아쉽게도 가나에게 3대 2 패배. 그렇지만 솔직히 아쉽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교환학생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쌓이는 싱숭생숭한 기분이 한 번에 풀어지는 기분이었고, 그런 기분을 준 선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스포츠로 하나 되는 세계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게 얼마나 좋은 느낌으로 와닿을 수 있는지 홍콩에 오고서야 다시 깨달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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