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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평 Sep 27. 2024

세 번째 우울 - 강박

시급 6,800원

 20살이 된 내 첫 목표는 바로 ‘자퇴하기’야!

 장난치지 말라고? 나 진심이야. 내가 엄마 아빠한테 영화학과를 가겠다고 했지만, 바로 받아들이셨겠어?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얼마나 황당하시겠어. 이해해. 하지만, 이해한다고 난 물러나지 않아. 당연히 안된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떼를 써봤어. 딱 1년만 달라고. 어떻게든 학교 붙어오겠다고 했지. 아빠가 회사를 더 좋은 곳에 옮기게 되셨거든. 이사도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됐고! 간만에 여유로워졌잖아? 타이밍도 딱 좋길래 한 번 질러봤지. 근데, 내가 의외의 말을 들어버렸어.

 “우리 이사 안 가.”

 진짜 거짓말이라고 해줘.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 아빠는 주부가 되었고, 엄마는 일을 나가기 시작하셨어. 요즘 물가 장난 아닌 거 알지? 근데 우리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100만 원이 안된다니까! 모험은 개뿔 굶어 죽게 생겼어.

 하지만 어떡해. 그렇다고 이렇게 살 순 없잖아? 난 이미 세상엔 안정감 있는 삶이란 건 없다고 배워버렸는걸. 그래서 엄마아빠한테 제안을 했어. 영화 입시 관련해서 모두 내가 감당하기로. 학교 알아보는 것도, 학원 알아보는 것도, 심지어는 학원비, 입시비 모두 내가 감당하기로 했어. 대학교도 다닌다고 했어. 대신, 딱 반년 다니고 휴학하는 조건으로. 이렇게 적극적인 날 보고도 우리 엄마아빤 날 한심하게 쳐다보시더라. 응원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좀 우울하지만, 괜찮을 거야. 

    

 “하평! 오늘 끝나고 닭발 먹으러 갈래?”

 하.. 나 닭발 귀신인 건 어떻게 알고.. 그렇지만, 난 먹으러 갈 수 없어. 왜냐고? 자, 지금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줄게.

 우선, 내 한 달 용돈은 20만 원이야. 주말마다 집 가는 차비 합쳐서. 시외버스 차비는 편도 3,400원이야. 내가 생일이 안 지나서 아직 미성년자 요금을 받으시더라고. 그럼 왕복 6,800원이지? 이걸 4주 동안 반복하면 27,200원이야.

 그리고 난 주말마다 편의점 알바를 하기로 했어. 하필 내가 사는 도시가 작은 도시라 알바자리가 많이 없거든. 알바를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없는 거지. 그래서 최저시급도 못 받아. 말이 되냐고? 이 편의점도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거야 내가.. 편의점 시급은 6,800원이야. 일주일에 딱 14시간 일해. 주휴수당 안 주려는 의도인 것도 알지만 어쩌겠어. 14시간 4주 일하면 56시간이지? 그럼 내 한 달 월급은 380,800원이야.

 영화학과 입시를 하려면 영화입시학원이 필수야. 학원을 가지 않으면 시험 유형도 제대로 알 수 없어. 영화관련된 책들은 거의 다 뒤져보았지만.. 입시는 도저히 감이 안 오더라고. 휴학하고 딱 3달 학원을 다니기로 했는데.. 글쎄 학원비가 한 달에 60만 원이야. 그럼 3달 다니면 180만 원.. 아, 시험 보는 달엔 전화로 수업을 하는 데 그건 40만 원이래. 그럼 총 220만 원.. 와우! 그럼 난 거의 6달 알바비를 아무 곳에도 쓰지 않고 모아둬야 해. 아, 학교원서비도 거의 50만 원이 넘더라. 알바비뿐만 아니라 용돈도 최대한 아껴서 돈을 세이브해둬야 하는 처지였지. 그럼 9월까지 6달 남았으니까 한 달에 80,000원은 세이브해야 하는 거지.

 자, 이렇게 되면 난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딱 92,800원이야. 식비만으로도 대학생에겐 턱없이 부족하지. 하지만 별 수 있나.. 최대한 안 먹고 생활하는 수밖에. 다행히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학식카드가 있었는데, 한 달에 딱 30번 사용할 수 있었어. 그거 덕에 굶진 않았지만.. 배고픔을 못 참고 학식카드를 하루에 2번 사용한 날엔 다음 날을 각오했지. 다음 날엔 삼각김밥 하나 먹을 수 있었으니까.

 대학생활은 나한테 사치였지 뭐. 그래서 더 마음을 굳게 먹었어. 어떻게든 합격해서 이 학교를 자퇴하겠노라.. 하고. 물론, 학교는 죄가 없어 하하

 더 놀고 싶기 전에 얼른 알바나 가야지.


 아, 저 새끼 또 왔네.

 전국의 편의점 알바생들이라면 한 번씩은 읊조려본 멘트일걸? 진짜 편의점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오거든. 물론, 정 넘치고 잘해주시는 분들도 너무 많지만.. 사람은 선플보단 악플을 더 쉽게 기억하잖아. 좋은 손님들 본단 진상새끼들이 더욱 기억에 남지. 암튼, 우리 편의점엔 바나나우유 빌런이 있어. 꼭 바나나우유를 사는데, 옆구리를 터트려서 먹는다? 참 희한하지? 처음엔 당황스러워서 힐끔 쳐다봤는데, 이젠 신경도 안 써. 그건 그 손님들 마음 아니냐고? 고작 바나나우유 옆구리 뚫어 마시는데 저 ‘새끼’는 심한 거 아니냐고? 왜 저‘새끼’가 됐는지 이야기해 줄게.

 어느 날 그 새끼가 또 바나나우유를 사러 왔어. 근데, 바나나우유를 고르다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카운터로 오더라고

 “저.. 정말 죄송한데.. 우유가 터져서.. 구매하려고요.. 터진 우유는  제가 구매할게요. 너무 죄송해요..”

 아.. 생각보다 착한 놈이었잖아? 특이할 뿐이지 내가 좀 오해를 했구나 싶어서 친절하게 대해줬어. 우유 닦는 것도 도와줬지. 그러더니 그놈은 너무 감사하다가 히죽히죽 웃는 거야. 기분이 묘했지만 일단 나도 웃어주고 카운터로 돌아왔어. 그리고 담배를 마저 채우는데,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그놈이 바나나우유 옆구리를 쪽쪽 빨면서 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더라고. 좀 당황했지만 애써 모른 척 다시 담배를 채워 넣었어. 에쎄 수 0.1까지 채웠나.. 그놈이 카운터로 다가오더라고. 그러더니 화장실이 어딨는지 묻는 거야. 난 또 화장실을 안내해 줬어. 그놈은 또 히죽 웃으며 화장실을 갔지. 아, 묘하게 찝찝했지만.. 착해 보이니 그냥 냅뒀어. 화장실을 다녀온 그놈은 나한테 어쩔 줄 몰라하며 고마워하더라.

 “너무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화장실 알려준 것도 은혜를 갚아야 하나..? 뭐.. 지릴 뻔 한 걸 막아줬으니 고마울 순 있어. 그래서 나도 친절하게 대답해 줬지.

 “아녜요~ 당연한 건데요 뭘..”

 그러자 그놈은 포스트잇 한 장과 볼펜 하나를 나에게 건네면 말했어.

 “너무 감사해서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번호 좀 적어주세요..”

 그러고는 얼굴을 씨익 붉히더라. 정말 역겨웠어. 뭐? 마음에 드는 이성한테 번호 좀 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 그럴 수 없어.

 그놈은 누가 봐도 우리 아빠 또래 50대였어..!     

 아, 저 새끼 또 왔네. 저 놈은 비닐봉지 빌런인데.. 이건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 정말 진상들 이야기는 끝이 없다니까?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못했어. 나한텐 17년 지기 친구 지선이랑 혜윤이가 있는데 걔네도 반년 넘게 못 본 거 같아. 하루는 지후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줬어. 잘 지내냐고 한 번 보자는 뻔한 이야기였지. 그 말에 나도 시간 나면 꼭 보자는 뻔한 답변을 해줬지. 그날따라 유독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길래 징그럽단 말도 덧붙여줬어.     


 드디어 세 달 치 학원비와 원서비를 다 모았어. 직접 학원도 수소문해서 상담받고 등록했지. 원장선생님께서 부모님 없이 혼자 방문하는 학생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셨어. 뭔가 특별해진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지만, 좀 울적하기도 했어. 다들 엄마랑 같이 오더라고.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시작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설렜어. 정말 모험을 시작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그 모험을 마냥 즐겁게 할 순 없었어. 오롯이 내 돈으로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라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웠거든. 근데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어. 하기 싫은 날엔 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 난 그 친구들이 너무 이상해 보였거든. 근데 남들 눈엔 내가 더 이상해 보였나 봐.

 “눈이 거의 판다네 판다야”

 날 빤히 바라보던 선생님께서 하신 말이야. 그리곤 나에게 꼭 쉬어야 한다고 하셨어. 아니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닌가? 왜 나에게 쉬라고 하시는 걸까? 난 정말 이거 아니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떨어지면 선생님께서 책임져주실 거 아니잖아? 물론 이렇게 말하진 못했지만, 내 표정에서 내 마음이 조금 드러났나 봐. 날 보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어.

 “자동차도 기름 넣어야 움직여. 너 충전 좀 해야겠다.”

 충전하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선생님 말씀이라면 곧이곧대로 하던 내가 처음으로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어. 그 덕분이었을까?

     

 <합격을 축하합니다>

 첫 학교부터 합격을 받았지. 물론 이게 8개 학교 중 처음이자 마지막 합격증이었지만, 상관없었어. 어찌 됐던 드디어 내가 원하는 걸 해볼 수 있는 거잖아?

 근데 뭔가 이상해. 분명 내가 원하는 걸 시작하게 됐는데, 여기서 1등 못하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생각을 해봐. 이 세상에 영화하겠다고, 연기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학교는 그중 정말 소수의 사람이 모인 것일 텐데.. 여기서도 1등 못하면 난 밖에서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어. 분명 합격하면 쉬려고 했거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충전이란 걸 해보려 했는데, 내 손은 또 책으로 가고 있어. 이게 무슨 기분이냐면.. 드라마 <프렌즈> 시즌 1 1화에서 로스가 이런 말을 해.

 "누군가 내 목 안에 손을 넣어서 소장을 꺼낸 뒤 내 목에 칭칭 감는 기분이야."

 이보다 내 기분을 완벽하게 설명한 문장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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