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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평 Oct 03. 2024

네 번째 우울 - 죽음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방법



 죽음이란 뭘까? 내 몸에 있는 영혼이 빠져나가 저승으로 가는 거겠지? 그렇다면 저승은 어떨까? 저승에선 이승을 볼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저승에서 날 봐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거든.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냐고? 뭐.. 드라마 <도깨비>에 은탁이를 따라다니는 귀신들처럼 깜짝 놀라게 하며 나타나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렇다면 정말 반갑게 맞이해 줄 자신 있어.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러다 내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야.     


 내 학창 시절 별명은 잠만보였어. 이유는 잠만보라는 이름 그대로 잠이 많아서. 진짜 살면서 가장 많이 자 본 시간이.. 23시간인가.. 24시간인가.. 우리 엄만 그때 내가 정말 죽은 줄만 알았대. 어쩐지 코 밑에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하더라.

 아무튼, 그런 나의 수면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이었어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어떻게 버티냐고? 으으응, 평균 4시간이라고 했잖아? 아예 안 잔 날도 있어. 하하.

 그런데 말이야, 모두가 해서 하는 공부를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건 정말 천지차이야. 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영화 작업만 들어가면 잠을 자지 않아도 힘이 막 솟아! 잠을 포기해서라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퀄리티를 높이려 애를 쓰지.

 사실 정말 좋아서 그러는 것도 있지만, 알잖아 나 1등 해야 하는 거. 여기서도 1등 못하면 난 정말 큰일 난다는 거. 그래서 이렇게 애쓰고 있어. 근데 이 기분이 나쁘진 않아. 정말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된 것만 같거든. 본가에도 못 간지 벌써 3달이 넘었고, 친구들은? 당연히 못 만난 지 엄청 오래됐지. 입시할 때부터 못 봤으니까 1년은 넘은 것 같아. 지선이랑 혜윤이 마저도 못 본 지 1년이 훌쩍 넘어버렸어. 걔네가 서운해하지 않냐고? 에이, 나랑 일 이년 만난 것도 아니고 우린 무려 17년 지기라니까! 아, 아니지 1년 지났으니까 18년 지기야! 노부부가 서로 못 본다고 서운해하는 거 봤냐? 우린 그런 사이야.

 그리고 우린 이번 여름방학에 오랜만에 셋이 뭉치기로 했어. 가끔 나한테 안부 전화나 문자가 오곤 하더라고. 짜식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가? 나도 보고 싶어. 상황이 안 될 뿐이지. 난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애들도 이해해 줄 거야.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미루고 여느 때처럼 열심히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어. 나 나름 학교에서 인정받고 있어. 성적도 1등이고, 실기도 매번 시나리오가 뽑히는 바람에 연출로 작업하고 있다니까? 나름 뿌듯하기도 해. 그리고 더욱 날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도파민도 엄청 뿜어져 나온다구. 3일 내내 쪽잠으로 버텨온 탓인지 다크서클은 거의 턱 밑까지 내려오지만.. 이것마저 뿌듯해.

 “호로록!”

 아, 진짜 맛있게도 먹네. 내 맞은편에 앉아 야무지게 면치기를 하고 있는 이 친구는 내 동기 규린이야. 나의 든든한 조력자지. 얘도 나처럼 다크서클이 장난이 아니야. 그래도 입맛이 도나 보네. 참 맛있게도 먹는다. 어이쿠,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나?

 “한 입 하실?”

 침이 꼴딱 넘어갔지만 고개를 내저었어. 한 입 먹는 순간 입이 터질 거고, 입이 터지면 밥을 먹기 시작할 거고, 그럼 졸리단 말이야.

 라면의 유혹도 뒤로하고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네? 확인을 해보니 혜윤이야. 이상하다.. 얘 지금 나처럼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

 그때, 갑자기 뭔가 쌔한 차가운 기운이 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어. 분명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인데 한 3초 으슬으슬 추웠다니까? 무서워서 받기 싫었지만 받아야만 하는 전화 같았어. 벨소리가 꽤 오랜 시간 끈질기게 이어졌거든.

 “여보세요?”     


 전화를 받고 난 뒤 난 자리로 돌아왔어. 규린이는 먹던 라면을 제쳐두고 나를 살피기 시작했어. 참 이상해. 눈앞이 뿌예지더니 내가 쓰던 글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래도 정신을 잡고 계속해서 글을 적어보려 했어. 어떻게든.. 어떻게든 적어보려 했어.

 “지금 이거 할 때가 아니야!!!!”

 규린이의 말에 뿌옜던 내 눈이 다시 맑아졌어. 대신 큰 눈물방울이 내 빰을 타고 흘렀지. 한 방울 흘리기 시작하니 두 방울, 셋 방울, 눈물방울은 쉴 새 없이 흐르기 시작했어. 내 입에선 사람 말인지 짐승 말인지 모를 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어. 학교 휴게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날 안쓰럽게 쳐다보기 시작했어. 휴게실이 작은 탓인지 내 통화소리를 들은 듯해. 결국 난 규린이의 손에 이끌려 작업하던 것들을 모두 중단하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     


 규린이는 나에게 남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 난 할 수 있다고 했지. 학점을 날릴 순 없잖아? 그래도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구석에 앉아있었어. 교수님께선 따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 가져다주셨지. 휴게실에서부터 흐르던 눈물방울들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거든. 한 칠십 네 방울 째 흘렸을 땐 목이 마르더라. 그래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정수기로 나가 물을 한 입 마셨어. 그거 한 입 마셨다고 충전이 됐는지 또다시 눈물방울이 생성되더라고. 팔십 두 번째, 팔십 세 번째... 한 백 이십 번째 눈물 방울이 흐를 땐 다른 동기들도 날 안아주기 시작했어. 그래도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어.     

 강의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안 나. 규린이는 내 손에 포카리스웨터 1.5L를 쥐어줬어. 난 자취방에 들어가 포카리스웨터를 모조리 다 마셔버리고 눈물도 그대로 1.5리터 쏟아냈지.

 또 내 휴대전화가 울리더라. 받기 싫었지만 받아야 했어. 엄마였거든. 전화를 받으니 엄마도 울고 있었어. 울면서 내가 어떻게 본가로 내려올 건지 옷은 뭘 입을 건지 이야기하시더라. 3개월 동안 못 내려간 본가를 이렇게 내려가게 될 줄이야.     


 “엄마, 나 검은색 자켓은 없었나?”

 내 말에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옷장을 뒤적거렸어. 그리고 말씀하셨지.

 “.. 네 나이에 그걸 입을 일이 없지.”

 그러곤 엄마는 자신의 옷장을 열어 조금 커 보이는 검은 바람막이를 꺼냈어. 봄이지만, 꽃샘추위 때문에 조금 추웠거든. 딱히 멋은 없었지만 그 날 만큼은 난 아무 말 없이 순순히 그 검은 바람막이를 입었어. 바람막이를 입었는데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쎄함은 막아주지 못하더라.     


 건물 밖엔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드레스코드는 블랙이었지. 시커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 마치 저승사자 회사에 온 기분이었달까. 저승은 이런 기분일까? 어색하게 서 있는 나에게 혜윤이가 다가왔어. 1년 만에 보는데 이렇게 칙칙한 검은색 옷을 입고 만날 줄이야. 우리 둘은 별 말 않고 서로 손을 꼬옥 잡았어. 손이라도 안 잡으면 정말 저승사자가 나한테 뛰어올 것만 같았거든. 그리고 우린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눈물방울을 흘리기 시작했어. 이번엔 몇 번째 방울까지 흘렸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많이 흘렸던 것 같아. 우리 삼총사 아니었냐고? 지후는 어딨 냐고? 지선이는 조그마한 액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어. 눈물방울은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지. 지선이 사진 양 옆으로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어. 그리고 난 알았지. 오늘은 포카리스웨터 1.5L로는 안 되겠구나.  

   

 1주일 동안 난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했어. 그게 어떻게 하냐고? 이승에서 하는 말이 들리지 않고, 저승으로 가고 싶단 생각을 계속하면 왔다갔다한 거 아닌가? 몸은 이승에, 정신은 저승에 있었던 거잖아. 난 그렇게라도 지후를 만나고 싶었어.

 그래도 잠시 정신이 이승에 있을 때 엄마한테 여러 이야기를 했지. 그중에서도 후회를 가장 많이 한 것 같아. 말을 하면 할수록 지치긴 했지만, 무언가가 조금 풀리긴 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죄책감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두렵기도 했어. 지애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미루고 미루기만 했으면서 이제 와서 친한 척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너무 두려웠어. 엄마는 그런 날 위해 내가 좋아하는 엽기떡볶이를 시켜주셨어. 나는 그 떡볶이 마저 죄책감을 반찬으로 삼아 함께 먹었지.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한 마디 하셨어.

 “이젠 좀 놔”

 처음으로 떡볶이 먹고 체한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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