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얇은
난 얇고 긴 게 좋아. 모두들 짧고 굵게 살고 싶다고 할 때도 난 홀로 외쳤지.
“난 얇고 길게 살 거야!”
돌잔치 때 실 잡으면 오래 산다는 의미잖아. 실도 얇고 긴 걸 보면.. 얇고 긴 게 좋은 거 아닐까? 이런 나의 생각을 하늘에서 들은 건지 ‘불행’도 얇고 길게 주셨지 뭐야! 사실 얇다고 생각했지만, 다 쓴 치실처럼 조금씩 두께가 부풀어 오르더라고.
내가 수능을 망친 날, 우리 집은 그래도 분위기가 좋았어. 딸이 수능을 망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우리 아빠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게 확정되었었거든. 사실 나도 수능 망한 건 슬펐는데, 집이 더 넓어지고, 우리 집 환경이, 형편이 좋아지는 건 너무 기뻤어. 입시는 망해도 또 도전할 수 있잖아? 그리고 하나가 좋은 것보단 넷이 좋은 게 나으니까.
이사 갈 집을 보러 간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신이 났어. 집도 더 넓어지고, 쾌적하더라. 옥상도 우리 몫이라 밤엔 멋진 밤하늘을 보고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었지. 마당도 넓어서 뛰어다니기도 너무 좋아 보이더라! 물론, 이제 뛰어놀 나이는 지났지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친구들이 이별파티를 해줬어. 파티라고 해봤자 떡볶이 먹으며 수다 떨고, 노래방 가서 케이팝 메들리 신나게 부른 다음 인절미 빙수로 마무리하는 거지 뭐. 아, 나 몰래 케이크도 준비했더라? 짜식들.. 난 친구들에게 이사 후 꼭 집에 초대해서 옥상에서 고기파티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어. 자주 못 보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 뭐.. 맨땅의 헤딩으로 영화학과 입시를 해야 했지만, 저 설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버텼던 것 같아.
즐겁게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어. 한 12시쯤? 좀 많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뭐 어때? 나도 이제 성인인데! 근데,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어. 아.. 조금만 일찍 들어올 걸 그랬나.. 괜히 등꼴이 오싹하더라고. 눈치도 보이고. 그래, 늦게 들어온 건 내 잘 못이니까! 내가 조금 굽히고 들어가지 뭐. 아빠한테 괜히 질문 하나를 던졌어.
“아빠! 우리 이삿날이 정확이 언제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뇌정지가 왔어.
“우리 이사 안 가”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나 방금 이사로 인한 이별파티 하고 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다시 엄마, 아빠 표정을 둘러보니 내가 살면서 처음 보는 표정들을 짓고 계시더라. 뭐랄까.. 허무함과 분노와 억울함과.. 그날 사람 표정에서 그렇게 많은 감정이 느껴질 수 있는 걸 처음 알았어.
그래서, 진짜 이사 안 갔냐고? 아니? 갔어! 가긴.. 갔지. 이전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되는 곳이었어. 난 우리 가족이 과거로 돌아간 줄 알았잖아.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이 15평 아파트였거든? 물론.. 그곳보단 컸지만, 거실부터 우리 네 가족이 함께 둘러앉기 힘든 좁았어. 다행히 방도 몇 개 있었지만, 모두 두 다리 쭉 뻗고 누우면 끝나는 방들이었지. 이사를 오면서 짐을 얼마나 버렸는지 모르겠어. 나중엔 ‘지구야.. 미안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집만 바뀌었으면 살만했을 거야.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서 문제였지. 우선, 내 생활은 입시에 맞춰졌어. 오롯이 내 의지만으로. 엄마 아빠는 응원은커녕 내가 그만했으면 하는 눈치셨지. 아니 대놓고 하지 말라고 하시던가 은은히 돌려서 비꼬는 게 더 열받는 거 알지?
그리고 아빠가 집에 오래 있기 시작했어. 아니, 집 밖을 나가지 않으셨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러지 않을 때엔 방에만 계셨지. 엄마는 조금씩 일을 늘려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약 20년간 주부로 살다가 그러기가 쉬워? 그 시절 우리 네 가족의 한 달 평균 생활비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어.
그래서 불행했냐고? 응 불행했어. 돈이 없어서 참 어려웠겠다고? 아니? 사실 그건 견딜만했어. 집도 옷도 먹을 것도 없어서 밖에서 덜덜 떨며 노숙을 했더라면 돈이 불행의 원인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의식주는 해결이 되었었거든. 돈 때문에 불행하지 않았어. 당장 돈이 없는 것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고. 미래에도 돈이 없을까 봐 불안하고 불행했어. 당장 닥친 일들은 슬쩍 넘어가면서 당장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불행했었어 우린.
그 미래는 엄마아빠를 많이 무너뜨렸어. 우리 아빠는 방방이를 타기 시작했어. 하루에 바닥과 천장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어. 뛰어 올라갈 땐 천장을 넘어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이 올라갔어. 마치 미친 사람인 것처럼 웃기도 하고, 긍정적인 말만 잔뜩 하셨어. 그러다 조금씩 내려와서 도움닫기를 할 땐 한 없이 땅 밑으로 내려갔어. 아빠가 도움닫기를 하는 날엔 집이 한없이 차가웠지.
아빠와 내 동생 건이는 많이 싸웠어. 건이가 많이 얌전하고 착하거든. 아빠는 도움닫기를 하는 날마다 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 사실 아빤 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난 얌전히 아빠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았어. 그랬더니 건이에게 가기 시작하더라고.
건이는 학교를 정말 싫어했어. 사실 우리 건이는 학교를 조용히 다녔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렇게 말썽쟁이였냐고? 아니? 시끄러운 놈들의 먹잇감이 되었지, 그래서 건이는 늘 학교를 싫어했어. 우리 가족은 매번 해결해보려 했지만, 더러운 대한민국에서 권선징악은 기적에 가까운 거더라. 그렇게 건이는 바깥세상에 벽을 조금씩 쌓기 시작했어. 그래도 다행히 우리 가족에겐 벽이 없었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솔직했으니까. 하지만.. 아빠가 도움닫기를 할 땐 솔직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둘은 매일같이 싸웠어. 아빠는 건이가 못마땅했어. 나중엔 건이가 무슨 말을 하던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해. 나름 무서운 표정인데 늘 아빠의 동공은 심히 흔들렸어. 건이는 그런 아빠의 동공을 보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어.
사실 나는 아빠도 건이도 이해해. 건이 걔는 가끔 사람 미치게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건이는 이상주의자야. 가끔은 현실에 살지 않는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란 걸, 하지만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이야기했어. 아니, 실행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것들 있잖아. 아빠는 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건이에게 현실을 알려줬어. 건이는 그 현실을 부정했어. 아빠는 건이가 부정하는 그 사실들을 부정했어. 둘은 부정을 서로 주고받았어.
엄마는 아빠도 건이도 모르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어. 처음엔 재밌었어. 비밀이야기는 재밌잖아. 그런데,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이 넘어가버리면 힘들더라. 엄마는 나에게 슬픔도 분노도 황당함도 억울함도 모두 나눠주었어. 그리고 엄마는 끝에 엄마의 소원이 하나 생겼다고 털어놨어.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으면 좋겠어”
엄마도 건이처럼 이상주의자가 되어가나 봐.
이게 바로 파국 아닐까?
3년째 진득하게 우리고 있는 국.
깊다 못해 쓴 맛까지 우려 나왔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