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평과 건
현실남매라고 알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알콩달콩하고 사이좋은 남매가 아니라 서로 치고받고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그런 사이의 남매. 물론 남이 내 형제 건드리는 건 못 참지만, 나는 어떻게든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그런 사이. 이게 현실남매라면 나와 건이는 현실남매가 아니야.
나와 건이는 싸워본 적이 손에 꼽아. 사실 싸웠다기 보단 건이가 매번 나의 지랄 맞은 성격을 받아줬어. 나는 어릴 적부터 골목대장 스타일이었고 건이는 얌전하고 예쁜 아이였거든. 그래서 그런지 가끔 못된 새끼들이 우리 건이를 괴롭히곤 했어. 그럴 때면 난 항상 건이 손을 잡고 그 새끼들을 찾기 시작했어.
“누가 내 새끼 괴롭혔어!!!”
건이는 나에게 동생 이상이야. 내 새끼야.
내 새끼는 누가 지켜? 내가 지켜야지. 난 항상 건이를 지키고 싶었어. 그래서 늘 건이 옆에 붙어 다녔지. 누가 건이를 괴롭힌다고 한들 늘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난 평생 내가 건이를 지키겠노라 마음먹었어.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건이는 내 남동생이야. 남자란 의미지. 우린 남매야.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지.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다르잖아? 남자애들 성장이 상당히 빨리 이루어지더라고. 어느 순간 건이가 나의 키를 따라잡고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어.
그럼 건이만 나를 내려다봐? 아니지. 건이를 괴롭히는 그 새끼들도 나를 내려다보는 지경에 이르렀어. 그 새끼들은 더 이상 내가 무섭지 않아 보였어. 난 또래보다도 작아. 그래서 저 정도면 한 입거리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을 거야.
그렇게 더 이상 나는 건이를 지킬 수 없었어. 건이와 함께 청소년 수련회를 갔을 때 내가 아닌 내 친구들이 함께 힘을 합쳐 건이를 지켜주었을 때 고마움과 허탈감이 공존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어. 난 이제 건이를 지켜줄 수 없나 봐. 난 계속 건이를 지켜주고 싶은데.
건이는 항상 날 부러워했어. 나와 건이는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게 반대였거든. 난 키가 작고 건이는 커. 난 보통 체중이지만 건이는 삐쩍 말랐지. 난 외향적이고 낯을 안 가려서 친구가 많았고 (사실 인간관계는 많이 노력한 거지만), 건이는 내성적이고 낯도 많이 가려서 친구가 많이 없어. 난 모든 예체능에 소질이 있지만 건이는 공부에 소질이 있어.
건이는 자신이 가진 걸 보지 못하는 병이 있는 듯해. 그리고 내가 가진 걸 귀신같이 보더라. 건이는 나에게 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
내가 친구가 약속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누나는 친구 많아서 좋겠다..”
내가 그림으로 상을 타오면
“누나는 그림 잘 그려서 좋겠다.. 나는 전공도 하는데 나 보다 잘 그리네..”
“누나는...
그냥 좋겠다..”
어느 순간 건이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워졌어.
나는 건이가 부러워.
내가 실패한 것들을 건이는 다 해냈거든. 건이는 대학을 골라서 갔어. 그것도 현역으로. 분명 나처럼 어마어마한 불수능에 당첨이 되었지만, 특유의 침착함으로 수능을 잘 봤거든. 그리고 나는 머리털 쥐어뜯어가며 겨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공부했지만, 건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엄마아빠의 지원을 받아하고 싶은 미술을 전공했거든.
그리고 엄마아빤 건이에게 관심이 많아. 건이는 어릴 적 내가 지켜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 결국 마음의 병이 생겨버렸지. 엄마아빠는 건이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걸 알아주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알아보고 시도했어. 덕분에 엄마는 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를 하셨고 대학까지 다시 가셨어.
그리고 엄마아빠는 날 믿고 싶어 했지. 나는 알아서 다 잘할 것이라고. 사실은 잘하는 게 아니라 버틴 건데 말이야.
어릴 때도 아빠가 나를 훈육이란 이름 아래 위협하면 엄만 늘 건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 엄마도 아빠를 이기지 못했거든.
예를 하나 들어볼까? 어느 날은 아빠가 내 수학문제를 봐주고 있었어. 우리 아빤 수학을 정말 잘하거든. 수학 선생님도 아닌데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는 정도야. 반면 난 뼛속까지 예체능 인간이잖아? 수학? 잼병이지. 솔직히 아직도 방정식이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아빠가 아무리 설명을 해준 다한 들 바로 그 자리에서 수학 문제가 술술 풀리겠냐고. 아빤 그런 내가 점점 못마땅했고 왜 인지 점점 화가 났어. 그리고 결국 사단이 났지. 언성이 높아지고 하다 못해 나를 계단으로 던져버리고 싶다며 소리를 질렀어. 여기서 내가 조금 져줬어야 했나.. 난 안타깝게도 아빠를 닮아 자존심이 세거든. 지지 않고 계속 아빠를 바라보았어.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지
“빨리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해!!!”
참 이상해. 뭘 사과해야 할까? 수학 잼병이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그것부터 의문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결국 아빠는 약 530페이지가 되는 개념수학 문제집을 들더니 내 옆통수를 있는 힘껏 팍!! 쳐버렸어. 동시에 “쾅!”소리가 났지. 동시에? 우선 내 옆통수가 정확히 가격 당하는 소리와 엄마가 건이를 안고 방문을 닫는 소리가 합쳐져서 하모니를 이루었어. 쾅!! 하고 말이야.
이건 훈육이 아니야 폭력이지. 건이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할 때 구해줬던 것처럼 엄마도 날 구해줘야 했던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아빠가 그러지 않아야 했지만 부모라면 자식을 지켜줘야 하잖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만 그나마 지킬 수 있는 건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피신해 버렸어. 그럼 나는 늘 혼자 아빠의 위협을 이겨냈어. 하지만, 엄만 늘 알아주지 않았어. 인정해주지도 않았어.
계속 나 혼자 버티게 했어.
엄마아빠가 아픔을 알아주는 건이가 난 참 부러워.
가끔은 나 자신보다도 건이가 소중할 만큼 건이를 너무 사랑해. 다들 어떻게 남매끼리 사랑하냐고 하지만, 우리는 늘 마무리 인사가 사랑해야. 그만큼 난 건이를 너무 사랑해. 하지만, 부러움이 질투가 되고 질투는 미움이 되더라. 한 사람에게 사랑과 미움을 한 번에 느껴봤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
난 건이가 참 부러워. 아니, 질투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