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
이제껏 내 이야기들을 들으면 집에서 벗어나면 될 것 같지? 그럼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사실 이제껏 들려준 이야기들은 장작과 기름에 불과해. 장작과 기름이 아무리 많아도 불이 붙지 않으면 소용없잖아. 그래서 난 우울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었어. 아니, 버틸 수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장작들과 기름 사이로 불씨 하나가 툭 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불이 화르르르 번져버리겠지?
그 불씨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발로 들어간 학교에서 만들어졌어. 가족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지만, 학교는 내가 선택한 거잖아? 이렇게 되면 내가 내 발로 우울 속으로 뛰어들어간 것 같아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래서 인생을 알 수 없다는 거 아닐까.
알다시피 난 엄마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화학과에 들어갔어. 처음엔 정말 짜릿했지. 처음으로 오롯이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한 거잖아. 나의 꿈만을 바라보고 말이야. 맨 땅에 헤딩이었지만, 마음도 정말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몇 시간 잠도 못 자서 육체적으로도 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좋았어. 그래서 네임벨류의 대학은 아니었지만, 나름 자부심이 있었지. 내가 오롯이 선택한 거니까.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난 학교에 갈 수 없었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바로 코로나가 터졌거든. 내가 그 불운의 코로나학번이다~ 이 말이야. 영화학과면 실기가 가장 중요해. 우리 과는 4년 동안 영화만 5번은 넘게 만들어. 근데 영화를 어떻게 온라인으로 만드냐? 큰일 난 거지. 그래서 난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어. 실기는 내가 좀 딸릴 수 있지만 이론은 어떻게든 밤새면 해볼 만하지 않아? 그래서 입시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1학년 1학기엔 죽어라 공부했어. 그리고 결국 1등을 찍었지.
뿌듯했어. 1등을 해서 보단 엄마아빠한테 뭔갈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거든. 1등 하고 등록금 전액 면제에 장학금까지 들어오니까 엄청 기뻐하시더라. 과 수석을 하면 다음 학기에 등록할 때 0원 고지서 등록하는 거 알아? 그때 짜릿함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어. 조금씩 엄마아빠한테 뭔갈 보여주고 있구나, 뭐가 되긴 되려나 보다 하는 안도감도 함께 왔지.
코로나가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과 특성상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대면 수업을 시작했어. 여기서부터 내 불씨가 시작되었던 것 같아. 1등을 해도 딱히 인정을 해주지 않더라. 돌아오는 말은 ‘이 과에선 성적은 운이야’였지. 내가 운이 좋았던 걸까?
그래서 다시 이 악물고 실기를 준비했어. 매일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보고 영화의 영자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했지. 하루에 평균 4시간 정도 잔 것 같아. 그때 나의 상태는 입시할 때보다 더 좋지 못했던 것 같아.
이를 깍 물고 달리다 보니 3년 내내 시나리오가 뽑혀서 내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 학교 다닐 땐 팀원들 눈치 보느라 ‘내 작품이 아니라 모두의 작품이지ㅎㅎ’라며 가식 떨었었는데. 내가 쓰고 연출하면 내 작품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사실 세작품 모두 잘 되지 않았어. 첫 작품이 가장 잘 나오고 점점 갈수록 퇴화하는 느낌이었지. 앞에 두 작품 모두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 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작업을 했어. 인간에게 진절머리도 나고, 실기도 어렵고, 왜 이렇게 사람을 컨트롤하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지.
그렇게 불씨가 나타날락 말락 할 때 3학년 작품이 시작됐어. 우리 학교에선 3학년 작품이 가장 중요하거든. 그래서 학교의 모든 좋은 장비는 3학년들 몫이야. 시나리오 뽑는 과정도 정말 길고 힘들었어. 교수님들께서 블라인드 심사까지 봤으니까 말이야. 거기서 난 또 시나리오가 당선되어 작업을 시작하였지.
안타깝게도 시작부터 팀원들과 삐그덕거렸어. 성향이 맞지 않는 것뿐만이라 내 시나리오까지 뜯어고치고 싶어 했거든. 이해는 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니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작업을 하고 싶었겠지. 합의 또한 잘 되지 않았어. 시나리오를 고쳐주지 않자 비협조적으로 나오길래 결국 그들에게 맞춰주는 길을 택했지.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나를 지켜주던 팀원도 2명 있었어. 조연출 유민이랑 중국에서 한국까지 영화를 공부하러 온 달이. 걔네는 유일하게 연출로서 내 의견을 존중하고 날 위해줬어. 함께 잠도 줄여가며 작업을 했지.
하지만, 우리 편은 아무도 없었어. 담당교수마저 우릴 못마땅해했지. 내가 그들을 위해 수정해 온 시나리오를 쓰레기라고 부르며 다시 수정할 것을 요청했어. 시나리오 디벨롭 하는 데에만 몇 달을 허비한 건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들은 나와 유민이, 달이를 무시하기 시작했지. 한 번은 달이의 발표를 듣고 뭐라는 줄 알아?
“달아! 넌 시나리오 소재도 많잖아~ 너희 나라가 우리나라 괴롭히는 걸 써 봐~”
그리고 촬영용 카메라를 빌려야 한다는 달이의 말에
“넌 외국인 학생이라 카메라 대여 못해. 다른 방법 알아와”
우린 정말 기댈 곳이 아예 없었어.
촬영날에도 합은 정말 최악이었어. 우리 셋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그들은 촬영에 관심도 없었어. 함께 작품을 하러 온 배우들과 선배들에게도 난 죄인이 되었지. 결국 내 작품들 중 처음으로 촬영 중단이 되어 버렸어.
그래도 유민이와 달이는 어떻게든 내 작품을 살려보려 노력했어. 촬영이 중단되었지만 촬영해 둔 소스들로 조합하여 어찌어찌 영상을 만들어냈지. 그 엉망진창인 영상의 대가는 F학점이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우리 셋 모두 3학년 작품 시사회를 가지 못했어. 작품이 끝나자마자 거짓말같이 셋 다 모두 앓아누웠거든.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지칠 대로 지쳐있었어. 시사회는 성적 반영이 안 된다는 말에 학회장선배에게 연락을 드린 후 집에서 죽어있었지. 뻗어있는 게 아니라 죽어있었어. 그리고 우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담당 교수는 그걸 빌미로 F학점을 날려버린 거지.
그 이후론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거든. 3년 동안 학교에서 쌓아온 것들이 다 무너진 기분이었어. 결국 난 학교 감사팀에 항의를 하는 방법을 택했지. 3학년 작품을 할 땐 셋이었지만, 이번엔 나 혼자였어. 교수를 대상으로 그것도 실명제로 항의를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 이미 지친 달이와 유민이는 그러지 않고 학점을 받아들였어. 하지만 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걸 택했던 것 같아.
아예 혼자가 되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학교에 가는 게 공포스럽고,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하루는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 옆에 앉아계신 한 아주머니께서 쥐어주신 물병 덕에 살 수 있었지.
그날 이후에도 난 여러 번 숨을 쉬지 못했어. 무슨 느낌이냐고? 숨은 그냥 쉬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냥 뇌가 새하얘져.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그냥 죽겠단 생각만 들어. 그리고 가슴이 턱 막혀. 입을 아무리 움직여봐도 코로 숨을 들이마시려 애를 써봐도 공기는 내 기도를 타고 들어갈 생각을 안 해. 손도 꼬집어보고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내 몸도 괴롭혀봤지만 무용지물이었어. 마치 혼자 싱크홀에 빠져 추락하다가 깊은 호수에 빠져서 가라앉는 기분이야. 근데 그 호수에 상어가 나타나는 거지. 가라앉는 것 마저 평화롭지 못 한 기분이랄까.
집도, 친구도, 학교도 모두 잃어버렸어. 난 어떻게 해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 바닥을 보이고 마는구나.
평화롭게 가라앉아 사라지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