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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평 Sep 20. 2024

두 번째 우울 - 안정감

경우의 수

 다들 꿈이 뭐야?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거 있잖아. 남들이, 심지어는 나조차도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그런 거. 나는 이름처럼 얼굴도 애매해. 모든 게 다 애매하니까 당연하겠지? 근데 난 배우가 되고 싶어! 아, 웃지 마라 나 진지하니까. 아무튼, 다들 이런 기분 알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진짜 어림도 없을 거 같은 거 있잖아. 난 그런 느낌이 강하게 확 왔어. 특히 우리 엄마아빠한텐 더더욱 먹히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한국에는 평균 나이가 있는 거 알지? 통계로도 내잖아. 결혼 평균 나이, 취업 평균 나이, 심지어는 죽는 평균 나이까지! 난 나름 애매하고 중간에 있는 사람이지만, 이 평균이란 소리만 들으면 왜 이리 숨이 턱 막히는지 모르겠어. 숨은 막히는데 나도 평균에 따라가기 못하면 불안하곤 해. 암튼 나도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는 오죽하겠니? 평균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 우리 엄마 아빠가 노래를 부르던 직업이 2개가 있다?

 “딸! 교대 가는 거 어때? 정년이 보장되잖아!”

 “아님 상담 쪽은? 교직 따면 교사도 할 수 있고! 요즘 상담 이쪽이 트렌드래~”

 난 이 말 모두 동의할 수 없어. 우선 교사가 되면 정년이 보장된다고? 엄마아빤 내가 교사가 된다면 얌전히 끝까지 학교를 다닐 거라 생각 하나보지? 내가 지겨워서 그만둘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아이들이 지겨워져서 그만둘 수도 있는 거고, 심지어는 적응하기 힘들어서 그만둘 수도 있는 거잖아? 정년까지 교사생활하는 거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상담 쪽은? 트렌드라고? 왜 트렌드겠어? 그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니야! 어우 상담사 되기 전에 내가 먼저 환자 되겠어.. 사실 우리 엄마가 요즘 심리상담 공부하고 계시거든. 아마 대학원까지 가실 거 같아. 근데 가끔은 우리 엄마가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거 같다니까?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내담자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이러니 내가 하고 싶겠어, 안 하고 싶겠어?

 하지만 평생을 안정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니 나도 저절로 안정감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심지어는 우리 아빠는 뭐라시는 줄 알아? 나랑 내 동생은 절대 예체능 같은 거 시킬 생각이 없으시대. 안전한게 최고라며. 그리고 난 체념했지.

 아, 꿈은 그냥 꿈일 뿐이구나.


  근데 꼭 이럴 때 마음 흔드는 사건이 하나 터진다? 클리셰야 정말. 지금 우리 담임 선생님은 미술과목을 담당하셔. 난 너무 좋지! 난 예체능 인간 그 자체거든. 자랑은 맞지만 미술, 음악, 체육! 예체능 과목들은 항상 상위권에 든다고! 그래서 날 탐내는 분들도 꽤 많았지 크크. 비록 엄마아빠 선에서 정리되었지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체능을 하는 건 꿈이 되어버렸어. 하지 못해서. 아, 내가 재능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구나. 할 수 없구나. 그래서 더욱 꿈이 되어버린 것 같아. 내가 배우가 되고 싶은 이유도 그거야. 모든 예술의 종합이 연기라고 생각해. 난 노래도, 춤도, 연기도, 심지어는 악기연주까지 다 할 수 있는걸? 그림까지 잘 그리니까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크로키 씬 같은 것도 내가 직접 다 연기할 수 있다구! 근데 그럼 뭐 해. 그냥 꿈일 뿐인데.

 말이 조금 새 버렸네. 암튼, 어제 학교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서 날 부르셨어. 순간 쫄렸지. 아, 뭐 잘못했나? 근데 난 성적도 안 떨어졌고, 지각도 안 했어. 화장도 안 했고, 치마도 안 줄였다구. 그래서 일단 당당하게 갔지. 미술실로 가니 선생님께서 앉아계셨고, 난 당당하게 선생님을 불렀어.

“..슨생니이..임..”

암튼 당당하게 불렀어. 그런 날 선생님은 웃으며 맞이해 주셨고, 난 살짝 굳은 표정으로 선생님 맞은편에 앉았지. 순간 선생님 뒤에 걸린 그림이 나랑 눈이 맞주쳤어.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권투장갑을 양손에 쥐고 서 있는 그림이야. 난 그 그림을 참 좋아해. 내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거 같아. 예전에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에바 알머슨 작가의 <Happy>라는 작품이라고 하시더라. 난 이 하늘색 민소매랑 권투장갑이 탐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 가진 것 같이 보여서. 암튼 그 애랑 눈이 마주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런데, 선생님께서 꺼내신 한 마디에 다시 가슴에 무언가가 얹히는 느낌이 들었어.

 “하평아, 너 미술 전공해 볼 생각 없니?”

 예전엔 이런 제안을 받으면 참 기쁘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설렜는데, 이젠 참담해. 어차피 할 수 없는데, 왜 계속 물어보는 거야 다들. 마치 눈앞에 밥을 두고 입마개 때문에 먹지 못해 침만 질질 흘리고 있는 개가 된 기분이야. 그 와중에 난 고민했어. 교사가 되는 것보다,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보단 미술이 훨씬 좋거든. 예체능이잖아! 내가 제일 잘하는! 근데, 현실에선 내가 할 순 없는.. 딱 눈동자를 좌우로 2번 굴리다가 선생님께 대답했어.

 “죄송해요..”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은 참 따뜻한 표정을 지어주셨어. 동정은 한 10%만 들어간 표정이었기에 딱히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지. 그리고 선생님은 또 한마디 이어주셨어.

 “이 거절은 하평이가 하는 게 맞니?”

 난 대답할 수 없었어. 뭔가 아닌 거 같았거든. 분명 안정감 있는 길로 가야 하는 걸 알아. 그래서 거절한 건데.. 분명 내 고개를 내저으며 내 입으로 거절했는데.. 내가 한 게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이번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수 없었어.

     

 시간이 좀 지나고 수능 보는 날이 됐어. 긴장은 딱히 안되더라? 알다시피 난 모든 게 애매한 사람이라 성적도 애매하거든. 항상 중상위권이었어. 그 정도면 수능도 최저만 맞추면 된대. 그럼 지방국립대는 따놓은 당상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수능도 적당히 하던 대로 할 생각이었어. 6개 있던 수시카드도 모두 내 성적에 안전한 곳들로 썼지. 평소처럼만 하면 대학은 이미 붙은 거나 마찬가진거야. 역시 안전한 게 좋은 거지. 안 그래? 

   

 근데 참 이상해. 수능날이 얼마나 특별한 날인지 알지? 온 나라 사람들이 수험생들에게 맞춰주는 날이잖아. 심지어는 비행기조차 수험생들에게 맞춰줘. 그 특별한 날에 난 처음으로 내 안정감 있는 계획이 깨지는 걸 경험해 버렸어. 항상 이렇게 살아왔기에 이번에도 계획대로 안전하게 흘러갈 줄만 알았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종합해 보아도 안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번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 이래. 어쩐지 국어지문을 보는데 엄마얼굴이 보이더라. 심지어 내 옆자리 여자애는 다리로 거의 탭댄스를 추더라고. 그래도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풀었어. 그런데 웬걸? 국어지문인데 구의 부피 뭐시기가 나오는 거냐고!!!

 첫 교시가 끝나자마자 우리 시험장에 중도포기자가 3명이나 나왔어. 단체로 멘탈이 털려버린 거지. 나는 어떻게 됐냐고? 뭘 물어 망했으니까 이렇게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있지. 핑계라곤 생각하지 말아 줘. 살면서 난 이런 등급들은 처음 봤으니까.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수시 6개 모두 떨어졌다는 거야. 싹 다. 너무나도 의외인 결과였는지 내가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모든 선생님이 날 쳐다봐. 정말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 나름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런데 처음으로 그것도 수능 날 나의 모든 경우의 수가 엇나가버렸지 뭐야?

 어찌어찌 정시로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게 됐어. 정말 나의 계획이 하나도 맞지 않은 건 처음이었어. 학교 입학을 1달 앞둔 날까지 난 거의 폐인이었어. 주변에 원하는 대학 붙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괴로웠거든. 경우의 수가 빗나가서 더 좋은 학교를 가는 친구들도 꽤 있더라? 난 왜 이럴까? 뭐가 잘 못 된 걸까?

 그렇게 난 깨닫게 되었지.

 아, 세상엔 안정감 있는 삶은 없구나.     


 그래서 난 처음으로 모험을 시도해보려 해.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해보기로 한 거야. 근데,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 엄마아빨 설득할 자신도 없어. 답답해 보이겠지만 조금만 참아줘. 난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거든.

 머리만 복잡해지고 답은 나오지 않길래 오빠들이나 보려고 핸드폰을 켰어. 아, 수능 끝나니까 핸드폰 부수던 아빠가 새 폰을 사주더라고? 고생했다는 내용이 담긴 아기자기한 편지와 함께. 새 폰으로 보는 오빠들은 참.. 잘생기고 멋있어.

 그러다가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롤러코스터 속도로 내 척추를 타고 뇌까지 올라와 안착했어. 오빠들은 직접 노래도 만들고 그 노래로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더라고.

 그럼 나는.. 직접 영화를 만들고 연기를 해야겠다..!

 바로 이거야. 살면서 처음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머리가 아픈 거 알아? 머리를 부여잡고 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학과를 알아보기 시작했어. 그리고 A4용지를 꺼내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지. 시험 방법은 어떻고, 내신은 어느 정도 필요하고, 시험 날짜는 언제인지 등등. 다 적으니 A4용지 5장이 꽉꽉 차더라고.


 그걸 들고 처음으로 용감하게 엄마아빠한테 갔어. 사실 엄마아빤 내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게 된 게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학교 붙자마자 사회복지도 취업 잘 된다면서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거든. 난 이제 그 안도하는 표정이 너무 싫어.

 난 손수 적은 계획표를 꺼내 보이며 말했지.

 “나 영화 할 거예요!”

 정적이 흘렀어. 엄마아빠가 못 들은 건가?
  “나 영화학과 갈 거라고요!”

 순간 엄마아빠의 입꼬리가 쭈욱 내려갔어. 눈빛은 ‘얘가 수능 망해서 정신이 나갔나..?’하는 표정이었달까.

 엄마아빠가 내 말이 잘 들린다는 걸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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