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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Sep 16. 2024

09. 천만 리 떨어져도 아름다운 이 달빛을

소동파, <수조가두: 저 달은 언제부터> 감상

한가위, 추석 명절이네요.

브런치 글벗 님들에게 추석의 노래 한 수를 선물합니다.



작품 해제



제목은 <수조가두水調歌頭: 저 달은 언제부터(明月幾時有)>.


중국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중추절, 추석의 노래입니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꼽히는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마흔한 살 되던 해의 가을 중추절 날, 술을 마시다가 멀리 떨어진 아우 소철蘇轍을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이지요.


전편에 넘치는 애잔한 슬픔... 그러나 결코 그 슬픔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다치지 않습니다. 공자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른바 '즐거워하되 음란함으로 흐르지 않고, 슬퍼하되 마음이 다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중국문학의 전통을 멋들어지게 구현했지요.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노래하면 노래할수록, 아련한 슬픔과 그리움 속에 따스함이 우러나오는 불후의 명작입니다. 중국의 국민 가수 덩리쥔 (邓丽君, 鄧麗君. 1953~1995)이 노래로 불러서 더욱 유명해졌답니다.


사실 이런 작품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원문을 낭송해야 제 격이에요. 제가 여러분께 중국어를 가르쳐드리고 싶어서 안달을 했던 이유, 바로 브런치 글벗 님들이 이런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였죠. 소오생의 부족한 번역 능력으로는 원작의 이 엄청난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꼭 중국어로 연습하셔서 18번 노래로 만들어 놓았다가 언젠가 중국인과 상대하는 일이 있을 때 써먹어보세요. 혹시 또 누가 아나요? 그 옛날 유비 관우 장비처럼 중국 최고의 지성인과 도원결의를 맺게 되어 여러분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


참고 삼아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의 장르는 '사詞'랍니다. 당나라 말기에 시작되어 송나라 때 크게 흥성한 장르인데요, 멜로디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시詩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말하면 '유행가 가사'인 거죠. 당시 모든 문인들은 이 장르를 이용해서 여인(주로 기녀)과의 나약한 사랑의 감정만을 노래했는데요, 동파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를 통해서 우주의 철리와 광활하고 호방한 개인의 정서를 함께 펼쳐냈답니다.


그럼,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소오생이 이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늘어놓는 것인지, 어서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



번역 및 원문



[ 1절 ]


저기 저 밝은 달,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 들어 하늘에 물어보네.

오늘 밤, 하늘나라 궁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바람 타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옥황상제 사는 궁궐, 너무 높아 춥지는 않을는지? 


일어나서 춤을 추며 달그림자 희롱하니

여기가 곧 하늘나라, 인간 세상 아니로다!

[ 2절 ]


붉은 누각 돌고 돌아

비단 창가 나지막이 비추누나

잠 못 드는 나의 얼굴...


더 이상 슬픔은 없으련만

저 달은 어이하여 이별하면 더욱더 둥그신가?


인간지사 슬프면 기뻐지고, 만나면 헤어지리.

저 달님도 흐리면 맑아지고, 둥글면 기우나니.


모든 것이 좋은 법은 자고로 어려우니,

그저 우리 함께 오래오래 살기나 하세 그려.

천만리 떨어져도

아름다운 이 달빛을 우리 같이 바라보세.

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
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
我欲乘風歸去, 唯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
起舞弄淸影, 何似在人間!

轉朱閣, 低綺戶, 照無眠!
不應有恨, 何事長向別時圓?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해설 및 감상



혼자서 타향에서 나그네가 되어 보니

명절마다 부모 형제 두 배로 그리워라

獨在他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 왕유, <구월 구일에 산동에서 형제를 생각하며>에서


여러분은 가족 중에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안 계신가요?

혹시, 여러분이 낯선 곳에 떨어져 있는 바로 그분은 아니신가요?


명절이 되면 이별의 그리움은 두 배로 더해지는 법.

슬퍼지게 마련입니다. 명절이 오히려 원망스러워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동파는 그 순간, 우주의 철리를 떠올립니다.




1절은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신선이 중얼거리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 말이 상당히 유머러스합니다.


달님아, 너 언제부터 거기 그러고 있었니? 지금 하늘나라 옥황상제 시계로는 몇 시쯤 되었을까? 너네 동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니? 궁금해서 훌쩍 바람을 올라타고 돌아가보고 싶다만, 어우 거긴 너무 높아서 추울까 봐 관두겠어. 여기서 이렇게 너와 함께 춤을 춰도 마찬가지 하늘나라 아니겠어?



명절이 되어 외로운 동파는 그러나 슬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주의 구성 원리를 궁금해합니다.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去)'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돌아가고 싶다(歸去)'라고 합니다. 인간은 우주의 먼지 하나에서 왔다가 먼지 하나로 돌아가는 것, 그 철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주宇宙'라고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별과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계로 착각하곤 합니다. 이분법의 분리 패러다임이죠. 사실 지구는 무한대의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 'limit 제로'의 아주 작은 우주선 아니겠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가 우주입니다.


동파의 문학 세계는 수치數値로 우주의 구성 원리를 증명하는 현대의 양자물리학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요. 양자물리학은 '사물의 이치를 정량적定量的으로 탐구하는 공부'입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문학文學'이란 '사물의 이치를 정성적定性的으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학문'일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결합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동파의 문학 세계는 최신 현대과학(물리학/수학)과 하나로 만납니다. <09. 이선균과 '아득히 먼 곳'> 참고.




2절은 더욱 감동적입니다.


교교한 한가위의 달빛이 이 세상에 내려옵니다.

하얀 달빛이 돌고 돌아, 창가의 침대에 누워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나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달래주기나 하려는 듯, 조용히 내 얼굴을 쓰다듬어 줍니다.


1절에서 설파한 그 우주의 철리를 깨쳤으니 이제 더 이상 슬픔은 없으련만, 그래도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 묘한 감정은 또 무엇일까요? 왜 저 달은 이별만 하면 더욱 둥글게 보이는 걸까요? 이때, 동파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을 읊조립니다. 여러분, 꼭 기억해 두세요. 열 번 스무 번 소리 내어 낭송해 보세요.


인간지사 슬프면 기뻐지고, 만나면 헤어지리.

저 달님도 흐리면 맑아지고, 둥글면 기우나니.


한자로도 쓰면서 기억해 보세요. 한석봉이 된 기분으로 열 번 스무 번 정성껏 써보세요. 중국어로도 낭송해 보세요. 매일매일 소리 내어 음미하며, 마음이 울적할 때 되새겨 보세요.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인유/비환이합, 월유/음청원결...


런(↗)여오(↓) 뻬이(→)환(→)리(↗)허(↗)

위에(↘)여오(↓) 인(→)칭(↗)위엔(↗)취에(→)


인간 세상의 원리는 슬펐다가 기뻐지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법.

마치 저기 저 달님이 흐렸다가 맑아지고 둥글면 다시 기울어지듯이.


대자연의 법칙은 우리 인간 세상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

그러니 어쩌자구요? 말이 필요 없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꾸나.

비록 천만 리 머나먼 곳 떨어져 있더라도

아름다운 이 달빛을 우리 함께 바라보자꾸나...


비록 얼굴도 모르고 한번 만난 적도 없지만

이제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우리 사랑하는 글벗 님들...

그리고 소오생의 못난 글을 즐겨 읽어주시는 제 대면 세계에서의 오랜 벗님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비록 천만 리 먼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아름다운 한가위의 달빛을 오래오래 함께 바라보자고요.

아셨쥬? ^.~


덩리쥔의 노래, 나갑니다. 클릭해서 즐감해 주세요.

<但願人長久 - 蘇軾 / 詞, 鄧麗君 / 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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