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그때를 회상해 보면 추억이라 부르기엔 낭만을 뺀 단순한 기억, 내 동기들은 술집을 오갈 때 나는 일터와 집만을 오갔고 그들이 머리에 민증을 붙이고 다닐 때 나는 안전모에 내 이름을 써붙였다. 또 친구들이 술에 취해 술상을 엎을 때 나는 비 오는 날에도 냉장고를 엎었고 그들이 늦은 새벽 집에 들어올 때 나는 일터로 나갔다.
내가 했던 일은 냉장고를 부수고 버리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주는 운반구가 있는데 그걸 타고 넓은 공장 곳곳에 버려진 냉장고를 모아다가 폐기장에 가져다 놓은 뒤 완력으로 들고선 빠레트 위에 올리고 몇몇 냉장고는 오함마를 들고 와 부수는 작업이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위험한 일, 그래서 남자만 뽑았고 이력서도 안 보고 몸만 본 거구나 하며 면접 때가 생각이 났다.
면접을 본 건 나이가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고 자신을 소개하기를 부장이라고 소개했다.
부장님이라 부르라며 대뜸 내 이름의 한자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대답을 마친 뒤 자신의 노트를 꺼내고선 그 한자를 써 보여주는 것이다.
이름의 뜻이 좋다며 일을 잘할 거 같다고 했었고 내 몸을 쓱 보더니 힘도 좋을 거 같다며 설연휴 쉬고 바로 일하러 오면 될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내 이름 뜻 하나 얘기하고 면접에 합격했다.
면접이라고 부르기도, 합격했다 말하기도 민망했던 상황을 지나 설연휴를 보내고 퇴사를 하기 전까지 나는 같은 일 같은 돈만 받으며 일했다.
이런 일이라도 나름 팀은 있었고 우리가 했던 일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냉장고를 폐기하는 일이 주 업무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윗천장이 뚫린, 양 옆에 문짝 하나 달린 게 없는 낡은 운반구로 트랙터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냉장고를 실어 나르며 폐기했다.
일이 단순했던 것만큼이나 몸은 힘들었지만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그런데 늘 사람이 있는 곳은 사람 때문에 힘이 든다. 나를 포함해 20대 초후반 남성 5명이 한 팀을 이뤘다. 직책은 서로가 모두 같은 계약직 사원 그저 나이로만 서열이 나눠졌으며 그래도 팀장이라고 형식상 우리가 부르는 26살 한 남성을 필두로 나머지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중 한 명은 빼고 말이다. 나는 그 남자 한 명 때문에 세상의 민낯을 처음 마주하고 독기를 품게 되었다.
그 남자의 이름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장 OO 이 사람이 늘 뿌리던 향수가 있는데 아직도 주변을 지나다 그 냄새가 나면 짜증이 확 몰려온다.
어떤 일이었냐 하면 갑자기 밥을 먹고 계단을 오르다 그가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했다. 그러나 욕설을 섞어 내뱉는 그의 표정을 보니 장난은 아니었다.
날이 더우니 별 거 아닌 일에도 화가 날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과 그래도 형인데 하는 마음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때는 8월이었고 코로나 때라 더운 여름이라도 마스크를 써야 했고 화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가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말한 이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평소에 그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지내던 나는 오히려 그런 무심한 마음이 들더라도 잘 지내려고 항상 웃으며 인사하고 그가 어떤 말을 하든 간에 열심히 리액션을 했다. 그런데 무시라니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말을 안 하고 생각할 때쯤 그가 말했다.
'이 새X 또 나 무시하네'였다. 그때부터 어떤 변명도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 그는 투정을 자주 부리는 사람이었다. 늘 하는 말 끝에는 자신의 말이 사투리로 '맞나? 아니가?' 하는 식으로 되묻고는 했다. 이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늘 부리는 투정은 같은 팀원들의 험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오기 전까지 막내였다. 온갖 잡일은 혼자 도맡아 하면서 불만이 쌓일 때로 쌓인 그는 누구 하나 붙잡고 얘기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친구였기도 하거니와 막내인 자신이 도맡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깔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니 그 일들을 나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을 카톡으로 지시받았다. 누군가 호출을 하면 내가 가겠다고 답장하는 시스템이었고 택배기사처럼 일을 한 건 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게 없는 월급쟁이들이었다. 그러니 암묵적으로 서열이 낮은 사람한테 일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는 자기가 했던 일을 나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당연한 거겠지 하며 도와줄 거란 기대도 안 했거니와 심지어 나는 담배도 안 폈다.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일명 담타라 그래서 담배를 같이 피우는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동선이 겹치면 가다가 혹은 돌아오다가 겹치면 그 일 또한 내 것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일은 나 혼자 다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오히려 무시와 차별은 내가 당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내게 불만이 있었다. 일을 시킨 놈 말고 하는 놈한테 말이다. 자기가 예전에 겪었던 일을 내가 겪고 있으니 공감을 해달라는 생각에선지 내가 나이가 어려 만만했던 건지 유독 나만 보면 그런 얘기들을 해댔다.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일을 했어야 됐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끊더라도 일을 요청한 사람이 기다리기 때문에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심지어 그 말들이 뒷담화니 맞다고 하면 동조하는 것 같아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 것만 같고 아니라고 하기엔 말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고 참 난감했다.
그럴 때마다 실실 웃으며 허허했던 것도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무엇보다 공장이 너무 시끄럽고 각종 건설차량들이 드나드는 소리에, 보수작업을 위해 쾅쾅 대는 망치질 소리와 내 몸만 한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까지 각종 소음이 많은 그곳에서 실내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직이 아닌 현장직으로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입장에서 차를 아무 때나 세워두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런 입장을 그가 생각했다면 짜증을 내지 않았겠거니와 이런 입장을 들어줄 리도 없다는 생각에 그가 뱉던 욕설부터 멈춰보려 했다.
'저기 우선 욕은 삼가고 가서 이야기하시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며 그를 진정시켜 다른 장소로 옮기려 했다. 식당이기에 지나다 상사를 마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미 화가 나 앞뒤 분간 못하던 그는 욕을 쉴 새 없이 뱉어댔고 내 나이와 군대를 아직 다녀오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에휴 네가 군대를 안 가니까 위아래 없고 예의 없이 행동하지 빨리 군대로 꺼지지 왜 여기 왔냐' 하는 말을 뱉은 그는 알고 보니 면제였다. 이 사실은 부장님과 면담을 할 때 들은 내용인데 그래서인지 그 말은 크게 타격이 있진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그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신기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별 거 아닌 일에 화를 낼 수 있구나 감탄하며 어느 순간 자신이 화가 났던 이유 때문에 화를 내는 건지 화를 내다보니 화가 더 나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이쯤 되면 그냥 내가 사과하고 끝내야겠다 싶은 순간에 그는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가족욕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생각해도 울화통이 치밀어서 적지는 않겠지만 그때 나는 두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간 걸 간신히 참아내며 화가 나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기 가족욕은 하지 마시죠 진짜 나도 못할 말 할 거 같으니까' 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과 목소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가 하는 말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는구만 평소에는 실실 웃으며 착한 척 다하더니 이게 니 본모습이네?' 하는 말이 마치 어느 유아용 히어로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 같았다. 기가 차서 그제는 참지 않고 하고 싶은 말들을 다했다.
'당신이야 말로 나를 무시하는구만 내가 나이 어리다고 반말하고 3살 나이 더 먹은 게 벼슬도 아니고 말이지' 하고 순간 군대 면제 당한 것도 얘기하려다가 똑같은 사람 되는 것 같아 급하게 말을 끊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계속해서 패드립과 욕설을 일삼으며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싸댔고 나는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면서 '앞으로는 그냥 인사도 하지 말고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지냅시다' 하고선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졸졸 나를 따라오면서 이제는 자기 머릿속에 든 욕들이 다 떨어졌는지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에휴 고졸에 미필에 그렇게 키운 너네 엄마, 아빠가 불쌍하다' 이 얘기를 딱 팀장이 담배 피우는 근처에서 나만 들리게 이야기했다.
그때는 화가 나기보다 참.. 지금 생각해도 슬픈 게 화가 나기보다 서러웠다.
내가 대학을 안 나와서 나를 잘 키워내 주신 부모님이 욕을 먹는 거 같아서, 대학을 안 나오고 어린 게 나만 무시당하면 됐지 우리 부모님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더는 못 참겠다 싶어 나도 모진 말을 내뱉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당시 이렇게 얘기했었다.
'당신네 부모님은 얼마나 애를 잘 키웠길래 이렇게 회사와 서도 일진놀이 하는지 궁금하네요 물론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죠?' 하며 2차로 시작된 말싸움은 몸싸움까지 이어질 뻔했다. 이렇게 서로 말싸움을 하다 다투며 그는 갑자기 배를 내 쪽으로 한껏 붙이며 '이러다 한대 치겠다 치겠어? 쳐봐 쳐보라고!' 하면서 내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됐는지 급하게 멀리서 팀장이 오면서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싸워!' 하는 큰소리에 나는 급히 그쪽을 돌아보며 고개 숙인 채 사과를 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뱉으며 고개 숙이는 나와는 달리 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인상을 찡그린 체 한숨만을 내뱉었다.
팀장은 우리를 흡연구역으로 데리고 가서는 담뱃불을 붙이며 이유를 물었다. 나는 식당에서부터 이어진 대화를 되새겨가며 상대 또한 듣고 있으니 어설픈 거짓말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자는 생각에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었다.
'제가 잘못한 부분 또한 있으니 서로가 사과를 한다면 받아들이고 일에 지장 가지 않게 지내겠습니다.' 하는 마음 안에는 여전히 화가 남았지만 여기는 회사이기에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그런데 그는 모든 사실을 부정했다.
'와 저새 O 거짓말하는 거 보소 어이없네' 하며 기가 찬 듯 말하는 그의 태도에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콧구멍이 벌어졌다. 순간 그가 왜 면제가 되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는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나만 욕을 하고 나만 패드립을 했다고 했다.
팀장은 그 말을 듣고는 사실여부를 떠나 갑자기 나를 보며 '너 욕 하고 패드립한 거 맞네?' 하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어느 정도는 맞지만 상대가 더 정도가 심하고 먼저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 팀장이 하는 말이 내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들었다.
'네가 동생인 입장에서 형한테 그러면 안 되지 네가 잘못했네' 이러는 것이다. 그러고는 내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 말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때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향해서 몰카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찰 때쯤 팀장은 그 사람을 보며 얘기했다.
'너도 동생인데 잘해줘야지' 하는 말에 둘이 뭔가 있구나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알고 보니 둘은 퇴근만 했다 하면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친분을 쌓아왔던 사이였다.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나 같이 있을 때 그 둘이 이야기하던 말들이 생각이 났고 그제야 둘이 퇴근시간이 다른데도 서로가 기다려주고 집방향이 다른데도 데려다준다며 같이 차를 타고 가던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관계가 개입이 된다는 것에 충격이 컸다. 그렇게 나만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변화는 없었다. 계속해서 나를 보면 속삭이든 내 귀로 욕을 뱉고 지나가고 지나가다 마주칠 때면 손가락 욕을 치켜세우며 씨익 웃으며 내게 욕을 했다. 트랙터 같은 속도이기는 하나 나를 향해 속도를 내며 달려오다 내가 놀라 자빠지는 모습에 콧웃음 치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올 때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씻는데 아무리 씻어도 마음에 얼룩들은 씻겨나가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 사실 매일매일이 너무 분해 잠도 오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내 몸은 너무나 피로했고 뇌는 화내는 에너지조차 아끼려는 것인지 분해하기도 전에 전원을 내렸다. 그렇게 또 맞이하기 싫은 출근날 아침이 밝았다.
그 뒤로 반전은 없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처음에 무시받더라도 일을 너무 잘해서 인정받는 그림도, 나를 위로해 줄 직장동료도 없었다. 일이 너무 단순했던 터라 기술이랄 것도 잘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겐 그림이 아닌 얼룩만 남았다.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동료도 의지할 친구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들 대학을 갔던 터라 쉽게 하는 말이 '그런 것도 돈에 포함되는 거야', '원래 사회생활이 감정노동 하니까 돈 주는 거야' 같은 말들을 쉽게 뱉었다. 그래도 남은 친구들 마저 미워하기 싫었다.
부모님 욕은 뺐다 나도 해서는 안될 말을 했고 그가 한 말을 다시 내 입으로 차마 뱉기에는 너무 분해 눈물부터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람한테 기대하지도 기대지도 말자는 생각과 함께 집과 회사만 오갔다. 그렇게 그런 수모를 겪으며 군대 갈 날이 한 달 남아 퇴사를 하고 집에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다녔다 싶다. 그때 생각은 첫 번째로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누구 좋으라고 하는 마음에 죽어도 군대 가지 전까지는 하고 간다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는 이거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참 어리석게도 20살 지금도 젊지만 참으로 꽃다운 나이 그때에 나는 지금보다 더 조그만 요동에도 크게 흔들리던 터라 젊으니까 모든지 다 해봐도 된다. 지금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처음 성인이 되고 맞이한 자유는 너무나 광활했으며 그 광활함 속에서 오히려 나를 헤매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향을 못 잡겠어서 결국은 머리가 편한 대로 움직였다.
머리가 편한 대로 행동하고 꿈을 꾸려는 용기조차 없었으며 불안 속에 아직 젊으니까 라는 말을 되새기며 현실에 안주해 있었다. 남들이 대학을 갔을 때 그 대학을 가려고 한 노력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MT에 OT에 CC에 술만 줄곧 들이킨다고 생각했다.
다들 즐기고 있을 때 나 혼자 참 열심히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모습이 실은 부러웠으면서도, 대학을 갔다는 것만으로 시샘이 나서는 '나는 돈을 버니까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점점 현실에서의 시야는 좁아지고 속도 좁아져 갔던 거 같다.
다시 23살로 돌아와 제철소를 돌아다니며 내 할 일을 찾아댔다. 그냥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도 비슷한데 이제는 하는 일이 생겼다.
컴컴한 공장 안 철을 갈며 불똥이 튀는 그 빛에 의존해 고철 부품들을 찾는 일이었다. 이후로도 똑같았다 이제는 이 업무가 고정이 되어서는 똑같지만 단지 업무량만 많아지고 공장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철을 주워 옮겼다. 똑같이 건강과 젊음을 갈아 넣으며 돈만으로 환산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자각이 일어날 때쯤 며칠 안 돼서 일을 그만뒀다. 돈 얘기는 꺼내기도 민망한 터라 일주일 조금 넘게 일한 값은 받지 않기로 하고 부장님께 전화를 드리며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사람은 참 좋은 거 같았은데 아쉽다며 내게 다시 생각 있음 연락을 달라는 부장님께 감사를 표하며 전화를 끊었다.
절대 그분들이 하는 일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 분야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몇십 년이고 그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온 그들을, 인내하고 버텨내기를 20살에 내가 받았던 수모들 그 이상 몇 배를 견뎌낸 모든 상사맨들을 존경한다. 단지 내가 한 번이라도 내가 뭘 잘하고 좋아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저 다시 한번 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또 한 번 내 젊음을 시간만 지나면 닳아 없어지는 무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의로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 타의로 군대를 갔을 때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말이다.
대학을 갈 성적이 안 돼서 안 간 걸, 내가 게을러서 공부를 안 한 걸 애써 '못'간 게 아니라 '안'간 거라며 남들이 '왜 대학은 안 갔어요?'라고 물을 때 요즘 대학 졸업해도 취업 안된다며, 전공 살려서 취업하기 힘들다는데 자리 나면 얼른 취업하는 게 낫다며 변명하고 다녔던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안'한 게 되러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어야 했고 그 실력과 노력을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쯤으로 치부한 것이다.
모든 생각이 대학으로 밖에 연관 지어지지 않는 내 모습이 참 미련하다 싶은 게 이제는 대학이 문제가 아니다. 내 생각이, 그러니 평범하게 사는 게 노력 없이 되는 줄만 알았다. 사회에 나와보니 평범하게 사는 삶이 사회에 나와보니 제일 힘들다.
평범한 듯 보이는 수험생들에겐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며 공부하는 목표가 있다. 매일 원치 않는 술을 마시며 영업을 뛰는 가장들은 책임질 게 있다. 아이를 돌보며 양육하는 부모에게는 의무가 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 모습들을 평범한 삶으로 포장된 모습만 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만 보려했었다.
이제는 그 포장지를 벗겨낼 때이다. 이제는 푯대를 세우고 나아갈 때이며 그 안에 무엇이 있든 내가 감당할 것이 두려워 더 이상 도망치지 말자.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겠다는 둥 동기가 필요하다는 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는 둥 두리뭉실한 목표가 아닌 근거 있는, 그것도 아주 확실한 이유가 있는 푯대를 세워야겠다. 그리고 그 길이 막연하고 두려워질 때 그 이유와 근거를 대며 그 어려움들과 맞대어 나아가겠다.
지금은 하나의 깨달음이 되었다. 한 사내의 예측불허한 행동을 보고선 지금에서야 깨달은게 있다면 하고자 한다면 동기는 있던 걸 찾아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동기를 찾는 것을 그만두고 그 동기를 만들고자 한다.
중편 끝.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