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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섭 Feb 28. 2024

시 : < 부엌 >

< 부엌 >



시골 아낙의 궁둥이 같은 부뚜막에는

튼 손처럼 시커먼 부줏갱이가 아궁이를 달래고


이웃에서 떨고 있던 바싹 마른 땔감마저

구들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신명나게 활활 타오를 때가 되면

허기진 속을 대부분 물로 채운 가마솥도

하는 수 없이 펄펄 끓고 마는 부엌,


때론 피어나는 모진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해

해묵은 콧물을 뚝뚝 떨구기도 하였지만

촌스런 문명은 혹한 겨울에도

가난한 방구석을 따끈하게 데웠다


불 꺼진 밤중에도 솥 바닥을 박 박 긁어내며

오도독 정 깨무는 옛 날 이야기

잠자던 메주까지 건실한 맛으로 익어갔다


지금 여기,

편리한 엘리베이터 하늘을 높이 나는데

부엌이 없어 구수한 누룽지는 없고

밋밋한 주방에선 뒤틀린 라면만 끓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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