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즐기기
또 졌다.
사실 2024 시즌은 이제 개막해서 한 경기만 했기 때문에 또는 아니다.
하지만 야구팬, 아니 야구 모르는 사람들도
한화 이글스는 야구 꼴찌 팀이라는 이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또 졌다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꼴찌팀의 팬이라고 하면 상대가 야구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미묘한 웃음을 서로 나누게 된다.
꼴찌 팬들에게 느껴지는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복합적인 감정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누가 지는 팀을 응원하고 싶을까.
굳이 패배하는 팀을 골라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응원하는 팀과 팬들의 사이에는 감정적으로 공동체적 일체감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 잘하는 팀을 응원하고 싶고, 우리 팀이 잘하길 응원한다.
팬들은 보통 게임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그 기분은 다음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일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팬으로서 잦은 패배에 익숙한 팀을 어떤 생각으로 응원해야 할까.
나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이런 걸 패배의식이라 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팬의 부정적 생각은 사실 경기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패배의식이란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팬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야구뿐 아니고 축구나 다른 스포츠 경기들도 좋아해서 진심을 다해 응원하곤 하지만,
경기 결과에 몰입할수록 나는 더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나에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선수들은 경기의 당사자이고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받는다.
그들은 게임의 결과를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의 응원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선수들이야 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팬들의 응원으로 정말 기적처럼 투지가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응원은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응원이 부족했기에 지는 팀은 없다.
팬들은 늘 한결같이 응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팬들의 패배의식에 대해 말하자면,
팬으로서의 패배의식은 그저 경기를 즐기는 또 하나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해학의 요소로 패배의식은 재미있는 장난감이 된다.
예를 들면,
다른 야구팬들에게 월요일은 야구 안 하는 날이지만, 이글스 팬들에게는 야구 안지는 날이다.
이글스가 10연패를 했다는 것은 야구 경기가 10경기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위의 밈으로 즐기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농담에 웃지만 제발 강팀이 되어서 반대의 밈으로 사용하길 바란다.)
그러면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는 해학적인 즐거움 밖에 없을까?
전혀 아니다.
모든 팀의 팬들이 그렇겠지만,
자부하건대 한화의 응원단은 모든 야구 응원단을 통틀어 가장 재밌고 열정적이다.
응원 방법의 재미를 떠나서,
일단 경기 내용이 어떻든 늘 열심히다.
지난번 직관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게임은 일찌감치 10:0으로 한화의 패배가 확실했다.
마지막 9회, 그날의 한화 이글스 첫 안타가 나왔다.
관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응원가 '아파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너나 할 거 없이 일어나서 신나게 응원가를 불렀다.
정말 다들 그 안타를 즐거워했다.
아마 상대팀 선수들이나 팬들은 의아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만 보면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마도 그때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뭐 한 경기 지면 어떠냐, 내일 이기면 되지.
게임에서 뒤지고 있으면 어떠나, 9회만 놓고 보면 우리가 이겼는데.
내년은 다르겠지, 언젠간 이기겠지.
간혹 야구를 심오하게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는 게임에도 행복한 순간은 있다고.
또 졌다. 그래도 모든 순간이 패배는 아니다라고.
오랜 한화 팬은 이렇게 한화 야구를 즐긴다.
(P.S.1. 그래도 가을 야구 갈 것 같다...?)
(P.S.2. 개막 경기가 끝나고 이글스 공식 인스타 계정에 패배 소식이 올라왔다.
그 글의 한화 팬들 댓글 중 하나는 이렇다.
A: 내일이 벌써 개막이라니 설렌다
-B: ㅋㅋㅋ 기억상실증 ㅋㅋ
-C: ㅋㅋㅋㅋㅋㅋ
-D: ㅋㅋㅋㅋㅋㅋ)
(P.S.3. 한국 축구 국대도 제발.. 파이팅.. 쏘니..)
(P.S.4. 첼시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