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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하루의 실종

1

관 뚜껑이 덮였다.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슬픔이 북받쳤다. 소리가 날까 봐 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왈칵 솟은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내 몸은 빈틈없이 꽉 들어찬 어둠 속에 묻혔다. 도대체 이 계획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나한테 처음 손 말을 가르치기 시작한 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한에 찬 할아버지의 눈빛과 애잔한 손길이 눈앞에 스쳤다.

 

한 달 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달랐다. 바깥일이 끝나지 않았을 이른 시간인데도 엄마, 아버지가 집에 와 있었다.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즈음 하루아침에 짐 싸는 사람들이 생기곤 했는데 저마다 쉬쉬했지만, 대대적인 숙청 때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내와 같이 일본에 다녀와야 갔어.” 


아버지 말을 듣는 순간 어이없게도 가슴이 쿵쾅, 쿵쾅 뛰고 설레었다. 공화국에서 해외에 나가려면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한다. 우리 집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해도 그러한 특혜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요?”

“다음 주 초로 잡혔디.”

“기렇게나 빨리요?”

“네는 몰랐갔지만, 진작부터 얘기됐던 기야.”


새삼 아버지가 일본 출신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할아버지가 조선총련 간부였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루’라는 내 이름도 봄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물론 평소 고향 이야기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늘 쓸쓸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이년 전 병으로 오빠가 죽고 난 후 부쩍 더 말수가 줄었다. 나는 종종 아버지가 물과 섞이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기름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똑같이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아이를 만났다. 우리 반에 전학 온 송지우라는 아이였다. 외교관 아버지 덕분에 영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온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교복 차림에도 또래와 달리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와는 상대조차 할 생각 없다는 듯 외따로 떨어져 먼 산을 보는 그 애 얼굴에서 아버지와 같은 표정을 보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부러움과 동경 어린 눈빛이 나에게 쏠렸다.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쩐 일인지 송지우도 내가 혼자 있을 때를 틈타서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야?” 


뜻밖인 데다 불쑥 물어보는 통에 할 말을 잃고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네가 간다는 곳 말이야.”

 

송지우는 답답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재차 캐물었다.

 

“으응, 이… 일본.”

 

송지우 눈에 실망스러운 빛이 스쳤다. 


“너희 아버지 외교관이야?”

 

출신 성분에서 살짝 꿀리는 느낌이 들어 자존심이 상했다.


“할아버지가 조선총련 간부야.”

 

나는 위독하다는 말은 쏙 빼고서 말했다.

 

“너희 아버지 일본 사람이었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했다. 


“일본 사람이라니. 우리 할아버지는 아들을 조국의 품에 보내신 기야.”


송지우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들에 대한 사랑보다 컸나 보네?”

 

비꼬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 

 

“당연 하디. 기러니 당에서도 우리 가족의 애국심을 보고 특별히 배려하는 거 아니갔어?”

 

송지우를 향해 나는 여봐란듯이 대꾸해줬다.

 

“애국? 당의 배려?”


 송지우 눈에 경멸 어린 빛이 스쳤다.


“너 그 무슨 해괴한 태도니?” 


송지우를 향해 매섭게 쏘아붙였다. 내가 발끈하자 송지우는 남의 시선이 의식됐는지 비웃음을 거두고는 낮게 응수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이 더 해괴한 거야.”


아무리 출신 성분이 좋아도 그렇지. 송지우는 자아비판에 회부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었다.


“못 들은 거로 하갔어. 어디서 태어나든 조국은 하나디.”

“너희 아버지도 나처럼 부모를 원망했을걸.”


내 말에 송지우는 차갑게 대꾸하고 돌아섰다.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조국을 부정하는 말을 서슴지 않다니. 어릴 때부터 나라 사랑이 모든 것에, 우선 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터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에 발을 디뎠던 아버지나 송지우가 품고 있는 갈망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패기 있던 조금 전의 태도와 달리 송지우 뒷모습은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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