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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ZERO-5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 선정작

“어이 거기, 잠깐 이리 와 봐.” 

 

경찰이 나를 발견했을 때는 전봇대 뒤로 배낭을 밀어 넣고 있을 때였다. 나는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린 후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 같은데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하는 거야?”

 “사… 산책 나왔는데요.”

 

 말을 더듬고 말았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떨렸다. 

 

“새벽 2시에?”

 

 대답할 말을 찾고 있는데 유진을 쫓던 경찰이 숨을 헐떡이며 되돌아왔다. 


“제가 쫓던 그 여자, 도망간 것 보면 범인이 틀림없어요.”

“그렇겠지. 어쩌면 공범이 있을지도 모르고.” 


경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몸을 한 번 더 훑었다. 나머지 한 명은 방금 내가 나온 골목 안쪽을 기웃거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걔는 아니에요.”


엄마였다. 잠옷 위에 겉옷만 대충 걸치고 나온 차림새였다. 그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던 경찰이 외쳤다.


“여기 뭐가 있는데요.”


골목에서 나온 경찰이 들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툭 던졌다. 엄마가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경계심을 풀던 경찰은 배낭 속을 헤집더니 다시 추궁하는 눈빛을 보냈다. 

 

 “누구 본 사람 없어?”

  

 엄마가 나 대신 변명처럼 끼어들었다. 

 

“잘 생각해 봐. 어서!”

 

 머뭇거리자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 있었어요.”

 

 마지못해 한마디 하자 경찰은 의혹이 가득 찬 투로 되물었다.


“인상착의가 어땠는데?”

“여기서 마주쳤다면 아까 그 여자가 틀림없어.” 


다른 경찰이 다그치듯 재촉했다.


“여자치고는 좀 큰 편이었어요, 모자를 쓰고 있었고…….”

   

대충 둘러대자 경찰은 증거가 필요하니 그림을 지우지 말라고 당부하고 돌아갔다. 


 불안감은 기어이 현실로 다가왔다. 며칠 후 경찰서로 나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네가 가서 확인 좀 해 줘야겠다는구나.”

   

엄마는 기어코 싫다는 나를 앞장 세웠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아니거든요. 그림체가 다르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담벼락에 낙서하고 다니는 거 맞잖아.”


경찰 앞에서 뻗대고 있는 사람은 유진이었다. 그대로 몸이 굳는 것 같았다. 

 

“낙서라니요, 우리가 그리는 건 엄연히 그라피티라고요.”

“그래피…… 그게 뭔지 모르지만, 목격자도 있다고. 어! 저기 왔네.”

 

나를 발견한 경찰이 반색했다. 

유진이 놀란 눈으로 돌아보고 경찰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학생 이리 와 봐! 지난번 봤다던 사람. 이 여자 맞지?”


엄마가 차갑게 비웃으며 유진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잡아뗄 생각 마. 우리 아들이 봤다고 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동의를 구하는 엄마 눈빛은 강요에 가까웠다. 반면에 유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주춤주춤 뒷걸음치다가 도망치듯 경찰서를 뛰쳐나왔다. 

 

거리의 건물이며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 같았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메스꺼워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작정 뛰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비틀거리며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질주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며칠 전 그린 그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앞이었다. 


저만치 보이는 그림 속 소년은 담벼락을 향해 있는 힘껏 펀치를 날린다. 벽을 뚫고 나간 주먹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었다. 그 완강한 뒷모습을 보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원점에 다시 선 느낌.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걸까? 이 시작의 끝이 어떻게 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은 우선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거다. 눈물을 훔친 후 그림을 등진 채 돌아섰다. 그리고 경찰서를 향해 곧장 다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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