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를 떠올리면 아이들은 꽤나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자마자 스탠드에 가방을 던져 놓고 친구들과 축구로 하루를 시작했었죠.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로 운동장이 가득했지만 안전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놀았습니다. 축구공으로 고학년 형을 맞추기라도 하면 한 대 쥐어 터지지만 괜찮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운동장, 공원, 동네 근방을 이곳저곳 탐색했습니다. 물론 학원도 다녔지만 기껏해야 하나 두 개 정도였습니다. 엄격한 훈육과 규칙이 존재하는 살벌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넉넉한 자유와 즐거운 신체 놀이가 보장된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제가 누리던 자유가 사라졌고 그만큼 신체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체육시간은 고작 2-3시간이고 여러 이유로 체육시간이 취소되곤 합니다. 짧디짧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는 안전사고, 학교폭력 예방 차원에서 대부분의 자유 활동, 야외활동이 차단되곤 합니다. 방과 후에는 곧장 학원 차에 몸을 실어야 하죠. 공간도 매우 부족합니다. 제가 사는 신도시의 학교들은 운동장 크기가 제가 어릴 적 다니던 학교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동물에 빗대에 생각해 보면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아닌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과 더 유사합니다. 수많은 제약으로 자유가 통제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아이들의 삶을 제게 투영해 보면 꽤나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한창 신체를 활발히 움직여야 하는 때인데 손발이 묶여있기 때문이죠. 이성적으로 덜 성숙했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하는 힘이 약하기도 하고요. 본능과 이성의 충돌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인 아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죠.
아이들이 놀고, 신체활동을 하려는 욕구는 자연이 준 본능입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우리는 이 본능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안전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뛰지 마! 장난치지 마!'를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밖에서 충분히 자유 시간을 갖고 뛰어논다면 그런 잔소리를 할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겠죠. 충분한 체육활동을 하면서 신체를 단련하고 체력을 키우면 집중력과 학업 능력도 좋아질 테고요. 아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누려오던 본능을 빼앗고 오로지 학업에만 몰두시키는 것 자체가 순리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학생인권이 가장 고평가 받는 시대인데, 학생인권에는 신체활동에 대한 자유는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요? 앞뒤가 전혀 맞질 않습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1년 정도 어린이집에서 근무했습니다. 한국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교육 대학원을 다니며 다양한 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죠. 뉴질랜드의 교육은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이지 않고 엉성한 면이 많지만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아이들의 놀이, 신체활동, 자유 시간에 대한 보장이 그랬습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 초등학교는 모두 단층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안과 밖을 드나들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해뒀고요. 잔디가 깔린 널찍한 운동장도 무척 훌륭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와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의 차이, 환경적 차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보면 되겠지요. 어쨌든 뉴질랜드는 아이들이 가진 본성을 그대로 존중하고 키워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정해진 스케줄과 안전 지침에 따라 컨테이너 벨트 위에 올려짐 짐들처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저는 과학적, 효율적, 효과적인 교육 방법보다는 비효율적이지만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교육을 더 선호합니다. 그게 맞다고 믿고 있고요. 학교는 더 많은 체육시간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안전과 학교폭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운동할 수 있는 여가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연을 탐색하며 호기심을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연의 동물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제 아이는 그렇게 키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