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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

by 삽질

이제 만 3살인 아들 녀석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꽤나 많이 만나며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제 아이 또래의 부모들이죠. 친구나 동기들에게 일 년에 손에 꼽을 만큼 연락이 올 정도로 인간관계가 넓지도 않고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저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다행히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사회생활도 꽤 하다 보니 낯짝도 두꺼워지고 능글맞아져서 사람들을 대하는 게 예전처럼 불편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육아', '교육'이라는 공통 키워드로 만난 사람들과는 할 얘기도 많습니다.


토요일 밤, 저희 집으로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가장 친한 아이의 부모입니다. 사실 함께 식사를 전에도 몇 번 했습니다. 헌데 집으로 초대를 해서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오랜만에 손님을 대접하려니 아침부터 정신이 없습니다. 집 청소도 해놓고 요리에 필요한 재료도 준비해 놔야 하니까요. 오랜만에 하는 손님 초대라 좋아하는 케이크도 직접 구웠습니다. 설탕이 잔뜩 들어가는 거라 잘하지 않지만 특별한 날인 만큼 준비해 봅니다. 잔뜩 기대에 찬 아들에게 오늘은 친구가 놀러 오는 특별한 날이니 만들어주는 거라고 허세 아닌 허세도 부려봅니다.


저녁 5시쯤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종소리에 낮잠에서 깬 아들 녀석이 친구를 보자마자 정신없이 춤을 춥니다. 꿈인지 생신지 분간도 못하고 일단 주체 못 하는 흥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죠. 덩달아 친구 녀석도 같이 춤을 춥니다. 누가 보면 선녀와 직녀인 줄 알겠습니다. 평일에 하루 종이 붙어 있고 어린이집 끝나면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대도 이리 좋을까 싶습니다. 손에 과일과 와인을 들고 오신 아이의 부모에게 인사를 건네고 저는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요리는 해산물 세비체, 토마토 가지 요리, 닭다리 구이입니다. 간만에 실력 발휘를 하니 즐겁기도 하고 만든 음식을 맛있게 드시니 기분이 좋더군요.


음식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육아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했지만 대부분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앞으로 살 이야기를 했지요. 비슷한 나이 또래와 이런저런 걱정을 나누고 삶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으니 이야기가 끊이지 않더군요. 그동안 누가 말 못 하게 막은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이리도 많았나 봅니다. 아무래도 그분들과 여러 번 만나다 보니 격의도 많이 없어지고 생각보다 코드가 잘 맞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좋은 친구를 만난 것도 굉장히 행운이었는데 아이의 부모와 저희 부부가 꽤 잘 통하는 사람들인 것은 더 큰 행운입니다. 이번에도 운이 무척 좋았습니다.


내년에는 저희 부부가 제주도로 갈 예정이기 때문에 이 인연이 과연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떠나지 않더라도 대기업에 다니시는 상대 아버님도 조만간 중국 주재원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하시더군요. 어떻게 되든 지금처럼 가까이에 살지는 못할 운명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난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남은 시간 동안 좋은 추억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그리고 저희 부부도 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아이가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나라에 살지만 제가 사는 동네는 한국의 모든 통계수치를 역행하고 있는 희한한 동네입니다. 전국에서 젊은이가 가장 많이 살고 출산율도 가장 높지요. 저희 동네에 있으면 저출산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신생아들이 백화점 신상처럼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곳에 살게 된 것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좋은 분들과 함께 하하 호호하며 즐거운 식사를 어찌했겠습니까.


제가 고심하지 않았지만 인생에서 했던 몇 가지 선택들이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 때론 경이롭기도 합니다. 지금까진 행운이 많이 따른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떤 운과 인연들이 제 앞에 나타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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