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한국민속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사물놀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됐죠. 아주 어린 나이에도 사물놀이 공연을 보는 1시간 동안 망부석처럼 몰입하고 앉아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아이가 사물놀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희 부부는 전국에 있는 온갖 공연들을 찾아봤습니다. 아이가 나이가 어려 생각보다 참석할 수 없는 공연도 많더군요.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낸 공연을 보기 위해 화성 갯벌, 이천, 충주, 서울 등 온갖 장소를 다녔습니다. 결국엔 사물놀이 끝판왕 김덕수 공연까지 섭렵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아이가 어려서 입장이 불가능한 공연이었는데 공연 관계자에게 사정해서 공연 티켓을 겨우 구매했습니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카봇 노래를 부르고 뽀로로 노래를 부를 때도 그는 묵묵히 사물놀이 외길 인생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41개월이 된 아이는 여전히 사물놀이가 최고입니다. 저희 집에는 장난감이 거의 없습니다. 블록 몇 개 정도가 장난감의 전부죠. 하지만 장구, 소고, 북, 드럼, 피리처럼 전통 악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상모가 없어서 아내가 모자에 끈을 달아 상모를 만들고 공연에 쓰는 버나(원판 돌리기)도 구매했죠. 아이는 집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할 때면 색깔 천들을 골라와 옷을 만들어 달라곤 합니다. 참, 그 꼴을 보고 있자면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박스로 자동차를 만들어오는 가정 연계 학습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무슨 자동차를 만들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북청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제 아내는 초등학교 때 장구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나름 전국 대회에 참여할 만큼 꽤 실력이 있었다고 본인이 주장하더군요. 어찌 됐든 그런 아내의 이력 덕분에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공연을 보면서 어떤 공연이 좋은 공연인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저도 이젠 공연을 보면서 대충 좋고 나쁨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귀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확실히 김덕수 공연은 대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많은 공연을 다니다 보니 사물놀이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졌습니다. 옛것이라 멀리했던 사물놀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인지 아이가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도 분명 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모는 시대에 동떨어진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의 행동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사물놀이가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게다가 사물놀이보단 K-POP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 부부는 아이가 사물놀이와 사랑에 빠진 점을 무척 특별하게 생각하고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영어유치원이니, 의대 준비반이니 여러 조기 교육 시장의 유혹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남들이 다 하려는 교육에 큰 관심이 없기도 하고, 학습을 강요하기 보단 아이의 호기심을 최대한 유지해 주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어떤 교육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아이가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입니다.
김칫국 마시는 일이겠지만 아이가 사물놀이를 계속 좋아해서 나중에 밥벌이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도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과거에도 불가능했지만 더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미로 같고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요? 공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 가지라도 몰입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지혜도 잘 가르쳐야겠지요. 그 정도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사물놀이에 대한 이 변함없는 사랑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희 부부도 그 끈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할 테고요. 곧 아이가 진짜 공연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