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반에 담당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저희 부부는 지하 1층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몇 가지 검사와 절차를 밟은 후에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소수술실'이라는 장소였습니다. 작은 응접실이 있고 물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형 방에 철제 침대가 낡은 천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에는 작은 수술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기계로 빨아내는 소파술이 진행됐습니다.
저희 부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침대가 가득 차 있어서 가장 끝에 있는 침대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살짝만 스쳐도 요란한 소리를 내는 철제 침대에 아내는 링거를 맞은 채 담요를 덮고 누웠습니다. 누워있는 아내가 천장에서 꺼질 듯 말 듯 깜빡이는 낡은 형광등을 바라보며 병실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불편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세히 둘러보니 마치 구소련 러시아 병동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거란 으스스 한 생각을 했습니다. 살면서 병원에 올 일이 별로 없었지만 올 때마다 차가운 타일과 소독약 냄새는 뭔지 모를 불안함과 불쾌함을 연상시키곤 합니다.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해 저는 괜스레 쓸데없는 농담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봅니다. 웃는 아내를 보니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진 않습니다.
볼륨을 가장 작게 낮춰 대화를 해도 옆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병상의 간격은 좁았습니다. 잠시 뒤에 옆 침대에 있는 산모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편에 소곤소곤 말을 합니다. "빨리 끝나서 더 짜증 나는 것 같아..." 10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소파술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짧은 시간, 뱃속에 있던 아이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몰려왔나 봅니다. 흐느끼는 소리가 10분 정도 지속됐습니다. 혹시 아내가 그 울음소리에 반응하진 않을까 노심초사 아내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았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니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아내도 노력 중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작은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12시 쯤 간호사가 시간이 됐다며 복도 한 편에 있는 방으로 아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응접실로 이동해 아내를 기다렸습니다. 20분이 채 안 돼서 간호사가 수술이 끝났다고 알렸습니다. 복도 끝 침대로 다시 가보니 아내는 벽 쪽을 바라본 채 웅크리고 누워 곤히 자고 있습니다. 이내 간호사가 푹 자야 회복이 잘 되니 조금 자도록 놔두라고 합니다. 하얀색 영양제가 천천히 아내 몸속으로 흘러 드러 가는 게 보입니다. 수고했다고 아내에게 귓속말을 하고 볼에 입을 맞췄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는 모습이 아기처럼 보입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깨어나더군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한참을 어리둥절해합니다. 머리가 띵하고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편히 쉬라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아내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아내는 누워서 쉬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서서히 잘 회복했고 크게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내와 저는 그 시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참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아내가 쉬는 동안 저는 약을 타기 위해 1층에 다녀왔습니다. 산모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를 빨아들이는 석션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는 지하 1층과는 달리 1층은 평화롭고, 심지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배가 산만한 산모들은 남편들이 사 온 맥도날드나 꽈배기 도넛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자기와 얼마나 닮았는지 이야기하는 동안 얼굴은 싱글벙글입니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누군가는 아이를 만날 기대에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누구는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슬픔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공간에 천국과 지옥이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산부인과를 꽤 여러 번 방문했지만 유산이라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 저희 부부는 지하 1층의 세계를 짐작조차도 못했을 것입니다. 1번의 출산과 2번의 유산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저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모르고 살 수 있는 부분이었겠지요.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순탄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꿈꾸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순탄하지 않은 시기에 더 많은 진실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밝지 않은 어두운 곳에서 생각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진실 말입니다. 보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진실이지요.
지금은 슬픈 경험으로 남아있지만 살다 보면 이 또한 저희 부부의 삶을 더 비옥하게 만들어줄 거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 통해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곤 하니까요. 웃으며 오늘을 이야기하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슬픔도 찾아오겠지요. 원래 인생이 그런 거니까요.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으면 다 잘 헤쳐나갈 거라 믿습니다. 지금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