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다가 아들 놈과 한판 했습니다. 요즘 이놈이 저녁을 제대로 안 먹고 음식을 갖고 장난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원래 음식을 안 가리고 양도 아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잠깐의 반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바뀔 기색이 보이지 않더군요. 아이가 깨작깨작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길래 밥 안 먹으면 치운다고 경고를 몇 번 날렸습니다. 아이는 당장 밥을 먹는 것보단 밥 먹고 먹을 케이크 간식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밥을 골고루 다 먹어야만 간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시간만 때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버티다 보면 간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몇 번의 경고를 더 날리고 말을 안 듣길래 식판을 뺏어서 남은 음식을 음식물 처리기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굉장히 신속하고 터프하고 잔인하게 뺏어서 꽝꽝 소리를 내며 음식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밥을 안 먹었으니 간식도 없다고 말하곤 케이크도 같이 버렸습니다. 충격적인 모습에 아이는 밥을 먹을 거라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는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아내도 눈치를 보더니 아이를 달래주지 않고 네가 밥을 제대로 안 먹었으니깐 아빠가 저렇게 행동하는 거라고 훈육하며 제 편을 들어줍니다. 엄마한테 붙어 울고 불며 연신 "밥 먹을 거야"를 외칩니다. 저희 부부가 차가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대꾸도 안 하고 5분 정도 버티고 있자 점점 눈치를 보더니 울음을 그쳤습니다. 아무리 울어봤자 소용이 없단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안정이 된 것 같아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밥을 먹어야 튼튼해지고 근육도 생기고 힘도 세진다고요.(평소에 아이는 항상 저보다 힘이 세지는 걸 꿈꾸거든요.) 간식은 아주 가끔씩만 먹는 것이고 이빨을 망가뜨리고 근육도 없어지게 만든다고요. 아이는 아직 기분이 나쁜지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잔소리를 한 것 같아 더 이상 음식 얘기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패잔병처럼 힘 없이 앉아 있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저희 부부는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참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조금씩 장난도 걸어보고 같이 산책 가자고 꼬시니 금방 넘어옵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됐습니다.
사실 아이의 태도를 훈육하면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요즘 간식을 부쩍 많이 먹은 건 저희 탓이 크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 탓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달콤하고 자극적인 게 어찌나 당기던지 요즘에 정신줄을 놓고 살짝 폭주했습니다. 자제하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어쨌든 간식의 양이 전보다 많아졌지요. 자연스럽게 아이도 밖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붕어빵이나 하나 먹을까?"라고 개구쟁이 표정으로 저희에게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못 이기는 척 저희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민생지원금이 있는 탓에 외식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저희의 식습관은 조금씩 망가졌습니다.
남 탓을 살짝 해보자면 주변 아줌마들의 영향도 조금 컸습니다. 아이가 하원하면 자연스럽게 놀이터나 아파트 키즈룸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나 와이프는 따로 간식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원하기 전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주기도 하고 저녁도 먹으려면 속을 좀 비워놓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른 집 사람들은 저희와 다른 위장 사이즈를 가진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간식을 엄청 줍니다. 주로 젤리, 빵, 과자 같은 초가공 식품들로요. 노는 내내 아이들은 오가며 끊임없이 간식을 먹습니다. 눈치만 보는 제 아이에게 아주머니들은 매일 간식을 나눠주십니다. 처음에는 거절도 했는데, 매번 거절하기도 그렇고 아이가 불쌍해 보여 조금씩 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조금씩 뺏어 먹어 아이는 조금만 먹게도 하고 과일 같은 간식을 싸 가기도 하지만 어쨌든 매일같이 간식을 먹는 게 일이 됐지요.
저는 제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만 먹이려는 유별난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달다구리 좋아하고 간식을 안 먹고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다만 밥을 먹고 난 다음에 가끔씩 간식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건강하게 먹을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제 철학을 아이가 따라오고 있긴 하지만 한순간에 간식이 아이를 지배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아이의 식습관을 조금은 엄격하게 조정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의 식습관을 바로잡아야 하고요. 저희가 음식을 제대로 먹는다면 아이도 제대로 먹겠지요. 사실 아이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대로 내가 살아가면 되는 일이니까요. 아이는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을 배우는 것이고 그게 교육이잖아요. 좋은 부모가 좋은 아이를 만드는 것이지요. 아이를 훈육하기 전에 스스로를 훈육해야겠습니다. 머리 박고 정신 차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