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by JS

어떤 아이들은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굳은 표정으로 영혼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표정부터 태도까지,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죄송함’은 담겨있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어른들은 보통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반복하지 않으면 될 간단한 일을 왜 저토록 비뚤어진 태도로 일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 이유를 오랫동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이 통한 몇 아이가 놀라운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른 시간대에 말해줬는데 놀랍도록 비슷한 논리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잘못한 거 알아요.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한데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잖아요? 그럼 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놈 쇼하네’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차마 진짜 미안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이야? 미안함이 느껴지면 그대로 표현하면 되잖아. 네 말대로 마음 속이며 사과하는 게 더 어렵겠다.”


“어렵죠. 제가 선생님한테 잘못한 게 있으면 찾아와서 사과하고 얘기하잖아요. 선생님은 저를 쓰레기로 안 보는 거, 저는 알거든요.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저를 모르는 사람이 저를 평가하는 건 견딜 수가 없어요.”


“누가 무슨 평가를 해?”


“가증스럽잖아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하는 건. 제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보거든요.”


이 대화 속에 모든 답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진심 어린 사과를 누군가가 ‘가증스러운 쇼’로 볼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과를 바로 그 ‘가증스러운 쇼’로 보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아이들은 성장하며 수없이 훈육을 받습니다. 그 훈육의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는 대화로, 누군가는 강압으로, 또 누군가는 매로 다스려집니다.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사과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혼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연기’해야 하는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 모든 잘못을 짊어진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를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가짜 사과’를 연기하며 자라온 아이는, 다른 사람의 사과 또한 믿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래왔듯, 저 사람도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미안한 척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짜 미안함이 솟아오를 때, 아이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집니다.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그 진심을 ‘쇼’라고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충돌하며,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퉁명스러운 표정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어른이라면, 아이를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아이의 잘못을 명확히 이야기해 주고, 그로 인해 자신이 느낀 감정도 솔직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함께 생각해보자.” 훈육의 끝이 처벌이 아닌 ‘관계의 회복’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TV 속 유명인들의 어색한 사과를 보며 우리는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미안해할 줄 아는 한 명의 어른을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위대한 일인지 말입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교사들은 그 일을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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