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

by JS

지능지수가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머무는 것을 '경계선 지능'이라 부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고등학생 환자 ‘박병희’는 이 경계선 지능을 아주 잘 표현한 캐릭터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병희는 항공대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당연히 항공대에 갈 성적이 아닙니다. 항공대에 갈 수 없음을 담임선생님과 반장이 아무리 설명해도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병희는 그저 항공대 원서 제출만을 고집합니다. 보통 사람에게 병희는 고집불통이지만, 병희에게 보통 사람은 자신에게 안 된다고만 말하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상호간 이뤄지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은, 이 아이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높은 벽이 됩니다. 지적 수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이 아이들은 또래 집단과 어울릴 수 없게 되고,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은 외국어를 넘어 외계어가 난무하는 곳이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공간에 앉아있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조금만 말이 빨라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아이는 판사의 판결문조차 알아듣지 못합니다. 범죄 청소년의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이라는 통계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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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바로 그런 아이입니다. A는 대화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이 나서 길게 말하면 꼭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A는 입을 닫았습니다. A에게 어른은 늘 이해 못 할 말로 자신을 혼내는 존재였고, 또래 아이들은 자신을 따돌리는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A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자기 욕구대로만 행동하는 아이였습니다.


A의 죄명은 무면허 운전과 특수 절도 방조였습니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A는 어느 날 동네 형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토바이를 XX동네까지만 운전해 줘."

신이 난 A는 열쇠를 받아 오토바이를 몰았고, 약속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오토바이를 넘겨주었습니다. 며칠 후,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그 오토바이가 훔친 장물이며, 자신은 절도를 도운 공범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언제 오토바이를 훔쳤지? 운전만 했을 뿐인데.' 분류심사원에서 억울함을 표현하면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너는 공범이다"라는 말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판사님은 똑똑하니까 내가 공범 아닌 것을 알아 주겠지.' 한달 후 법정에 선 A에게 판사는 무엇이라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말이 너무 빨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에 남은 것은 '6호 처분'이라는 단어뿐이었습니다. 경찰도, 판사도, 다른 어른들과 똑같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A의 세상에서, A는 언제나 억울한 사람이었습니다.


A는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즉시 화를 내지만, 억울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A는 어른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자신의 말은 무시당하고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대신 A는 그 분노와 억울함이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린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A는 불리한 상황이 오면 그저 입을 꾹 닫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사라지기만을 묵묵히 기다립니다. 그것이 A가 세상을 버텨내는 방식입니다.

안타깝게도 A는 폭력에도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이유 없이 맞았듯, 자신도 이유 없이 동생들을 괴롭혔습니다. 무섭고 아팠던 기억을, 동생들을 무섭고 아프게 하는 것으로 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험악한 무리에 끼지는 못했습니다. 형이나 친구들이 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늑대처럼 혼자 다니다 약한 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A가 아는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A는 곤충과 동물을 좋아하고, 몸으로 하는 일은 성실하게 해냅니다. 교사의 작은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식당 셰프님은 무거운 식자재를 옮길 때면 꼭 A를 찾으셨습니다. 힘이 세고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A에게는 자신의 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칭찬받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 했습니다. 세품아에서 자신의 성실함을 인정과 쓰임 받아서인지 세품아에 머무는 동안 A는 크게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이 최근 많아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의 학창 시절에도 반마다 한두 명씩은 순박하고 학습이 더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혼전문 변호사가 그리는 웹툰 <메리지 레드>의 '소통의 벽' 에피소드에는 경계선 지능으로 추정되는 남편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식당으로 많은 자산을 일궜지만 재산이 어떻게, 얼마나 모였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장성한 딸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도 주변의 도움, 특히 가족의 지지가 있다면 충분히 결혼도, 사회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강점을 찾아주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함께 알아가는 단단한 '지지 기반'인 셈입니다. 이 아이들은 조금 다른 언어와 속도로 세상을 배우고 살아갈 뿐, 결코 틀리거나 잘못된 아이들이 아닙니다. 속도가 빠르고 조금 더 많이 아는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언어와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면 됩니다. 그게 세상을 품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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