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동네 복싱 체육관에 3개월치 회비를 한 번에 결제했습니다. 할인을 해준다는 말에 혹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복싱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배움의 자세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불타 올랐습니다.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집에서부터 체육관까지 달리며 워밍업을 하고 체육관에 도착하면 지루한 스텝 연습으로 몸을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코치님이 알려주신 원투 스트레이트만으로 샌드백을 한참 두드렸습니다. 그런 저를 좋게 보셨는지, 어느 날 코치님께서 다음 기술인 ‘훅’을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코치님의 동작을 따라 했습니다.
“원, 투, 쓰리!”
“아니요, 회원님. 지금 ‘투’가 잘못됐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어깨 힘을 빼고 몸통을 이용해서 손을 쭉 뻗는 겁니다. 이렇게요.”
코치님의 지적에 저는 다시 ‘원, 투’ 자세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코치님의 표정은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회원님. 처음 배울 때 잘 배워야 합니다. 제가 보여준 그대로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코치님이 알려주신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맞나? 원, 투. 원, 투.”
혼잣말을 하며 계속 동작을 따라했습니다.
하지만 코치님은 계속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회원님,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면 실력이 늘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회원을 지도하러 제 곁을 떠나는 코치님의 뒷모습을 보며,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코치님의 자세와 나의 자세가 어떻게 다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코치님의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거울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저를 흘깃 본 코치님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 이게 왜 안 되지? 정말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닌데… 어떡하라는 거야.’
그 이후로 코치님의 가르침은 뜸해졌습니다. 저도 오기가 생겨, 배움 대신 한 시간 내내 샌드백만 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땀 흘리며 샌드백을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운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샌드백을 치는 제 머릿속에 문득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그저 내 눈에만 제멋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아닐까?’
분명 아이는 열심히 청소했는데, 제가 다가가 “왜 열심히 안 했냐”고 지적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딴에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해냈는데, 제가 그 노력을 너무나 쉽게 무시해버린 적은 없었을까. 코치님 앞에서 억울해하던 제 모습과, 제 앞에서 풀이 죽어 있던 아이의 모습이 정확히 겹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동안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는데, 조금 일찍 태어났고, 조금 빨리 알 수 있고, 조금 더 잘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무시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원, 투 스트레이트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제가 과연 누구를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 이후, 저는 아이의 서툰 노력을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신중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만일 체육관을 몇 달 더 다녔으면 능숙하게 원, 투, 쓰리를 해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시간을 주면 잘할 수 있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저 이해와 익히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