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은 물론, 주변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믿어야 타인을 믿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해야 타인의 잠재력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인간에게 믿음과 신뢰는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이 자산 위에 각자의 능력을 더해 함께 사회를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이 자산이 없는 사람은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갖기 어렵습니다. 세품아에서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장 힘든 지점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낮게 설정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못 해요”, “실패하면 다들 비웃을 거잖아요”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믿음과 신뢰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심어집니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가 수없이 넘어져도, 부모는 아이를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작은 시도에 환호를 보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줍니다. 학교 발표회에서 엉망진창인 무대를 보여도 무대에 선 것 만으로 칭찬하며 기뻐합니다. 아이는 그 믿음을 먹고 자랍니다.
그림에 재능을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감탄이 나오는 실력이었고, 입시 전문가에게 문의하니 그림만으로는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7살 때부터 학원 한번 없이, 그저 떠오르는 대로 그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왔습니다. 모두가 아이의 그림을 보고 칭찬하며 “미대에 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다고 했습니다.
‘나처럼 사고나 치던 놈이 무슨 대학이야’, ‘내가 대학 간다고 누가 어울려주겠어’ 라는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생활과 그림실력에 대해 아무리 설명하고, 직접 대학 캠퍼스를 보여주어도 아이의 마음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교육이 아닙니다. 이미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발전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너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옆에서 끊임없이 그 사실을 말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삶을 살던 인물들이 부름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적군이 무서워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소심한 청년 기드온에게, 천사는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헤매던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한계 속에 갇혀 있었지만, 자신을 알아보고 불러주는 존재를 만났고, 그 부름을 ‘믿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세품아의 역할도 이와 같다고 믿습니다. 아이의 재능이나 기술을 가르치기 이전에, 아이 내면에 숨겨진 ‘큰 용사’를 먼저 발견하고 불러주는 것.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믿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찾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