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
“자기 방은 스스로 치워라.”
“짧게라도 일기 써라.”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이 정도는 당연히 혼자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너무나 당연한 사항이기에 그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말은 잘함과 못함의 중간을 의미하며, 이는 곧 ‘못함’에 속한 그룹이 언제나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탁기를 어떻게 돌리는지 배운 적 없어요.”
“청소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동생이 잘못했으면 때려서 교육해야죠.”
평균 이상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지 모르나, 배운 적도 익힌 적도 없는 아이에게는 당연한 논리입니다.
교육이란 교과서 지식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상황이 아이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입니다. 부모와 가정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넘어가면 아이들의 수준은 본격적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학업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학원이라도 보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댈 어른이 없는 아이는 학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됩니다. 어휘력, 문해력부터 부족하니 문제를 이해하지도, 지문을 읽지도 못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 시간은 지옥과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본능은 존재합니다. 즐기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학교는 공부 외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들이 인정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운동이나 노래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할 것이며, SNS로 전 세계의 천재들을 만나는 이 시대에, 평범한 아이가 또래에게 유의미한 인정을 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인정받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누군가는 싸움을, 누군가는 교사에게 대드는 것을, 누군가는 잘나가는 형과의 친분을 선택합니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쉽게 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합니다. 조금 더 본질을 말하자면, 긍정적 방식과 부정적 방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뿐이죠.
아이들이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을 자랑처럼 떠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자랑하는 것이 그 아이가 아는 최선의 자기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사와 어른은 이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이에게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과 체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룹니다. 악기를 가르쳐 무대에 세우고, 정식 공연장을 빌려 부모님과 후원자들을 초청합니다. 무대 위에 서 본 아이들은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과 성취감을 맛봅니다. 다양한 스포츠와 체력 단련 역시 아이들이 빠르게 성취를 느끼는 활동입니다.
이렇게 음악과 운동으로 긍정적인 성공을 먼저 경험하게 한 후, 다른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입니다. 과거에 자랑처럼 떠들던 무용담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먼저 와 있던 선배들이 나서서 제지합니다.
“야, 너네가 지금 그런 말밖에 할 게 없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하지 마라. 여기서는 그런 거 안 하는 게 더 멋있는 거야.”
종종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믿습니다. 사회의 ‘평균’ 수준이 높아질 때, 그 사회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스스로 잘하는 아이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못 하는 아이를 지원하여 그 기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평균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