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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길 May 24. 2022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법

디자이너에게 의외로 가장 중요한 소양

요즘 활발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스 커뮤니티에선 항상 질문글들이 올라온다. 물론 그 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포완 커뮤니티에서도 질문은 항상 많이 올라왔다. 다른 점이라면 포완은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큰 범주에서 모인 사람들이라 굉장히 다양한 질문이 올라오는 반면 디자이너스 커뮤니티는 아무래도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해 UX와 UI쪽 질문이 많다.


나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걸 매우 싫어한다. 낚시하는 법을 1:1로 6개월 동안 전담마크를 했으면 했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대로 가져다 주는 걸 싫어한다.


사람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깨닫지 못하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기 보단 답을 구해버리는 관성이 생겨버린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피그마 기능에 대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메뉴 바를 열어보고 구글에 검색해보는 최소한의 노력이 없는 한 그 사람이 디자인을 바라보는 해상도는 크게 변하지가 않는다. 물고기를 받아버릇 하는 사람은 낚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열린 결말의 답변을 하려고 한다. 나머지 여백은 질문자가 직접 채울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걸 좋아한다.


본인이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생각하고, 그걸 구글이든 다른 채널이든 '어떻게 찾아야 답을 찾을 수 있는지' 를 깨달아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긴다. 흔히 묻는 질문을 하나 들어보자면 '이 폰트 뭔가요?' 라는 질문.

도대체 양재샤넬체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걸까

물론 이 세상에 영문, 국문을 포함해 수만 가지의 폰트가 있다. 그걸 일일히 찾는 수고로움은 당연하게도 엄청난 리소스를 동반한다. 눈알도 빠질 것 같고 그게 다 그거 같고 도대체 이 폰트는 왜 만들었지 현타도 오고...


처음에는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른다. 물론 나도 그랬다. 독학으로 디자인 업계에 뛰어든 사람, 사수 없이 6년째 맨날 홍철없는 홍철팀마냥 팀원없는 팀장을 맡는 나도 아직도 막막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대신 폰트의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폰트 질문에 등장하는 단골 폰트들은 디자이너라면 한번쯤은 지나가면서 봤을 법한 폰트들이 많다. 창원아삭단감체라든가, 나눔스퀘어, 노토산스, 격동고딕, 꼬딕씨, 산돌폰트에 있는 것들 등등...)

??? : 다 아는 폰트들이구만

폰트를 어떻게 찾아야 하냐면, 첫번째로 폰트 검색 서비스를 사용한다. 물론 정확도도 매우 낮고 데이터베이스도 빵빵하지 않아서 그냥 한번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마음으로 사용해본다. 두번째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산돌, 폰트릭스, 윤, 한양정보, 아시아, 디자인210 등의 우리나라 큰 폰트 전문업체의 카탈로그와 대조한다. 이 2가지 방법으로도 나오지 않는다면 사실 질문에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특히 초보 및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두번째 방법을 강력 추천해주는데, 그 이유가 너무나 명확하고 효과적이다. 먼저 각 폰트 제조사들의 룩앤필이 눈에 익숙해진다. 각 서체들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긴 있지만 각 회사들마다 지향하는 디자인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뭔가 살짝 레트로한 느낌이라면 디자인210에 있을 가능성이 크고, 캐주얼하면서 귀여운 인상이라면 산돌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제법 타율이 좋은 찍기 방법이다).

40분 정도 폰트 카탈로그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두번째로, 각 폰트를 대조하면서 폰트에 대한 인상을 머릿속에 기록하게 된다. 나눔스퀘어의 획 꺾인 형태나 글자 속공간의 느낌, 본고딕의 숫자가 주는 언밸런스함, 격동고딕과 꼬딕씨와 지마켓산스와 옴니고딕과 에스코어드림의 각 자형의 디테일한 형태를 주의깊게 보다보면 글자가 가진 특유의 인상과 특징을 기억하기 쉽다.


세번째로, 앞에서 기억한 서체를,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할 것인가에 따라 꺼내쓰기가 쉽다. 특정한 테마나 컨셉을 도출해낼 때, 내가 눈으로 직접 대조하면서 익힌 서체들 중 그 컨셉에 어울리는 서체를 머릿속 서랍에서 꺼내오기가 쉬운 것이다.

이쯤되면 혹시 폰트 인공지능이냐는 말을 들어볼 수 있다.

폰트를 질문하는 사람에겐 역으로 위 방법들을 시도해봤는지 물어본다. 스스로 찾으려는 사람인지 물어보는 셈이다. 폰트 검색 서비스도 찾아보고 자기가 아는 카탈로그와도 대조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는 답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답변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사실 답변의 의미가 없다. 물론 매우 급한 일이어서 그럴 수는 있지만, 급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서 두번째 방법을 시도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 항상 서체가 궁금할 땐 시간을 따로 들여서라도 카탈로그를 다 대조해 찾아내곤 했다. 찾았을 때의 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찾는 과정에서 눈에 익은 다른 폰트들은 또 나의 또 다른 디자인 자산이 된다. 무료 폰트들이 매우 매우 많이 등장했지만 물론 지금도 폰트들은 제조사를 얼추 맞힐 수 있고, 여러 폰트가 등장했을 땐 어느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폰트라고 짚어줄 정도는 된다.




폰트에 빗대 얘길 했지만 사실 이건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론에 가깝다.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독학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학원이나 강의를 찾곤 한다. 초기 스타트업에 사수 없이 일하는 2년차 디자이너들도 수두룩하다. 물론 강의나 학원이 다 필요없다는 것도 아니고 사수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강의도 듣고 사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많으니까. 핵심은,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하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3년차가 되도, 후임이 들어와도, 팀장이 되도, 리드를 맡아도 누군가 내 위에 나를 가이드할 사람이 필요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내 후임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를 잘 알리가 만무하다. 폰트를 찾는 방법만 해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질문했지만 그 중 저 위의 두번째 방법을 시도했다는 사람은 손에 꼽는 정도였다. 모두 이 이야기를 하면 '바쁜데 왜 자꾸 훈계질이지' 또는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의 입장에 가까웠을 것이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일 수 있다. 다만 언젠간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일할 디자이너로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확실한 건, 두번째 방법을 시도해본 사람은 지금쯤 스스로 구글에 어떻게 검색하면 정보가 나오는지 알 것이고, 자기만의 디자인 원칙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 질문했을 때 나처럼 낚시하는 방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폰트 뿐만 아니라 흔히 등장하는 피그마 기능 질문이라든가, 웹/앱 디자인 시 해상도는 어떻게 해야한다든가 하는 자주 묻는 질문도 구글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미 똑같은 고민을 했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70억 명이 보는 인터넷에 공개해놨다. 심지어 각종 커뮤니티와 자기계발 서비스들은 글을 모아놓기도 했다. 스스로 찾으려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그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그럼에도 찾아 보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구글이든 모아둔 글이든 답변을 정성스럽게 해주든 소용없지 않을까.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간단한 것들도 처음에는 검색어를 뭐라고 써야 하는 지 모를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검색을 대행하는 식의 질문 던지기는 오히려 커뮤니티의 공동 선을 저해하는 셈이다. 계속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보고 또 검색해보고 다르게 검색해보고 잘못된 링크도 눌러봐야 url 주소만 보고도 이 블로그가 양질의 정보가 있는지 단순히 버튼 대충 들어간 외국 워드프레스인지 알아내는 인사이트가 생긴다.


독학이 어려운 사람은 이 과정이 어렵게 느껴져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원래 독학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전세계와 이 세상 모든 것을 내 사수로, 학원으로 두는 방법이라 오히려 더 많이 넓게 배울 수 있을 수 있다. 그렇게 계속 공을 들여야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질문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걸 알아내는 걸 배우는 셈이고, 또 어떻게 구글에 질문해야 내가 원하는 답을 알려주는 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구글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찾기 위해선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내가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질문하는 법을 깨달아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 사람과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 지는 다른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좋은 질문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 곧 디자인.

생각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인 곳 디자이너스 커뮤니티와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저의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linktr.ee/desig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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