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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소통(疏通)’의 의미

삶은 의미다 - 24

by 오석연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막힘 없이 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둘 또는 그 이상의 존재들 사이에 무엇인가 오고 가는 것을 일컫는다. 疏(소통할 소)는 뜻을 나타내는 疋(짝 필)과 소리를 나타내는 㐬(깃발 류)가 합쳐진 한자로 ‘소통(疎疏)하다’, ‘친하지 않다’라는 뜻이 있고, 通(통할 통)은 뜻을 나타내는 辵(쉬엄쉬엄갈 착)과 소리를 나타내는 甬(종꼭지 용)이 합쳐진 한자로 ‘무언가가 서로 잘 이어지다, 마음이나 뜻이 잘 맞는다, 무언가를 거쳐 지나가다, 꿰뚫다’라는 뜻이다.

데이비드 D. 번즈는 좋은 의사소통의 3요소를 ‘EAR’로 제시했다. 귀 또는 청각을 뜻하는 ‘EAR’로 좋은 의사소통을 풀이한 이유는 의사소통이 듣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AR의 뜻은 ‘E = Empathy(공감) 잘 귀담아듣기’, ‘A = Assertiveness(주장) 효과적인 자기표현’, ‘R = Respect(존중) 배려와 존중’이다. 3요소의 첫 번째가 바로 공감 능력이고 귀담아듣는 경청이다. 소통이란 말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소통의 가장 큰 핵심은 들어주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면 가만히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해도 된다. 오죽하면 ‘말을 안 하면 중간이라도 간다’라고 하지 않던가.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소통이다.

소통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내 욕구와 관심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상대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소통과 대화의 핵심이고 출발점이다. 소통이란 결국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일이라는 말이다.

소통도 노크가 필요하다. 차 한잔, 술 한잔, 밥 한 끼가 그렇다. 먹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소통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장소가 식당, 술집, 찻집 등 먹는 곳이고, 그래서 회식이 중요한 것이다. 회식하면서 소통하는 것은 회사나 직장 안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소통과는 달리 매우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회사에서는 소통을 위하여 점심시간에 타 부서의 직원들과 함께하도록 권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잡담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통은 서로 간에 말을 많이 하고 나눈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있을 땐 종일 아무 말 없이 지내도 편안하게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그저 눈빛만 주고받아도, 사소한 손짓과 표정만 봐도, 상대가 원하는 바를 헤아리고 적절히 반응하며 소통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나누면,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의 토론은 하면 할수록 분열이 일어나기 쉽다. 사람의 말에는 그 뒤에 담긴 생각과 마음이 함께 묻어나지만, 기계를 통한 언어는 인간의 감성이 배제되어 차가운 논리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인격, 무음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부정적이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 악플이다. 소통을 가장한 폭력이 인터넷 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숨결과 입김을 느낄 수 없는 기계를 통한 소통 방식은 우리의 마음을 돌처럼 굳어지게 하고 사막처럼 황폐화한다. 네티즌들의 악플이 그토록 무자비해질 수 있는 것도 얼굴과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고 숨어있다는 익명성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칼에 베인 상처는 잠시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간다.’라는 말이 있다. 익명의 소통 사회에서 꼭 기억되었으면 좋을 경구이다.

소통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소통을 위한 대화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그렇다. 조언이 소통이라는 착각에서 오는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상사와 부하 등 수직의 인간관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에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조언하는 경우 소통이라 착각하기 쉽다. 윗사람은 소통이라 생각하지만, 아랫사람은 조언이나 간섭으로 느낀다. 그래서 조언은 절대 소통이 될 수 없다. 특히 조언을 넘어선 설득이나 강요를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조언은 개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을 때는 분노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만의 경계를 허락 없이 침범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체적 폭력이나 접촉이 아니더라도, 말로도 상대를 침범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의 상하관계 조언이나 업무 지시는 일을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관계는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자주 발생한다. 사랑을 핑계로 소통이라는 포장지에 조언, 훈계, 충고, 설교, 비판, 지시 등의 소통에서 절대 따라오면 안 될 내용물을 넣어놨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의 소통이 제일 어렵다. 자식으로, 부모로 살아오면서 실감하지 않는가?

여담으로 소통을 제일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두말할 것 없이 정치인이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다 보니, 그 생각이 전체의 의견일 거라고 착각한다. 같은 당원끼리만 소통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국민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말만 들어야 한다. 다른 당의 말을 들으면 왕따가 되고 공천을 못 받으니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소통을 제일 잘해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이라는 핑곗거리를 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국민의 뜻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실제는 전혀 국민의 뜻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은 나뿐인가? 국민의 뜻을 알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소통의 달인이 되어야 할 정치인이 불통의 대명사가 된 형국이니 삼류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소통이 변혁이고 쇄신이며, 닫힌 삶을 열린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사회적으로도 소통을 거부하는 독단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닫힌 사회로 뒷걸음질하게 만든다.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라는 말이 있다. 연결의 다리로 소통하는 자가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신이 인간을 입이 하나 귀가 둘로 창조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의 의미를 더욱더 되새기며 실천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디 경청으로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 행복한 인간관계로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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