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23
‘직업(職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먹고 살려면 누구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職(직분 직)은 뜻을 나타내는 耳(귀 이)와 음을 나타내는 戠(찰흙 시)가 합쳐진 한자로 직분(職分)을 뜻하고, 業(업 업)은 丵(풀무성할 착)과 木(나무 목)이 합쳐져 나무(木)를 파내는(丵) 일을 한다는 뜻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사용하는 ‘진로(進路)’란 말이 있는데, 직업(일)을 선택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좁은 의미이다. 넓은 의미로 진로란, 일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전체 생애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교육, 직업, 결혼, 가정생활, 자녀 양육, 노후 생활 등 삶의 모든 선택 문제가 포함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직업이다.
서양에선 보통은 생계를 위한 벌이와 관련한 활동을 직업(vocation)이라고 한다. 이것은 넓게는 커리어(career), 좁게는 오큐페이션(occupation), 그리고 최소단위인 잡(job)으로 나눈다. 동양에서 직업이란 말을 직(職)과 업(業)으로 나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혼자서 해결하지 않고 하나만 선택하여 해결하고 나머지는 공급받는다. 이렇게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한 가지 일을 직(職)이라 하고, 선택한 한 가지 일을 통해 자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업(業)이라 한다. 인간은 직업을 갖고 직업인(職業人)으로 살며 자신을 완성해 간다. 한편 직과 업이 분리된 사람은 직장인(職場人)이다. 자기가 하는 한 가지 일이 자기완성의 통로가 되면 직업인, 일이 생존 수단이면 직장인이다. 전자는 일이 즐거운 고생길, 후자는 일이 괴로운 고생길이 된다. 나 스스로 직업인인지, 직장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선택할 직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니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인지, 직업이 나를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시대이다. 대학까지 무려 16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도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직업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이 시대의 청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에는 무려 2만 가지가 넘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기술의 발달 속도에 따라 직업의 생성․소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수많은 연구가 향후 수십 년 내 현재 직업의 과반수가 사라지거나 현저하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제4차 산업의 초지능 융합경제 시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직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특히 딥러닝(기계학습 기술) 발달로 인한 인공지능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져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인간 고유의 창조적 영역이라 자부했던 예술가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미 AI(인공지능)가 바둑, 오락 등의 게임에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 신의 경지에 가 있고, AI가 쓴 소설, 그린 그림, 작곡한 음악 등도 예술가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직업 분야에서만큼은 인간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좋아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같은 ‘사’자라도 그 뜻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변호사는 士(선비 사), 검사와 판사는 事(일 사),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목사, 교사는 師(스승 사), 대사는 使(시킬 사)자를 쓴다. 그 직업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정의에 따라 다른 뜻의 ‘사’자를 붙인 것이다. 다음으로 ‘원(員)’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하는데, 그 중의 으뜸이 공무원(公務員)이다. 공무원 중에서 더 으뜸은 얼마나 좋은 건지 자식에게도 주기 싫다는 국회의원(國會議員)이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귀천은 없을지 몰라도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대부분 차이를 귀천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보수의 차이, 역사적 유래, 노동의 강도, 진입장벽의 난이도, 일반적 직업 만족도 등이 귀천을 만들곤 한다. 직업에 따른 신분상 귀천이 엄연한 현실인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의 등급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치열하고 눈물겹다. 오죽하면 자식의 꿈과 희망, 공부, 진로, 직업까지 디자인해주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대한민국만의 ‘헬리콥터 맘’이 자식들의 머리 위를 날고 있을까. 자식의 진로를 위해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는 사회 지도층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직업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일들은 그 밑바탕에 직업의 귀천 의식이 깔린 것이다.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직업의 이름도 바꿔놓지 않았던가. 배달부는 집배원으로, 파출부는 가정관리사로, 간호원은 간호사로, 보험원은 보험설계사로 이름을 격상시킨 직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직업의 끝에 붙은 같은 ‘사’자라도 한자로는 뜻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선비 사(士), 검사와 판사는 일 사(事),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목사는 스승 사(師), 대사는 시킬 사(使) 자를 쓴다. 직업의 본질에 맞는 한자를 쓴 것이다. 또한 원(員)자로 끝나는 회사원, 은행원, 공무원 등의 직업은 정년이나 조기 은퇴의 걱정과 두려움이 작다는 장점이 있다. 원(員)자 직업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국회의원이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자식에게도 물려주기 싫다는 정도니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는 말까지 있다.
하여튼 어떤 직업이든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이기 때문에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둑질과 사기가 아닌 한 그 어떤 직업이든 소중하고 존귀하다. 성공한 인생이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한평생 열심히 즐겁게 해 나가면서 사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헬리콥터 맘’이란 말이 나왔으니 자식의 직업 선택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짚어보자. 우리 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의 직업 선택을 넘어 직업세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부모의 직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직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모의 직업을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가장 잘 수행할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직업에 대한 노하우를 직접 전수할 수 있고, 인맥 등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부모의 소질과 능력을 물려받을 수 있겠지만,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무혈입성, 부모의 입김에 의한 특혜입성을 보는 눈은 곱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모의 직업세습이 가장 활발한 직업군이 기업의 최고경영자, 운동선수, 연예인 등이다. 일반적으로 공정한 시험 경쟁을 치르는 공무원, 교사 등은 직업세습이 불가능한 직종이다. 직업세습이 되더라도 자녀가 자발적으로 부모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고 사회적 대우가 좋은 직업이라도 자식에게 그 직업을 강압적으로 강요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다행히 근래에는 직업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공직이나 기업 인사에서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므로 직업세습의 경향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자기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있는 법이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식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면 경쟁은 부득이하다. 경쟁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나뉘는 게임이다. 경쟁에서 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답은 경쟁의 여부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간호사나 교사, 사제와 같은 직업은 전통적으로 천직(天職)이라는 인식이 있다. 남을 돕는 직업은 인생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신성한 부름을 받아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슨 직업이든 좋아서 그 일을 하면 그 사람이 바로 프로다. ‘진정한 프로가 되는 것’이 행복과 성공의 절반은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일이 아니라 놀이를 앞자리에 두어 즐겨야 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성공한 인생이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어, 그 일을 한평생 열심히 즐겁게 해 나가고, 사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삶이 정답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보다 바라는 일, 좋은 일보다 좋아하는 일,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직장을 찾지 말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할 직업을 찾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