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25
‘결핍(缺乏)’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란 상태’를 말한다. 과학에서는 특정한 원소의 부족을 결핍이라고 하며, 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장애를 결핍증이라 한다. 缺(이지러질 결)은 뜻을 나타내는 缶(장군 부)와 소리를 나타내는 夬(쾌괘 쾌)가 합쳐진 글자다. 원래는 ‘도자기가 깨지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파생되어 ‘모자라다’, ‘불완전하다’ 등의 의미가 생겼다. 乏(모자랄 핍)은 正(바를 정)을 좌우 뒤집어쓴 모양에서 나온 한자로, 부정(不正)에서 나오는 부족함을 뜻한다.
결핍과 욕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바라고, 무엇인가를 바라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부족함을 채워 차고 넘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욕구를 넘어선 욕망은 언제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도 결핍을 느끼고, 충족되어도 새로운 결핍이 찾아온다. 욕망은 결핍을 따라잡으려 쫓아가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운명이다.
결핍이 문제냐, 과잉이 문제냐는 질문에 딱히 어느 것이 더 문제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핍과 과잉 역시 극단적일 때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영양학에서다. 각종 영양소의 부족이나 과잉으로 생기는 각종 결핍증, 증후군, 질병 등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현재 지구상에는 비만 인구가 기아 인구를 앞지른 지 오래되었고, 기아로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는가?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이 현상은 더 깊어질 것이 확실하다. ‘사람은 암과 비만으로 죽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종교마다 ‘금식’이라는 행사가 있다. 육식이나 채식을 구분하여 금식하기도 하지만 종교마다 그 속에 포함된 뜻은 조금씩 다르다. 공통으로 그 이면에는 육체의 금식을 통하여 정신의 금식을 깨닫는 것이고, 금식이 수련의 하나로 우리 몸의 대사기능을 촉진하여 종교에 더욱더 정진하기 위함도 포함되어 있다.
결핍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경제적 결핍과 애정결핍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경제적 결핍일 것이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결핍이다. 사람이 태어나 부모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여 홀로서기 할 때 필요조건이 경제적 자립이다. 이를 위해서 상당한 기간을 노력하고 평생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요즘 청춘들의 홀로서기를 위한 사투를 보노라면 눈물겹다.
사랑의 결핍은 사랑의 욕구에서 나온다. 사람은 성적 행위뿐 아니라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면서 따스한 시선을 주고받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가슴으로 상대를 안아 주는 등의 모든 행위에서 사랑을 느낀다. 특히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일생을 보낼 수 있다.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처럼, 사랑이 부족하면 마음이 기형적으로 변하고 평생 트라우마로 간직한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증세가 심하면 아예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의심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서 사랑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랑의 결핍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랑과 죽음의 욕구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자기 파멸적인 행위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도 있다. 이처럼 사랑의 결핍은 평생 스트레스나 히스테리의 지배를 받으며 불안한 삶을 영위해 간다. 특히 어린이의 성장기에는 받는 사랑이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모든 결과는 사랑을 통해서 회복해야 한다.
하여튼 일반적으로 보면 과잉보다는 적절한 결핍이 필요한 시대임은 틀림없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육아와 교육 부분에서는 그렇다. 많은 것이 부족해 볼펜 자루에 몽당연필 끼워 쓰던 옛날 라떼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요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결핍을 주고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란 생각을 한다. 어설픈 풍요가 아들을 망칠 수 있다는 말이다. 약간의 결핍과 부족함을 줬을 때 자기주도적이 될 수 있고, 아이들이 가진 재능과 가능성이 발휘될 수 있다. 더 주의할 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육아 지식 과잉이다. 특히 엄마들의 커피숍 토크는 ‘자식에게 무엇을 더 시킬까’로 귀결되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을 뿐이다. 과잉 사랑과 너무 많이 아는 게 독이 되는 경우다. ‘모르는 게 약이다.’란 말도 있다. 아이는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생존 본능에 의해서 잘 자란다. 성경에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참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특히 부모가 자식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게 딜레마지만. 이 모두 결핍보다 풍요가 주는 폐해일 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이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지나친 기대 역시 결핍 욕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부모와 자식, 연인, 동료, 친구 등)에서 결핍 욕구가 작동하게 되면 지나친 기대로 표출되고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 결국 상대방에게 화를 내게 되고 관계도 틀어진다. 이렇게 뒤틀린 속을 편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아니면 결핍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게 잘 안된다.
생존을 위한 뻥 뚫린 구멍을 채우고 싶어 하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있는데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의존적 욕구’라 한다. 마음과 행동이 당연히 욕구를 채우기 위한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게 결핍의 위대한 힘이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삶인 것이다. 결핍이 없으면 노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돈이 많으면 빈둥빈둥 놀고먹을 것이며, 지식의 결핍이 없으면 공부하지 않고, 사랑이 부족하지 않으면 사랑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삶의 열정과 동기가 결핍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사람의 신념이나 생각도 결핍에 따라 달라진다.
결핍은 부족함이 아니라 채울 수 있는 여유 공간이다. 부족함을 직시하면 절실함으로 작용해 채우기 위한 열정으로 작용해 성공에 이르는 에너지가 된다. 성공에 이른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의 사례가 결핍이 약점이 아닌 성공의 기회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결핍에 굴복하지 않고 극복하여 성공의 발판으로 바꾸는 삶이 결핍에 대응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자세이다. 결핍은 궁핍이 아니라 미래의 화려한 기대다. 그건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결핍을 충족시키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 발전은 십중팔구 결핍의 발견이고, 결핍을 바로 보고 받아들이면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동력이다. 감히 결핍이 필요한 시대라 선언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한 음식의 금식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를 정리하여 단출하게 해야 하는 인간관계의 가지치기,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는 정보의 삭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풍요보다는 결핍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위기나 결핍은 자신을 자각시키고 분발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인생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 멋진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렸을 때 모자람과 추위가 그로부터 빨리 벗어나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노력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시절 우리 세대 대부분이 궁핍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강력한 자극과 욕구가 있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배우 윤여정은 “가장 연기가 잘될 때는 돈이 없을 때다”라고 했다. 역시 인생에선 결핍(缺乏)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특효약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어 과거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극복하려는 노력, 결핍을 원망하지 않고 더 가지려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 비결이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물질에 정신이 매몰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진정한 풍요로움은 따스한 온기의 나눔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다.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결핍이 되지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감사함이 된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삶의 다이어트를 실시하여 나와 가족, 국가, 지구를 살리는 불편함을 실천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