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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Dec 19. 2022

51. ‘과학(科學)’의 의미

삶은 의미다 - 51

과학(科學)’은 자연 현상과 인간사회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하여그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법칙 및 원리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행위와 이에 대한 방법론 그리고 이 둘의 결과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지식을 수립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科(과목 과)는 禾(벼 화)와 斗(말 두)가 합쳐진 한자로, ‘과목(科目)’을 뜻한다. 벼(禾)를 말(斗)로 ‘계량하다’, ‘가늠하다’에서 측정하는 과목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學(배울 학)은 ‘배우다’, ‘공부하다’, ‘가르침’ 등의 뜻이다.

과학은 크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과학은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조직화한 지식체계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을 통하여 일반 원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얻어진 지식을 말한다. 인간에 의해 나타나지 않은 모든 자연 현상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등의 분야가 있다. 자연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자연의 수량화를 통해 자연을 물리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수량화는 우리에게 정밀하고 확실한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사회과학은 인간들의 행동과 그들이 이루는 사회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단체, 사회, 제도 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술되는 학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탐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이다. 사회과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사회 현상을 연구하기 때문에 경험적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경험과학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연구는 사회과학은 가치관의 문제가 발생하고, 자연과학과 같은 방법으로 사회 현상을 연구하여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것은 잘 통제된 실험이 어렵고, 주로 관찰을 기반으로 한 통계나 사례 등으로 이론을 실증한다.

다른 모든 문화와 학문이 인류에게 공헌하지만, 특히 과학은 인간에게 유익한 학문이다. 과학으로 인한 위대한 발견을 통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었고, 매우 편리해진 현대생활에 과학이 이바지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보통은 몇십 년이 흘러야 새로운 발견이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고, 경제적인 중요성을 띠기까지는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학은 투자,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손이다. 때로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학은 여러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공유와 검증을 가능하고인류에게 유용하고 튼튼한 진리를 낳는다. 안정적이고 원활한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국가 사이도 열려 있다. 과학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사적 지식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 공동의 지식이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과 국가에서는 특허와 지식재산권으로 사적 지식의 벽을 높여 개별 기업과 국가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지식재산권에 대하여 기한을 두고, 일부는 처음부터 전 세계가 공유하여 공동의 지식으로 활용하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과학과 대척점에 서 있는 종교와의 관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다윈의 진화론이 나타났던 시기부터 시작된다. 과학의 진화론은 종교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함께 갈 수 없는 사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잘 공존하고 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과학과 종교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언 바버(Ian Barbour)의 세 관점을 살펴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가 과학과 종교는 태생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밖에는 없다는 갈등의 관점이다. 둘 중 한쪽이 반드시 사라지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으로 대체되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다. 둘째과학과 종교는 서로 무관하고 독립적이라는 관점이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르고 배타적인 인간 사고 영역으로, 종교는 자연을 축으로 하는 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과학과 종교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같이 발전해야 하는 서로 보완적이라는 관점이다. 양쪽이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자연에 대한 탐구가 종교적 깨달음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종교적 믿음이 과학적 발견에 의미를 더해주고, 서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론이야 어떻든 초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 일부 과학자들이 종교에 의해 희생되기도 했지만,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지금까지 각자의 영역을 잘 지키며 공존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고무할 일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과학의 편의성이 강화될수록 과학에 대한 경외심과 찬탄만 할 것이 아니다. 인도의 간디가 ‘일곱 가지 사회악’의 하나로 인간성 없는 과학을 지목하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 가지 요소가 핵무기의 도전생태학적 도전기술적 도전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결국 미래를 위협하는 세 가지 요소 모두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과학이 우리 존재의 디딤돌인 동시에 위협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과학이 우리에게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을 뿐, 어떤 과학이 인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고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인류의 공익을 위해서 실현되기 위하여, 모두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과학은 우리를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을 느끼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 덕분에 더없이 잘 연결된 지구상에서 살고 있지만, 더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는 오감(五感)을 잃은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서울, 아니 미국에 사는 사촌과 얼굴 보고 이야기하기는 어느 때보다 쉬워졌는데, 한 집 안에서 사는 남편(아내)과 대화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눈은 끊임없이 나 대신 스마트폰에 가 있다. 집뿐만 아니라 지하철, 버스, 찻집, 길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자기 몸과 감각, 접촉을 잃어버리고 물리적 환경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미래에는 사람과 사람이 접촉 없이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생태계의 파괴는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계급마다 다를 거라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자연 재난이 발생하면 으레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훨씬 더 고통을 당한다. 애초에 그러한 비극을 초래한 당사자가 부자들인데, 그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롯이 받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도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는 벌써 부유한 서구인보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의 발전 그 자체가 지구 생태계의 위험을 높이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믿었던 역사의 정의는 자연에서도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의 발달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므로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목표가 생기고, 모르는 것을 연구해서 아는 것이다. 인간이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현대 과학 연구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는 이유는 과학이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학은 정치․경제․종교적 목표 달성의 수단이다.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등을 왜 연구하겠는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금 이 시대에 잘 나가는 기업의 수익과 성장에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과학 연구는 많은 기업에 천문학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과학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가장 범위가 넓은 학문이다. 또한 인간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닫게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찾아 진보를 향해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과학은 인류 번영의 기초이자 존재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진정한 과학의 가치는 만인의 이익을 위해 공헌하는 데 있다. 결국 우리가 살아남고 번영하려면, 인류는 지역적 이기주의와 국가주의를 버리는 대신 지구 공동체가 함께 하나라는 의무감으로 대체해야 한다. 개인은 자기 가족과 이웃, 직업과 국가, 지구촌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레카(Eureka)~!’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인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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