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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Apr 28. 2024

155. ‘그리움(戀)’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55

그리움()’은 어떤 사람이나 시간 혹은 사물을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말한다. 주로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고 과거에 좋아했던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으로 예전의 상태로는 돌아가기가 쉽지 않거나,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통 당시에는 소중함을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제 다시는 접할 수 없거나 그러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리움의 대상으로는 돌아가신 가족이나 헤어진 옛 연인, 학창 시절 첫사랑이나 짝사랑, 졸업한 학교의 선생님이나 친구 등 사람과 파란만장했던 청춘 시절, 고향 밖에서 사는 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향수(鄕愁), 추억의 물건 등 수없이 많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가 그리움이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으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어머니와 그리움 두 단어는 꼭 포함된단다. 특히 그리움은 음악, 미술, 문학 등의 가장 많은 소재와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어 예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리움이란 우리말 또한 그 어떤 단어보다도 아름답다. ‘그리움’은 그림, 글과 함께 어원이 모두 ‘긁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로 같다. ‘긁다’는 뾰족한 도구로 어디엔가 그 흔적을 새기는 것인데, 원고지에 문자로 긁는 것은 ’, 화폭 위에 색으로 긁는 것은 그림’,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속에 긁는 것은 그리움이 된다. 참으로 기막힌 어원의 조합 아닌가.

현실 속에서 막연한 기대나 그리움이 실현 가능해질 때 생기는 반응이 설렘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리움이 실현되는 설렘이 동반된다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 된다. 행복의 기준이 바로 그리움이라는 얘기다. 사람만큼 그리움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이 많고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모든 사랑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없는 사랑은 없다. 꼭 그 사람이어야만 채워줄 수 있는 그리움을 남기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없어 고통이라 말할 수 있지만,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기쁨인지 그리워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움 때문에 살고 그리움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것이 진리다.

세상을 살면서 문득 그 생각을 하면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그 그리움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나 향수일 수도 있고, 그냥 알 수 없는 삶의 꿈들이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그리움들은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살아 숨쉬기도 한다. 사람은 그리움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이란 말이 맞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지나간 학창 시절이나 청춘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그리움에 갇혀 살아가게 되면 과거에 사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덧씌우고, 결과적으로 인생 전체는 하나의 과거가 될 수 있으므로 늘 그리움에 파묻혀 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리움을 대표하는 꽃이 상사화(相思花). 잎과 꽃의 어긋난 인연에 그리움, 이름보다 더한 꽃의 절절한 그리움을 어느 꽃에 비할까. 상사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일본이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고 진 뒤 여름에 매끈하게 솟아오른 초록색 꽃대 위에 잎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덩그러니 꽃만 달려 있다. 봄에 나온 잎은 광합성으로 열심히 만든 양분을 알뿌리에 저장해 주고 말라 죽으면 8월에 그리움의 꽃을 피운다. 상사화의 한집안인 꽃무릇은 8월에 핏빛 붉은 꽃이 핀 뒤 10월쯤에 파릇파릇한 잎이 난다. 결국 상사화나 꽃무릇은 잎과 꽃은 어긋난 시간 때문에 같은 하늘 아래서 만날 수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만남 없이 맺어질 수 없고 그리움도 생겨나지 않는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서로 만날 수 없으니 내가 죽어 네가 활짝 꽃피는 소신공양의 불꽃 같다. 꽃의 그리움이 인간 세상에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직 한 번도/당신을/직접 뵙진 못했군요//기다림이 얼마나/가슴 아픈 일인가를/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잘 모릅니다.//좋아하면서도/만나지 못하고/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어긋나 보지 않은 이들은/잘 모릅니다.//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오랜 세월/침묵 속에서/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어둠 속에서/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익혀왔습니다.//죽어서라도 꼭/당신을 만나야지요/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오늘은 어제보다/더욱 믿으니까요.” [이해인 상사화]

눈물만큼이나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하는 행위도 없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나 일에 대한 그리움, 잡을 수 없이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그리움 등 수많은 그리움이 눈물을 짓게 한다. 그리움의 눈물은 기다림과 함께 한다. 말로써 설명이 안 되는 그리움은 한 방울의 눈물만으로도 명징하게 설명이 된다. 그래서 눈물 나도록 그리움 사람이란 그리움의 최대치 표현이다. 눈물 나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 오늘은 그 잊을 수 없고 잊힐 수 없는 사람과 함께하며 사람을 마음껏 생각하자. 불러만 봐도 눈물이 절로 나고 사랑보다 더 눈물의 씨앗인 ‘어머니~!’라고 속삭여 보자. 다만, 너무 심하게 그리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 않을 만큼만. 그리움은 무죄다.

한때 나의 전부였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 중에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란다.(공병각) 롤랑 바르트는 시간은 그 무엇도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다만, 시간은 받아들여야 할 슬픔의 예민함을 무디게 해 준다. 시간이 쌓여가다 보면 슬픔은 그리움으로 대체되어 옅어지는 것이다. 그 고유한 그리움이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을 낼 수 있는 씨앗이 되었으면.

아무래도 가장 큰 그리움은 사라짐과 헤어짐이 낳는다. 죽음만큼 완전한 사라짐과 헤어짐은 없다. 삶은 유한하다는 불변의 진리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다. 삶은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살아가는 일은 서서히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먼저 사라지느냐, 나를 둘러싼 사람이 먼저 사라지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별을 결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당한 애도 기간을 거쳐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움을 새기는 것이다.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립다는 말은 이제 그리움을 끝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과 그리움 중 더 질긴 것은 무엇인가? 사랑의 뒤처리가 그리움이라면 당연히 그리움이 끈끈하고 더 질긴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화지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고 했다오늘은 그리운 사람을 내 마음에 불러내 내 맘 대로 그려보시길~! 그리고 나지막이 불러보자눈물 나도록 그리운 이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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