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66
많은 사람이 ‘삶은 완벽해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살지만, 가끔은 삶이 흔들리고 불완전해지는 과정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도 불완전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완벽해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해야 어른이 된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여 자신을 남과 비교해 기죽는 경우가 많다. 자기 삶이 불완전할지라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하여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건강하다. 남에게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열정이 무엇이지 잘 살펴서 무소의 뿔처럼 용감하게 자신이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실수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건강한 자존심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일도 있는 것이 정상이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늘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고, 나에게도 그런 일은 절대 없다. 그 밖에 이 세상은 항상 공평하지도,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나와 같지도, 모든 사람이 옳고 바른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를 하면, 실망과 분노 속에 살게 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소한 진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작지만 위대한 삶의 지혜이고 행복의 지름길이다.
타인의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에 대한 가장 잘못된 대처가 ‘너는 틀렸기 때문에 내가 바로 잡아야겠다’라는 의식이고, 이를 나의 행동으로 옮기는 거다. 이는 인간은 각각 내면에서 지시하는 자신만의 훌륭한 교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자신이 바로 잡는다 해서 상대는 바로잡히지 않는다. 상대는 상대의 생각과 행동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가고 있는 길은 수많은 옳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다. 행복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으로 상대방은 고치려는 ‘망치증후군(매슬로 - 망치를 잡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을 극복하고 상대의 순수한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자신의 최고가 모든 사람의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확실한 진실도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는데,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더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미래의 어떤 일을 의사 결정할 때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확실하지 않다’라는 말 자체에 비중을 두지 말아야 결정하기 쉽다. 사실 미래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확실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면 흑백논리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진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위험을 이겨내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모순이 아닌 것이 없다.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을 고쳐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변할 수 없는 것에 분노하며 태생의 수저 재료를 탓해봐야 자신의 무능함만 내보이는 것이다. 학교든 사회든 직장이든 모두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갈 공간이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평가에서 힘들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잣대와 다른 누군가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안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이유도 자기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욕구 때문이다. 인정받으면 평등한 세상, 인정받지 못하면 불평등한 세상이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구질구질하게 탓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사회가 가진 양면성을 이해하고, 많은 모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가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은 행복을 지향하고 살지만, 기본은 고통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양한 삶의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어차피 행복이든 고통이든 잠시 마주하는 것이지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처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듬고, 휴식과 안정적인 환경을 준다.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자주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울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상처를 회복하는 중요한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상처를 입은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귀담아들어 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이 가장 부족한 ‘공감하는 마음’도 사실은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만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바로 그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수준이 바로 공감력이다. 남의 아픔과 슬픔을 받아들여 내 것처럼 느끼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큰 사건 당사자들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란 말도 자기 세계 속에 갇혀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인간이란 뜻이다.
살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도 중요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매달리고 신경을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태도가 없다. 시간 낭비고 에너지 낭비고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져야 한다. 하긴, 그 지혜를 갖추기가 더 어려운 딜레마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은 내 통제 밖에 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영역을 수용하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소음이나 비난 등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신경 쓸수록 세상은 시끄럽고 말만 더 많아진다. 다른 소음이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지혜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면 혼란이 온다. 그것이 고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는 노력이 혼란에서 오는 고통을 넘기는 지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우리의 삶은 자유와 평온해진다. 꼭 이래야만 한다는 고집이 삶을 억압과 고통으로 인도한다. 고통은 어리석은 집착에서 시작된다. 행복은 집착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라. 니체도 ‘부조리하고 비극적인 삶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황홀한 영광의 순간과 끔찍한 고통의 순간들도 함께 말이다. 결국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수용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독서다. 수많은 저자들의 경험과 논증을 따라가면서 나만의 간접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쌓이는 으뜸이 수용의 지혜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융통성이 있고 공감과 소통을 잘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내면을 지키는 일, 세상의 많은 일들을 수용하는 일, 모두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매슬로는 자아실현을 한 사람의 특성을 ‘첫째, 효율적인 현실 판단을 하며,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잘 수용한다. 둘째, 자기나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라고 했다. 결국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실현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자신이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을 온전하게 받아들여 자아실현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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