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72
‘영원(永遠)’은 ‘존재나 가치가 시공을 초월하여 끝없이 지속되거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원하다는 말처럼 아득하고도 먹먹한 말도 없다. 밤하늘에 가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거리로 다가온다. 너무 자주 쓰는 단어지만 현실감이 전혀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영원은 꿈으로만 존재한다. 그중에 으뜸이 생명과 사랑이다. 우리는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면서도 늘 영생을 꿈꾸며 산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영생을 꿈꾸며 종교를 탄생시켰고, 영원하지 못한 삶의 대체제로 문학과 예술을 선택했다.
이렇게 인간의 영원한 화두이면서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 두 가지가 바로 삶과 사랑인 것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 보라. 과연 우리의 바람처럼 행복할까? 간혹 혼자만이라면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재수 없으면 120까지 산다’라는 말도 있다. 영생(永生)은 분명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사라지게 한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세상도 사람도 오늘 내가 하는 일도 소중함과 의미가 사라진다.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 다하지 못하면 영원한 내일이 있으니 내일 하면 그만이다. 영생은 삶을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지만, 지루한 일상의 무한 반복으로 변하게 된다. 유한성이 사라지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진다. 설렘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삶이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키르케고르는 삶 자체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도 죽음의 문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당장 나의 내일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내일이 오면 또 내일… 이렇게 나의 내일은 영원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나의 내일은 없어도 내 분신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 세상은 발전한다. 내일이 없다는 삶의 허무와 절망만 있다면 무슨 재미로 고통으로 이어지는 삶의 시간을 견디겠는가. 다만 삶과 세상에 대한 집착의 욕망은 덧없다는 말이다.
생명만큼이나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영화나 드라마, 유행가에서 ‘영원한 사랑’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서약하면서 산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느끼는 행복감은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어느새 틈이 생기고 사랑의 끝에 이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랑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다 하여 자책하고 죄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영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커플이 ‘내 사랑은 영원하다.’라고 속삭이고, 수많은 노래가 ‘영원한 사랑’을 열창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전혀 없다. 역설적으로 사랑은 절대 영원하지 못하다는 사실만 알려 주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플 뿐이다.
젊은 피가 끓는 시절 사랑은 폭풍우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다. 하지만 살아보면 안다.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불꽃 같은 사랑도 점점 사그라져 꺼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원래 혼자였던 내가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도. 결코 영원히 완전할 수 없는 사랑의 불완전성이 사랑을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요소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어제도 사랑했고, 오늘도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할 것이라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할 것이라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등의 단골 대사는 사랑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이라는 말도 부족해 영원이라는 말로 약속하곤 한다. 하지만 사랑은 바람(風)이 되기도 하고 엉덩이 흔들며 꽃을 찾아다녀야 하는 뒤영벌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누구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함께 갈 수 있는 곳까지만 마음을 다해 갈 수 있으면 그것이 위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을 위해 온 힘으로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하다면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만물이 변하듯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손으로 쥘 수 없는 속성이 있는 사랑은 변질되기도 쉽다. 따라서 소유욕이나 집착이 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내 방식대로 바꾸려고 든다. 자식이든 연인이든 서로 소유물로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려 하지만, 그 부작용은 크다. 자식도 연인도 내 곁에서 멀어질 테니.
사람들은 늘 영원한 사랑에, 변치 않을 사랑에 목을 매며 산다. 계절이 변하는 게 당연하듯, 우리의 마음도 사랑, 미움, 증오, 그리움 등으로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도 안다.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기에 더 소중한 법이다.
현실적으로 영원의 유통기한은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다.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는 거다. 영원히 함께하자는 말은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것이다. 그런 영원의 의미에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사랑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연락하며 지낼 거라는 생각’은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지금과 같은 관계로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 맞다. 인간은 생물이다. 변하지 않는 생물을 보았는가.
변화 그 자체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려 하니 고통으로 다가오고 스트레스가 된다. 자신이 가진 삶도, 젊음도, 미모도, 부도 영원해야만 한다고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은 영원을 동경하지만, 사라지는 것에 공감한다. 인생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을 사라지기 마련이어서 영원을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라지는 것을 애틋해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꽃이 아름다운 것도 피는 것이 잠시이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지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알프레드 드 비니는 ‘우리가 사랑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할 것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늘 영원을 갈망하면서 변하는 것을 사랑한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고, 만물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나도 그렇다.
우리는 사는 동안 스스로가 유한한 존재임을 잊고 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자신은 늙지 않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살 것처럼 말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매우 가볍게 된다. 어차피 오늘 못하면 영원한 내일이 올 테니까. 당연히 하루의 감사함을 잊고 살아간다. 그런데 진짜 오늘 밤 눈감으면 내일 아침 눈이 뜨이겠는가?.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없어지는 날도 있겠구나, 하는 겸허한 마음이 오늘을 소중하게 만든다. 변하고 사라지니 덧없는 것이 아니고 소중한 것이다. 사람은 늙어가고 꽃은 시드니 소중한 거다. 인생은 일장춘몽이기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거다. 꽃이 피면 꽃구경 가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내는 이유다. 영원한 것은 가치가 없다.
삶, 사랑, 행복, 우정, 권력, 부 등 사람들이 영원히 추구하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어는 한 가지도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에게 주입된 ‘영원’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 황당하고 기만적인 말이다. 아니면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인간의 체념적 희망이랄까? 유한성을 받아들이기 싫은 방어 기제랄까? 그도 아니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순간’을 위해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 불행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태도가 영원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영원할 것이라 여기고 영원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말아야 행복하다. 될 수도 없다. 지금 여기서 잠시 좋은 사람이면 최선이다.
하지만 ‘영원’을 추구하면 ‘영원’히 편하지 못하고, ‘영원’히 불행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 ‘지금’이라는 가장 아까운 삶의 매 순간을 꼭 붙잡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