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판에 선 동물들 2장

<빛 아래 금이 간 땅>

by 미냉

숲 한가운데, 누구도 쉽게 오르지 못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돌판.
그 위에 선 자는 숲의 목소리가 되었고,
그가 내뱉는 말은 바람을 따라 모든 나뭇잎에 닿았죠.

한때 그 자리에 곰이 있었고
곰이 내려간 뒤 숲은 오랫동안 숨을 죽였어요.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뿔이 곧고 발굽이 묵직한 황소가 나타났어요.
그의 눈은 흔들림 없었고
말투는 단단하고도 힘찼어요.
오랜 침묵을 깨는 소리였죠.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숲은 너무 오래 멈춰 있었고 이제는 나아갈 시간이다.”


황소는 돌판 위로 올랐고
곰이 아닌 첫 지도자를 맞이한 숲은 들썩였어요.
깃털을 흩날리며 노래하던 새들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다람쥐들
숲은 외쳤어요.

“곰이 아니야!
진짜 다른 짐승이야!”


다음 날 황소는 돌판 아래를 어슬렁거리던 그림자 무리를 몰아냈어요.
곰의 말투를 흉내 내며 으스대던 짐승들
숲을 두려움으로 지배하던 이들을 하나둘 쫓아냈죠.
동물들은 박수를 쳤고
진짜 변화가 시작된 줄로만 알았어요.

잠시 동안 숲은 풍요로웠어요.
바람은 잎을 더 멀리 실어 나르고
먹이는 풍성했으며
동물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노래를 불렀죠.


“황소는 다르다.”
“곰과는 비교도 안 돼.”
“우리는 정말 달라졌어.”

그러던 어느 날, 황소는 숲의 한가운데에 오래된 돌탑을 가리켰어요.
그 탑은 돌판보다도 오래된 것이었죠.

숲이 아직 자기 목소리를 갖기 전,
바깥에서 온 낯선 무리들이 그 위에 올라 숲을 내려다보았어요.
그곳에서 들려온 말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너희가 가진 건 모두 우리 것이야.”
“조용히 내놔.”
“너희는 혼자 살 수 없는 짐승이야. 우리의 다스림이 필요하지.”


숲은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했어요.
아무도 그 탑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 돌은 늘 숲을 짓누르고 있었죠.

황소는 말했어요.
“이젠 그 기억에 끌려다니지 말자.”

그리고 탑은 무너졌고,
숲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외쳤어요.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우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잎은 반짝였지만 먹이는 줄어들었고
땅은 조금씩 꺼져갔어요.

황소는 그 이유를 몰랐어요.
그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돌판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날마다


“우린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는다”,
“이제 누구도 우릴 흔들 수 없다”


와 같은 말만 반복했죠.

하지만 숲은 달라지고 있었어요.
개울엔 물고기가 줄었고,
덩굴엔 열매가 맺히지 않았어요.
동물들은 처음엔 그냥 참았어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먹을 게 줄어들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물고기 얘긴 안 하네.”
“누군가는 위를 보는데, 우리는 바닥만 들여다보고 있어.”
“돌판이야 단단하지. 근데 땅은 계속 꺼지고 있다고.”
“우린 굶고 있는데, 그이는 또 탑이니 뭐니 하고 있어.”


그날 저녁, 몇몇 동물들이 오래된 그루터리 근처에 모였어요.
다들 조용했지만, 표정은 어두웠고,
말끝엔 힘이 없었어요.


“황소한테 말해봐야 하나… 근데, 뭐라고.”
“말해봐야 뭐 해. 귀 기울일 사람이 있어야지.”
“괜히 말했다가 ‘굴복했다’고 오해받는 건 아닐까.”
“우린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걸지도.”


회의는 오래 가지 않았어요.
의견은 많았지만, 결론은 없었죠.
숲은 그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들어갔어요.

황소는 그 말들을 듣지 못했어요.
그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돌판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바람은 그의 몸을 지나쳐갔고,
땅 아래에서는 조용한 한숨들이 스며들고 있었죠.

날씨가 거칠어지고,
먹이가 줄어들면서,
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동물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어요.
그저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죠.


“그의 뿔이 너무 커서 무겁지 않을까.”
“돌판은 튼튼하지만, 땅은 계속 꺼지고 있어.”


황소는 여전히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굳게 서 있었어요.
그의 귀에는 이제 숲의 속삭임만 들렸어요.


“우린 우리 스스로 말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뿔은 굽어졌고, 발걸음은 무거워졌어요.
하늘을 향한 황소의 고집은 점점 더 외로워졌어요.


숲의 동물들이 내는 신음소리 사이에서

황소는 뚜벅뚜벅 돌판에서 내려왔어요.

아무도 그를 배웅하지 않았지만,

황소는 항상 같은 그 걸음으로 숲 어느 저편으로 사라졌어요.

숲은 잠잠했고, 이번엔 어떤 잎도 날리지 않았어요.


올빼미는 그 시기를 ‘굽은 뿔의 계절’이라 불렀어요.
돌탑은 무너졌고 숲은 한때 숨을 돌렸지만
땅은 점점 꺼져갔죠.
많은 걸 이뤘지만
끝이 아쉬운 계절이었다고 그는 적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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