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넘치지 않는 연못>
깃털이 흩날린 뒤, 숲은 다시 조용해졌어요.
며칠 뒤, 까치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말이 많던 까치는 어느 날
숲 바깥 한쪽 보금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죠.
깃털이 헝클어진 채,
누워 있었다고 해요.
누구도 그의 죽음을 크게 알리진 않았어요.
그의 죽음은 조용했지만, 숲은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어떤 동물들은 밤마다 까치가 머물던 나뭇가지 아래 모였어요.
헝클어진 깃털 하나라도 다시 매만지듯
그의 이야기를 되뇌며 울기도 했죠.
“그래도 그는 우리 말을 들어줬잖아.”
“그가 없었으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 자리를 멀리했어요.
“듣는다고 뭐가 달라졌어.”
“그가 떠나고 나서야 숲이 좀 조용해졌지.”
“이제는 말보다 일할 짐승이 필요해.”
그 둘 사이에는 논쟁도, 싸움도 없었어요.
그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죠.
그렇게 숲은 말없이 갈라졌어요.
그 즈음, 숲에 가뭄이 들기 시작했어요.
잎은 말라가고, 웅덩이는 하나둘 바닥을 드러냈죠.
동물들은 이끼를 짜고, 젖은 나뭇잎을 핥으며
말없이 버티고 있었어요.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조용히 움직이는 짐승 하나가
물가에 나타났어요.
비버였죠.
그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대신 물가를 천천히 걸으며
나무를 하나하나 살폈어요.
굵기를 재고, 높이를 가늠하고,
물의 흐름을 오래 바라보았죠.
동물들은 수군거렸어요.
"저 짐승, 뭐 하는 거야?"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모두의 기대 속에 비버는 돌판에 서게 되었어요.
그리고 바로 일을 시작했지요.
먼저 작은 나무 하나를 골랐어요.
이빨로 조심스레 둘레를 갉아내고,
둥근 원을 그리듯 나무를 물었죠.
드디어 나무가 쓰러지자,
비버는 그걸 물로 끌고 갔어요.
동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저게 뭐 하는 거야?"
"나무를 물속에 넣고 있어."
비버는 나무를 물 흐름을 가로지르게 놓았어요.
그리고 그 위에 작은 가지를 얹고,
진흙을 발라 틈을 메웠죠.
"둑을 쌓는구나."
"물을 막으려는 건가?"
비버는 쉬지 않고 움직였어요.
해가 뜰 때도, 질 때도,
나무를 물어 나르고, 가지를 엮고, 진흙을 발랐어요.
며칠이 지나자,
작은 둑이 물길을 가로막기 시작했어요.
물이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죠.
어린 다람쥐 하나가 물었어요.
"왜 물을 막는 거예요?"
비버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말했어요.
"흐르면 사라집니다. 모아야 오래 갑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일주일이 지나자,
둑은 비버의 키만큼 높아졌어요.
물은 점점 더 많이 고였고,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졌죠.
"신기하다..."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동물들은 매일 물가로 와서
비버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누군가는 작은 가지를 물어다 주기도 했고,
누군가는 진흙을 날라주기도 했죠.
비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지만,
여전히 말은 많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쌓아갔죠
한 달이 지나자,
둑은 동물 두 마리가 겹쳐 서야 할 만큼 높아졌어요.
물은 둑 뒤로 넓게 펼쳐졌고,
햇빛이 수면에 반짝였죠.
그가 만든 둑 앞엔 깃발이 세워졌어요.
"물이 있어야 숲이 산다.
물을 모아, 오래 흐르게 하겠습니다."
동물들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고,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퍼졌어요.
"이 물이 다 우리 거라는 거지?"
"이대로만 가면, 가뭄 따윈 문제도 아니겠는데?"
"말 많은 짐승보다야 훨씬 낫잖아."
둑 근처에는 동물들이 모여들었고,
눈빛은 기대에 차 있었어요.
비버는 멈추지 않았어요.
둑을 더 높이 쌓았고,
더 넓게 만들었어요.
"크게 만들면, 더 많이 모을 수 있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둑은 거대한 벽이 되었어요.
그 뒤로는 맑은 연못이 펼쳐졌죠.
물은 잔잔했고,
바닥의 돌멩이까지 들여다보일 만큼 맑았어요.
햇살이 수면에 부딪혀
숲 전체를 밝게 비췄죠.
동물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시고, 깃털을 씻고, 열매를 닦았어요.
연못 가까이 사는 토끼가 외쳤어요.
"이 물 봐! 얼마나 맑아!"
"이런 물은 처음이야!"
"예전엔 이런 물은 꿈도 못 꿨지!"
"비버가 진짜 일을 하긴 하네!"
물은 금세 숲의 화제가 되었고,
비버는 말없이 둑을 점검하며 돌았어요.
하지만 그 무렵,
개울 아래쪽에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치다 멈췄어요.
"물이... 안 흘러."
물가에 살던 작은 동물 몇이
조용히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우리 집은 물에 잠길 것 같아."
"다른 데로 가야겠어."
누군가 비버에게 물었어요.
"저 아래쪽 동물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비버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대답했어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이건 숲 전체를 위한 일이에요."
그리고 다시 둑을 보강하러 갔죠.
하지만 연못 아래쪽 동물들은
조금씩 목말라가기 시작했어요.
연못 아래로는 물이 거의 흘러내리지 않았고,
가장자리 풀잎은 타들어가고 있었죠.
언덕 너머 사는 두더지가 중얼거렸어요.
"이러다 곧 넘친다 했잖아."
"기다리면 흐른다 했잖아."
작은 다람쥐 한 마리는
매일 연못 근처를 찾아갔어요.
젖은 나뭇잎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길에 말했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곧 넘칠 거야."
하지만 연못은 넘치지 않았어요.
점점 연못 가까운 동물들과 먼 동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우리 쪽 물은 충분해."
"거기는 원래 좀 메마른 곳이잖아."
"우리는 언제쯤 마실 수 있는 거야?"
"연못은 왜 안 넘치지?"
어떤 동물은 발굽을 멈췄고,
어떤 동물은 고개를 돌렸죠.
그 무렵, 어느 날 밤,
연못가를 지나던 동물이 비버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비버는 혼자 둑 위에 앉아
낮게 중얼거리고 있었죠.
"물을 흘려보내면... 모두가 마실 수 있겠지.
하지만 가뭄이 다시 오면?
그때는 아무도 마실 수 없어.
지금은... 모아야 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버는 둑을 보강했고,
연못의 물은 가득 차 있었지만
넘치지는 않았어요.
그러는 동안 동물들의 목소리에는 불평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물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아무 데도 안 가?”
“비버는 너무 많이 모으는 거야.”
“우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연못 가까운 짐승들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을 찌푸렸어요.
“그가 없었다면 벌써 말라 죽었을 거야.”
“불평할 시간에 나무라도 옮기라지.”
하지만 동물들은 더 이상 물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어요.
갑자기 북쪽 숲에서 날아온 불덩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나무 하나가 불에 탔고,
둥지에 있던 알이 깨졌고,
몇몇 짐승이 다쳤죠.
그 다음 날, 비버는 연못 옆에
또 하나의 깃발을 세웠어요.
"말로는 숲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는 나직이 덧붙였어요.
"둥지를 짓는다며 열매를 나눈 까치,
인사 한마디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거북이,
그들은 모두 이상만 말했습니다.
숲은 이상보다 생존이 먼저입니다."
동물들은 침묵했어요.
어떤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들은 눈을 피했죠.
나뭇잎 아래서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어요.
"인사 같은 건... 소용없었지."
그날 이후,
'인사'라는 말은 더 이상 숲에서 들리지 않았어요.
그 단어는 조용히, 사라졌죠.
연못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어요.
비버는 그 위를 돌며
나무를 하나 더 얹었고,
가끔은 혼잣말을 했어요.
"나는 틀리지 않았어.
둑이 없었다면 또다시 가뭄이 들 때
숲이 메말라 버렸을거야.."
그 말에 연못 가까운 동물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가장자리 동물들은 조용히 돌아섰어요.
그리고,
물이 넘치지 않는 연못 앞에
작은 다람쥐가 서 있었어요.
그는 더 이상
나뭇잎을 물고 다니지 않았어요.
그저 연못 가장자리 바닥을 바라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죠.
"...다 모이면, 정말 넘치는 걸까?"
"...넘치기 전에 마를 수도 있는 거잖아."
그 말은
고인 물 위로 번져갔다가
아무 대답 없이 가라앉았어요.
계절이 바뀔 무렵,
비버는 연못 둘레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어요.
거대한 둑은 그대로 서 있었고,
물은 가장자리까지 찰랑이며 가득 차 있었죠.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은 여전히 맑았지만,
넘치지는 않았어요.
그는 물 흐름을 마지막으로 살핀 뒤,
말없이 돌판에서 내려왔어요.
비버는 그냥, 예정된 순서처럼 움직였어요.
그에겐 미련도, 변명도 없었고
남은 건 높게 쌓인 둑과
넘칠 듯 말 듯한 물결뿐이었죠.
다른 동물들은 각자의 생각 속에서 연못과 비버를 바라보았죠.
올빼미는 그 시기를
'물이 넘치지 않은 계절'이라 불렀어요.
"비버는 뭔가를 하려 했고, 실제로 바꾼 것도 있었지요.
그는 조용했고, 성실했고, 그 나름의 진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숲은 물의 흐름을 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