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였던 그해 여름,
우리 반 교실엔 에어컨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천장 가운데, 정중앙.
딱 보기에도 교실 전체를 책임져줄 것 같은 당당한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에어컨이 좀 이상했습니다.
찬바람이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마치 정수기처럼 수직 낙하하더군요.
천장에서 찬 기운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모습이 참 묘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요즘 기계가 원래 좀 쎄구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 보니 문제가 분명해졌습니다.
블레이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안에 팬은 없는 상태.
찬바람은 가운데로만
누군가의 머리 위, 한 지점으로만 떨어졌습니다.
결과는 당연했습니다.
체육 시간만 끝나면 아이들이
그 폭포수 아래로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정말 좀비 영화처럼요.
“으어어~ 시원하다...” 하면서
책도 안 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에어컨 아래에 서서 집단 냉방 명상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5월 초에 이상 징후를 처음 확인했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9월 말쯤이 되어 고쳐질 때까지 그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중간에 조치를 안 한 건 아닙니다.
시설 담당 주무관님께
조심스럽게 메신저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우리 반 에어컨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답이 없으면 며칠 뒤 다시 보냅니다.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해서요… 혹시 이번 주 중에 가능하실지…”
물론 또 답은 없습니다.
강하게 어필했어야 했지만,
저는 그때 신규였습니다.
‘강하게 어필한다’는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직접 찾아가봤을 때도 뭐가 그렇게 바쁘신지
자리에 잘 안계셨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날마다 저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진짜 덥고 춥고 너무 이상해요.”
“진짜 이러다 냉방병 걸릴 것 같아요.”
“고장난 거 아시죠? 근데 왜 아무도 안 와요?”
평소에 사이가 좋던 친구들이었는데도
그 에어컨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사뭇 진지했습니다.
불만이라는 게 얼마나 반복되면 원망이 되는지를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교실이 이렇게 기괴하게 더울 수도 있다는 걸.
가운데는 냉기 폭격, 주변은 열기 폭격.
창가 쪽은 땀이 흐르고, 가운데는 입김이 나올 기세.
학생들은 앉은 자리 따라 기후대가 달랐습니다.
결국 그 여름 내내,
교실은 이상한 공기층 속에서 버텼고,
저는 메신저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다음 주엔 고쳐주시겠지…”를 매일 되뇌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마 달랐을 겁니다.
관리자에게 찾아가서 얘기하거나,
애들을 풀어서라도 담당자를 찾아오게 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사태를 단축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그땐 그냥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교사였지만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처럼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행정실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에어컨 아래에서 조용히 얼어붙고 있던 학생들의 눈빛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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