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 형식적으로 하라는 조언을 믿었습니다

by 미냉

처음 평가계획을 쓰게 되었을 때,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이 조용히 조언을 주셨습니다.
“수행평가는 너무 어렵게 하지 말고, 형식적으로 가볍게 해. 변별력 줄 필요 없어.”
그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래, 아이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이게 진짜 현실적인 지혜구나.”

그래서 저는 진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 전망을 글로 써보는 활동을 평가로 삼았습니다.
미리 자료를 준비해오라고 안내만 하고, 글쓰기는 수업 시간 단 한 시간에 마무리.
지금 생각하면 꽤 무모했지만, 그땐 오히려 뿌듯했습니다.
“나는 무리 없는 평가를 아는 교사다.”

물론 실제로 받아본 결과물은…
‘기사는 왜 들고 온건지 그냥 자기 생각만 채움’,
‘기사 요약 95% 전망 5%’,
‘저 글 잘 못써요’라는 고백을 이렇게 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글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런 글들을 앞에 두고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게 다 한 시간의 예술이구나…”

그땐 몰랐습니다.
글쓰기가 그렇게 단시간에,

준비도 없이,

기사 하나 던져준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요.

그 후로 몇 해가 지났고, 제 연차도 조금씩 쌓였습니다.
다시 수행평가를 설계할 때, 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게 됐습니다.
한 시간 안에 끝내는 평가가 아니라,
수업 속에서 같이 끌고 가는 장기 프로젝트로요.

아이들과 자료를 함께 찾고,
글쓰기의 틀을 잡고,
조금씩 작성해 나가고,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마지막에야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좋은 수행평가는 수업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뭘 어떻게 썼느냐보다,
그걸 위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요.

그 선생님의 조언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 나름의 맥락이 있었을 겁니다.
그 시절, 그 구조 안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형식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행평가는
그 과정을 함께 걷는 교사의 자세로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수행평가 #교육에세이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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