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도 시험이 싫겠지만, 사실 교사도 그 시기를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특히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요. 시험지를 펼쳐 놓고 앉아 있으면 어느새 제 머릿속에도 이런 질문이 맴돕니다. “혹시 너무 쉬운 건 아닐까? 100점이 여러명 나오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처음엔 그래서 문제를 되도록 어렵게 내보려고 애썼습니다. 정답을 찾기 어려운 보기, 처음 보는 개념, 문제 안에 또 문제를 숨긴 서술형까지. 변별력 있는 시험이라는 게 꼭 ‘수수께끼 같은 시험’이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평균은 낮아졌고 석차도 명확하게 줄이 서도록 나왔습니다. 시험 출제자로서의 자존감은 살짝 올라갔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교사 만족용’ 시험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점수가 상대적으로 잘 나온 아이들도 의외로 풀이 죽은 표정이었습니다. “국어 점수가 너무 낮아요…” 하며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점수가 낮은 학생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요. 어느샌가 교실 전체에 묘한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시험 한 번 쳤을 뿐인데 단체로 마음의 기온이 떨어진 겁니다.
만약 객관식이 80점 배점인데 평균이 40점이라면 시험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요? 절반이 틀렸다는 건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의미없이 머리만 아프게 하는 문제가 포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평균이 50에 훨씬 못 미치는 정도가 되면 열심히 풀고 많이 틀린 학생과 그냥 찍은 학생의 점수가 별 차이 안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시험 보는 의미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평균을 70점 정도로 맞추려 노력합니다. 수업을 대충이라도 따라온 학생이라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물론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머리를 살짝 싸매야 하는 고난도 문제도 몇 개 넣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100점이 나오는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속으로 생각하는 ‘괜찮아, 다음 시험 잘 내면 되니까’라는 생각은, 꼭 학생들이 시험 후에 하는 말 같습니다.
시험 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느 포인트도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특정 단원에만 몰리지 않게 하고 각 단원 안에서도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골고루 넣습니다. 수업 시간에 딱히 졸진 않았지만 집중도 안 한 학생이라면 딱 그만큼의 점수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열 번 중 세 번쯤 졸았다면 그 정도만 깎이는 것이 학교의 섭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문제 하나하나에 드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습니다. 보기 하나를 만들면서도 “이 파트는 너무 쉬운 문제만 있나?”, “이건 질문이 너무 친절한가?”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마감 하루 전이 되어 있곤 합니다. 늘 똑같은 결심을 하죠. 다음 시험에는 꼭 미리 시작하자… 물론 그렇게 되진 않습니다.
출제 과정이 아무리 신중해도 실수는 찾아옵니다. 제가 겪은 가장 아찔했던 실수는 이랬습니다. 객관식 보기가 다섯 개였는데, 네 개가 정답이고 하나만 틀린 보기였습니다. 당연히 질문은 “다음 중 옳지 않은 것은?”이 되어야 했죠. 그런데 저는 실수로 “옳은 것은?”이라고 써버렸습니다. 정답이 네 개인 객관식 문제, 교육학 시험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가 탄생한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시험이 끝난 후, 그것도 꽤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제가 발견한 게 아니라 학생이 조심스럽게 알려줬습니다. “선생님, 혹시 15번 질문 좀 이상한 거 아니에요…?” 덕분에 문제 오류의 존재가 밝혀지긴 했는데, 그 친구는 그 문제에서 ‘제 의도대로’ 옳지 않은 것을 찾은 학생이었습니다. 발문을 잘못 던졌는데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문제를 푼거였죠.
하지만 처리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채점은 다 끝난 상태였고, 다른 선생님들은 시험지를 다시 고치는 것보다는 정답처리만 문항대로 바꾸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도 그 조언을 따랐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문제를 이해하고 풀었지만, 점수는 깎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문항을 무효 처리하거나 모두 정답으로 인정했어야 맞는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학생은 담담했습니다. “그냥 시험 볼 때 바로 말씀드릴걸 그랬네요.” 저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성적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제 마음엔 꽤 오래 남은 장면입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저는 더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문제 속 오류를 누가 잡아주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고 출제자로서의 책임을 조금 더 무겁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시험 문제를 만든다는 건 결국, 한 명 한 명의 수업 흐름과 노력을 어떻게 공정하게 담아낼지를 고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또 생각보다 자주 실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험지를 다 만든 날에도 마음이 편하진 않습니다. “이번에는 완벽했을까?”보다는 “이번엔 제발 큰 실수는 없었기를…” 하고 조용히 빌게 됩니다. 그래도 시험을 통해 누군가를 솎아내는 것을 1순위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학생들이 배운 것을 차분히 돌아보고 ‘그래도 뭐라도 남았구나’ 싶은 감정을 안고 시험지를 덮었으면 합니다. 그런 시험이라면, 100점이 몇 명쯤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