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교사는 실패를 가르칠 수 없다

by 미냉

실패 이야기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정말 이걸 계속 쓸 수 있을까

반응은 안 싸늘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 어디 신고당하진 않았고요.
“저도 그래요” 하며 공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실패한 교사라서 그랬을 겁니다.

동질감이란 참 고마운 거지요.

그런데요. 글을 쓰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 게 많은 거지?"

이야기 하나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실수가 기억나고
방학 얘기 쓰고 나면 다시 학기 초가 떠오르고.
그리고 여전히 실수와 실패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학교는 실패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작은 실수도 책임을 져야하고

망신당할 수도 있고,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학생일 때 마음껏 틀려보고 울기도 하고

그리고 다음 날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어도 되는 곳
그게 학교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요.
현실의 고등학교는 좀 다릅니다.

미인정 결석은 큰일 나는 일이고,

질병 조퇴도 몇번 반복되면 꼭 왜 그랬냐고 캐묻습니다
1학년 때 정한 진로를 흔들리는건 용납되지 않고

진로를 탐색 중이라는 말도 ‘목표의식 없음’으로 낙인찍힙니다.
내신등급은 상승곡선을 그려야 한다고 합니다.
봉사활동도, 자율활동도, 독서기록도 하나하나 다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는 자신의 성장을 말해주는 ‘경험’이 아니라,
입시에 마이너스가 될 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구조 안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실수에 대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지요.

소리 지르지 않고, 출결은 정확하게, 설명은 완벽하게.
그런데 그게… 되겠습니까.(안 되더라고요.)


이 글들을 쓰면서 저는 점점 다른 걸 느꼈습니다.
실패는 가끔 실수에서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노력 중에 발생한다는 걸요.

가만히 있으면 틀릴 일도 없는데
뭔가 더 잘해보려고, 의미 있게 해보려고 움직이다 보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완벽한 교사는 실패를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틀려본 적 없는 사람은 틀린 학생을 이해하기 어렵고
실수 앞에서 늘 방어적으로만 반응한 사람은
실패를 성찰의 기회로 바꾸는 연습을 알려주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도 완벽한 교사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패를 말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실수를 덜 두려워하게 되었
실패 이후를 조금 더 잘 견디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덜 엄격해진 저 자신과 함께

이제 이 시리즈도 끝을 맺으려 합니다.


그리고 실패하는 교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실패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시리즈의 글이 더 추가되진 않겠지만

제 삶 속에는 계속해서 실수와 실패가 쌓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가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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