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앞두고는 늘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우선은 늦잠을 좀 자고
여행도 한번 쯤 다녀오고
좋은 책을 읽으며 커피 한 잔 하는 오후
혹은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새 루틴을 만들겠다는 다짐 같은 거요.
수업 준비도, 상담도, 출제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인들 못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방학이 시작되면 늘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어디론가 새버립니다.
딱히 뭔가 하는것도 없으면서
‘잘 쉬고 있는 건가?’를 계속 되묻게 되고요.
심지어 “이렇게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싶은 죄책감 비슷한 감정도 따라옵니다.
뭔가 의미있는 것을 하지 않으면
그건 쉼이 아니라 실패처럼 느껴지지도 했습니다.
저는 방학식을 하던 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방학 때 너무 늦게 자지 마. 리듬 망가지면 개학 때 진짜 힘들다.”
그런데요.
막상 제가 방학이 되면,
슬금슬금 자는 시간이 밀립니다.
제가 했던 얘기는 개학날의 제 경험이었던거지요.
어느날은 8시에 일어나 놓고
“와, 오늘 일찍 일어났다”
고 감탄하고 있으면 좀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진심으로 그게 이른 기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하루 세 끼를 집에서 해 먹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일입니다.
모처럼 집에서 좀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자고 마음먹었는데
아침 먹고 치우고 나면 금방 점심이고
점심 치우고 한숨 돌리면 “저녁 뭐 먹지?”입니다.
급식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식사라는 게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계획 → 준비 → 조리 → 치우기 → 다시 계획’의 루틴이라는 걸
방학 때마다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는 절반 이상이
식사와 관련된 활동으로 흘러가버리고
책상 앞에 앉기도 전에 해는 기울어 있더군요.
쉬는 중인데도
‘정말 쉰 게 맞나?’ 하는 기분이 자꾸 들었던 이유입니다.
그렇게 방학 끝무렵이 되면
늘 비슷한 감정이 찾아옵니다.
“이번 방학, 내가 뭐 했지?”
분명 바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가롭지도 않았던 나날들이
슬쩍 허무하게 돌아보입니다.
세웠던 계획들은 반쯤 펼쳐진 채 멈춰 있고
읽으려던 책 대신에 유튜브 시청기록만 쌓여 있고
다음 학기 준비는 다음학기를 시작해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그 방학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일상이 시작될 때
‘잘 쉬었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방학은 실패였습니다.
쉰 게 아니라
‘쉬려고 애쓰다가’ 끝나버린 시간.
쉼마저도 계획의 일부로 넣어버린 시간.
그리고 그 계획을 다 지키지 못했다고
괜히 자신을 혼내게 되는 시간.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땐
그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막상 시간이 지나가면
그걸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립니다.
방학은, 참 이상한 시간입니다.
다음 방학엔
조금 덜 계획하고
조금 덜 아쉬워하면서
조금은 허술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방학이란 결국
‘무언가를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어쩌면
쉬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다음 방학은
계획도 실패도 없이
그저 흘러가도 괜찮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학의아이러니 #교사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