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는 수업이 아니었습니다

by 미냉

처음 동아리를 맡게 되었을 때, 저는 너무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국어 교사니까 문학 동아리, 이건 당연한 선택이었죠.
그 다음에는 진로 발표 동아리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진로를 탐색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고, 또래 친구들에게 공유하게 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근사하죠?
그런데 아이들의 소감은 어땠을까요?
“선생님, 이거 수업이에요…?”였습니다.

동아리는 주 1회, 혹은 격주 2시간입니다.
그마저도 일정은 불규칙하고, 예산은 기본 재료비도 빠듯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겠다고 시도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고3 담임을 많이 할 때였고,
아이들도 동아리 자체보다는 생활기록부 한 줄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 역시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말을 붙이기 위해
사진을 찍고, 활동 보고서를 쓰고, 말도 안 되는 계획서를 작성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학술대회 운영위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동아리는 재미도, 여유도, 기억도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다 예술고등학교로 옮기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거기서는 국영수 수업보다 예술 수업이 중심이고,
동아리도 꼭 교과 중심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진지하게 고민해봤습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동아리는 뭐였지?”

생각 끝에 떠오른 게 붓글씨였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 때까지, 5년 가까이 서예학원을 다녔습니다.
되게 좋아했던 시간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만두게 됐고,
그 이후로는 붓을 들 일이 없어서 점점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술고에서 다시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서양화나 동양화를 전공하고 있어서
붓을 다루는 데 익숙했지만, 글씨는 또 달랐습니다.
저는 그림은 못 그리지만 글씨는 자신 있었고,
아이들은 제가 쓰는 글씨를 보며 “우와, 선생님 손놀림이 되게 부드러워요” 하고 감탄했습니다.
덕분에 서로 놀라고, 서로 배우고,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동아리는 이래야 하는 거구나.”
누구 하나 가르치려고 들지 않아도 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없는 시간.
그냥 편하게 앉아 각자 손을 움직이면 되는 자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긴 뒤에도 같은 동아리를 열었습니다.
예술고처럼 열정적인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딱 말하자면 ‘조용히 쉬러 오는 동아리’ 정도의 느낌이었죠.
가끔은 제가 “선생님 오늘 글씨 좀 쓸 테니까 방해하지 마” 하고
진지하게 제 붓글씨 시간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조용히 각자 쉬는 시간이 저도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뭐, 조용히 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나쁘게 여기진 않았고요.

학교 축제 때는 그동안 써놓았던 글씨를 모아 작은 부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게 동아리에서 한 거예요?”라고 물었고,
저는 “네 이제 좀 붓글씨같지 않습니까?”라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 동아리에서 실패했던 건 제가 동아리를 수업처럼 만들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아리는 수업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성과로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냥 교사와 학생이 조용히 같이 있는 시간도, 동아리였습니다.

#동아리일지 #교사일상 #붓글씨동아리

#교사성장기 #기억에남는동아리 #교사철학

keyword
이전 04화도서관 수업, 그렇게 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