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사서 교사도 참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을 정리하고, 책을 소개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어쩌면 교사가 되기 전부터, 저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때 저는 도서관을 참 자주 찾았습니다.
단순히 공부를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책이 분류된 방식에 따라 도서관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발길이 멈추는 곳이 생기고,
책등 하나하나를 읽는 시간이 어느새 즐거워졌습니다.
가끔은 오래된 책을 찾기 위해 지하서고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도서관에 이런 공간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조금은 모험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습니다.
도서관은 늘 조용했지만,
그 안에서 저의 마음은 오히려 더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학교에서 책 읽기 수업을 구상할 때,
당연히 도서관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수업을 해보자.
교실이 아닌 공간에서 각자 흥미 있는 책을 고르고,
조용히 읽고,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보자.
말만 들어도 근사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수업 전, 도서관을 여러 번 둘러보며
“이 책은 고등학생들이 읽기 괜찮겠다” 싶은 책을 마음속으로 골라두기도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 협조도 구하고, 아이들에게도 미리 공지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도서관으로 갑니다.”
그 말에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속으로는 기대를 더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차게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을 도서관에 풀어놓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자리에 앉기는커녕 책장 사이를 뛰어다니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더 크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책은 손에 들었지만 읽는 사람은 없었고,
서로 “이 책 봐봐~!” 하며 들고 다니는 건
박지성 자서전 만화책, 그리고 마법천자문 시리즈였습니다.
심지어 그 책들은 너무 많이 읽혀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습니다.
반면, 제가 미리 봐뒀던 문학책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더군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지도 않았으니 결과물을 내라는 말은 더더욱 못 하겠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수업을 포기했습니다.
‘오늘만 망한 게 아니라, 이번 학기 도서관 수업 전체가 끝났구나.’
나중에 교무실에 돌아와서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초등학생이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제야 아주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건 저였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낭만을 품고 있었던 것도 저였습니다.
저의 감정과 기대는 단 한 명에게도 공유되지 않았고,
수업은 망가졌습니다.
지금은 책 읽기 수업을 할 때 훨씬 신중하게 준비합니다.
우선, 절대로 무작정 도서관으로 가지 않습니다.
가기 전에는 도서관 이용 수칙을 안내하고,
정말 지킬 수 있겠냐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문을 엽니다.
책 선정도 아이들 수준을 고려해서 다양하게 준비합니다.
꼭 문학이 아니어도, 흥미를 끌 수 있다면 만화나 에세이, 비문학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조를 나눠서 조장이 팀원을 챙기도록 운영합니다.
혼자 읽고 혼자 방황하던 구조에서
서로 끌어주고 정리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지요.
이제는 책보다 먼저 아이들을 보고,
수업보다 먼저 그날의 분위기를 살핍니다.
도서관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때만 들어갑니다.
그때는 정말 화가 났지만,
가끔은 그런 분노와 실망이
교사를 멀쩡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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