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삶의 끝이 아니다

by 미냉

방학식 날, 청소를 마친 교실은 묘하게 붕 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집으로, PC방으로, 바다로 떠나버렸다.
선생님들 사이에선 슬며시 이런 말이 돈다.
“좀 일찍 보내도 되지 않을까?”

공식적인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해야 할 일은 끝났다.
규칙대로라면 학생들은 교실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붙잡아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며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르침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교직에 있다 보면 이런 질문에 자주 마주친다.
무의미해 보이는 규정을 지키면서
아이들의 눈길에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방학식처럼 일찍 끝내면 학생들이 환호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박수받는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학생들은 오히려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이유가 뭐든 규칙을 어긴 건 사실이잖아요.”
그 말에 담긴 단호함은 때때로
이해보다 판단에 가까운 감정을 보여준다.

도덕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준이라기보단
잘잘못을 가르는 무기로 사용되곤 한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외가 있어선 안 되지.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규칙은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일관성은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한 세계를 제공한다.
교사가 그런 기준을 지키는 것은
책임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특히 학생들은 교사가 규칙을 벗어나는 순간을 예리하게 본다.
교사가 허용한 한 번의 예외는 학생들에게 강하게 각인된다.
나 역시 그 시선을 의식하며 때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깨닫는다.
이 엄격함은 아이들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언제나 도덕적인가?
반대로 규칙을 어기는 것이 반드시 비도덕적인가?

심리학자 콜버그는 도덕 발달을 여섯 단계로 나눈다.
많은 사람들은 ‘규칙이니까 지켜야 해’라는 3~4단계에 머문다.
하지만 어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이 규칙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나는 그 단계를 지향하고 싶다.

그렇다고 규칙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규칙이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그 가치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 중 부정행위는 0점 처리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똑같이 다뤄야 할까?
공부 잘하는 다른 학생의 답을 베껴적은 경우와
책상에 남아있던 낙서를 지우지 못한 경우는
같은 ‘부정행위’지만 맥락은 다르다.

학교는 그래서 단순히 규정을 적용하기보다
이 일이 학생에게 어떤 배움을 남기는가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규칙을 어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이 품고 있던 가치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이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도덕은 반드시 삶을 돕는 힘이 되지 않는다.
모두에게 같은 도덕을 강요하는 순간,
그 도덕은 기준이 아니라 굴레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그런 그림자 아래 있다.
우리는 ‘비도덕적’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그 말이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지만,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은 잊은 채.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도덕을 ‘지켜야 할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도구’로 이해하길 바란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보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일까’를 묻는 태도.
그 질문 안에서 도덕은 금지가 아니라,
선택의 기준이자 책임의 근거, 관계의 가이드가 된다.


교사는 그 질문을 함께 끌고 가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도덕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도록,
그 안의 가치를 스스로 해석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곁에서 조율하고 고민하는 존재다.

결국, 내가 방학식 날
아이들을 먼저 보내야 할지 고민했던 이유도 같다.
단순히 규칙을 지킬지 말지를 따진 게 아니다.
나는 그 상황이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
어떤 감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지를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도덕을 지켰느냐, 어겼느냐보다
그 도덕이 지키려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가치를 살리고 있는가?


#도덕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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